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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고 목놓아 외치는 미국인이 있다. 1941년생 버니 샌더스. 탐욕으로 작동하고 불공정이 지배하는 미국을 기어코 바꾸겠다며 2016년에 이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다시 나왔다. 그는 정치 변방 버몬트주에서 무소속으로 시장 4선, 연방 하원의원 8선, 상원의원 3선을 한 아웃사이더다. 그리고 풀뿌리 진보 정치의 아이콘이다. 올해 2월 대선 재도전을 선언한 지 24시간만에 22만5,000명이 600만 달러를 그에게 후원했다. 1인당 평균 3만2,000원쯤인 후원금은 ‘99%를 위한 대통령’이 돼 달라는 목소리들이었다.

샌더스는 여전히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닌다. 그러나 내년 경선에서 이기지는 못할 것 같다. 그의 돌풍은 꺾였다. 부통령을 지낸 조 바이든의 대세론을 넘기도 전에 뉴페이스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에 추월당했다. 샌더스는 더 이상 독보적 존재가 아니다. 2016년 이후 민주당은 자칭 민주사회주의자인 그를 향해 통째로 좌클릭했다. 거의 모든 경선 주자들이 샌더스처럼 과감한 부자 증세를 약속했고 사회안전망을 당연한 인권이라 부른다.

샌더스는 민주당의 젊은 샌더스들과 싸우는 중이다. 그리고 폼 나게 지는 중이다. 그는 자서전에 썼다. “승리를 위해 목표를 수정하지 않는다. 내가 추구하는 정치 혁명이란 그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운동은 표를 얻고 당선되는 것 이상의 무엇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의 혁명은 이미 성공했다. 그는 문자 그대로 미국을 바꾸고 있다. 77세라는 그의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훈장이다.

대한민국엔 샌더스가 없다. 미국만큼이나 ‘이게 나라인지’ 자주 궁금해지는 나라인데도. 심장병을 앓던 67세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곰팡내 진동하는 1평짜리 지하 간이휴게실에서 외롭게 숨지는 나라, 탈북민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먹을 거라곤 고춧가루밖에 없는 임대아파트에서 죽은 지 두 달 만에야 발견되는 나라에 우리는 산다. 그러나 부자들에겐 편리한 나라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퇴직금과 급여 702억원을 갑질로 이름 난 그의 가족이 합법적으로 상속받는 나라다. 정치의 책임이 크다. 정치를 오래 한 사람들의 책임은 더 크다. 나누어 지는 책임의 크기가 똑같다면, 왜 누군가가 더 오래 정치를 해야 하는가. 그럴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진다.

나이를 이유로 기회를 박탈하는 세대론은 폭력이다. 숨만 착실하게 쉬어도 먹는 게 나이라지만, 1년이라도 더 산 사람이 슬기로울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다. 여의도의 ‘노장’ 의원들은 충분히 슬기로운가. 그리하여 우리에게 소중한가. 그들은 너무 작은 꿈을 꾼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것, 운이 좋으면 국회의장까지 하는 것, 어쨌거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 그들이 품은 꿈의 평균 크기다. 꿈만큼 열정도 작다.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 건수와 국회 본회의ㆍ상임위원회 출석률은 나이, 선수와 반비례한다.

“금배지 떨어지면 얼마나 아득한지 몰라. 공항에 갔는데 출국 수속부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 거야. 전화 한 통 없는 사람들이 야속해. 그래도 샤워할 때 빼놓곤 휴대폰을 꼭 챙겼지. 조바심 나서.” 몇 년을 쉬고 죽기살기로 여의도로 복귀했다던 전직 의원의 말을 잊지 못한다. 그들은 그래서 버틴다. 총선 때마다 상한 물, 흘러간 물 취급받으면서도 꾹 참는다. 당선되면 그만이니까. 4년은 배부르니까. 스스로 샌더스가 되는 것에도, 젊은 샌더스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1941년부터 1950년까지 태어난 20대 국회의원은 21명이다.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강길부 박지원 서청원 문희상 심재권 안상수 김진표 박명재 홍문표 변재일 여상규 문진국 박주선 오제세 이현재 김중로 이종구 정갑윤 정세균 진영 최운열. 감히 묻는다. “의원님은 왜 정치를 하십니까.”

최문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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