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알아서 할 일”… 아시아 갈등에 눈감은 트럼프

입력
2019.08.14 18:16
수정
2019.08.14 20:0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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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 줄곧 방관하다가 “중국 병력 이동” 짧은 언급만

한일 갈등 중재역할도 소극적… 국제외교 美리더십 쇠퇴시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모나카에 있는 셀 석유화학단지를 방문해 공사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모나카에 있는 셀 석유화학단지를 방문해 공사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시아 곳곳에서 여러 여러 갈등과 분쟁이 분출하고 있지만 이를 조정하거나 중재해야 할 미국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콩 시위나 한일 갈등, 인도의 카슈미르 진압 등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 사안에서 미국의 입김이나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고립주의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분쟁 개입에 소극적인데다 미국의 이익 추구만 앞세우다 보니 미국의 리더십 자체가 약화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그간 홍콩 시위를 방관해 왔던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중국 정부가 병력을 홍콩의 접경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것을 우리 정보기관이 알려왔다’며 중국의 군대 파견 사실을 확인하면서 “모든 이들은 진정하고 안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일 홍콩 시위를 폭동으로 표현하며 “중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다 시위가 격화하자 유혈 사태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에 대한 명확한 경고 메시지는 내진 않아서 미국 내에선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켜야 할 미국 대통령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니콜라스 번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트럼프는 홍콩 시위에서 양쪽(중국과 시위대) 다 편들고 있다. 용기에 찬 모습이 없다”며 “미국이 지지해야 할 쪽은 홍콩 시민을 위한 민주적 권리”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중국의 무력 진압을 묵인하는 신호를 준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그간 미 의회나 정치권에서 중국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크지만, 트럼프 정부의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 더 관심을 갖고 있으며 주변 참모들도 대통령의 우선순위에 익숙해져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 사안에는 집요하지만 민주주의의 보루로서의 역할은 등한시해 왔다는 비판이 취임 이후 지속돼 왔는데 홍콩 시위에 대한 대응에서도 재차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악화하는 한일 갈등 사안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지난 2일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일본 정부의 결정을 코앞에 두고 트럼프 정부가 양국 정부에 ‘분쟁 중지 협정’을 제안하며 중재를 시도하긴 했으나 일본이 이를 거부해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한일 갈등을 방관해 온 미국 정부의 개입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한일 갈등 조정보다는 한국과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일본과는 무역 협상 타결이란 미국의 이해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올 들어 재점화된 인도ㆍ파키스탄간 카슈미르 분쟁에서도 미국의 위상은 비슷하다. 파키스탄 편입을 주장하는 이슬람 반군의 테러와 인도 정부군의 무력 진압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미국의 역할은 거의 없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중재 의사를 보였으나 인도 정부는 즉각 이를 거부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보도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 아래서, 갈등 현안을 진정시킬 능력도 의지도 없는 현 정부의 모습은 미국의 힘과 영향력 쇠퇴를 보여주는 뚜렷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동반 관계 구축보다는 비용 절감에 더 초점을 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재촉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이 점점 더 미국의 요청을 무시하는 대담성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윌리암 번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미국 외교의 단단한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아시아의 불안정한 정세가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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