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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부족의 시대였다. 육고기는 비싸서 생선이 단백질과 지방을 공급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노란색 국물 위에 등 푸른 생선의 기름이 둥둥 떠오르곤 했다. 그걸 들고 오는 길에 조금씩 마셨는데, 간이 깝짤하고 고소한 게 보통 맛있는 게 아니었다. 사진은 정어리 통조림 ©게티이미지뱅크

아주 옛날, 어머니가 간혹 가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딱히 찬이 없을 때 어머니는 통조림을 주문했다. 고등어며 꽁치, 정어리 같은 것이었다. 참치 통조림이 나오기도 한참 전의 일이었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깡통따개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통조림을 사면 가게 기둥에 고무줄로 묶어 놓은 깡통따개로 주인아저씨가 손수 개봉을 해주곤 했다. 달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기름 부족의 시대였다. 육고기는 비싸서 생선이 단백질과 지방을 공급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노란색 국물 위에 등 푸른 생선의 기름이 둥둥 떠오르곤 했다. 그걸 들고 오는 길에 조금씩 마셨는데, 간이 깝짤하고 고소한 게 보통 맛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 혼이 나곤 했다. 아니, 무슨 어린애가 통조림 국물을 날로 다 마신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국물이 없으면 저녁 통조림 찌개가 맛없어진다는 점을 저어하셨을 거다. 요즘 통조림 요리 조리법에는 대개 ‘국물을 따라버린다’고 되어 있는데, 이게 나는 수용이 잘 안 된다. 그 맛있는 국물을 버리고 요리한다고?

일제강점기 산업 수탈 역사에는 통조림이 빠지지 않는다. 조선에서 어획한 고기를 통조림으로 만들어서 일본의 침략 전선으로 보냈다. 속초와 구룡포 등지에 그런 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구룡포에서는 정어리가 많이 잡혔다. 통조림은 물론 기름을 짜서 화약 원료로도 가공했다고 한다. 사람 죽이고 침략하는 전쟁에 자신의 기름이 동원되었다니 정어리로서는 기가막힐 일이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어리가 잘 잡혔다. 통조림 하면 정어리였다. 언제부터인가 정어리 통조림이 안 보이더니,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여전히 정어리는 한국에서 귀한 물건이다. 제철인 여름에는 간혹 어시장에 나오긴 하는데, 양이 아주 적다. 금정어리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쪽 남부 지중해에서는 여전히 정어리가 꽤 잡히는 모양이다. 한국에도 그쪽에서 만든 정어리 통조림이 수입된다. 한국 바다의 그 많던 정어리는 다 어디 갔을까. 회유성 어족 중에는 오랜 기간 안 잡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청어도 그렇다. 요즘 청어는 다시 돌아와서 양이 많다. 그러나 정어리는 여전히 소식이 없다.

통조림은 본디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발명되었지만, 뜻하지 않게 하나의 식품 문화 ‘장르’가 되었다. 통조림만 파는 술집이 있는가 하면, 음식 유튜버들이 즐겨 다루는 아이템이 되었다. 참치 통조림은 선물용으로 각광받은 지 오래다. 이 시대 사람들은 통조림 자체가 색다른 맛을 낸다는 걸 알아챘다. 사실 통조림은 태평한 세월에 어울리지 않는다. 가공 목적에 ‘극한 상황’이 들어간다. 식량을 조달할 수 없을 때 비상식량으로 쓰고자 개발되었다. 양념을 구하거나 복잡한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 그래서 그 자체로 맛이 충분하도록 설계된다. 이미 조리된 것을 담기 때문에 가볍게 데우거나, 최악의 경우 그냥 먹어도 괜찮은 맛을 낸다. 오죽하면 통조림 꽁치 김치찌개가 야식집이나 간이술집의 인기 요리가 되었겠는가. 통조림이 이미 충분히 맛있게 조리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지만, 일종의 정서적 욕구도 포함된다. 야외에서 끓여 먹던 통조림찌개의 추억을 소환하는 재미 때문일 것이다.

소설 ‘더 로드’는 핵전쟁으로 파멸한 지구를 무대로 한다. 식품은 대부분 방사능 낙진에 오염되어 먹을 수 없다. 그나마 섭취 가능한 것은 밀봉된 경우다. 하등 식품 취급받던 통조림이 살아남은 인류의 소중한 식량이 된다. 통조림이 이렇게 각별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 걸작 소설을 다시 읽어야겠다. 다 읽고나선 꽁치통조림찌개에 소주도 한 잔 하면 좋겠다. 기왕이면 정어리 통조림이 좋겠지만, 언감생심이니.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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