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외교ㆍ안보팀 유임 개각, 걱정된다

입력
2019.08.14 18:00
수정
2019.08.14 18: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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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외교 잇단 차질과 한일 파국 불구

정의용 실장ㆍ강경화 장관 등 교체 피해

외교ㆍ안보팀 무능 더 이상 방치는 위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류효진기자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류효진기자

8ᆞ9 개각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대목은 단연 조국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인 것 같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 후보자의 사노맹 관련 범법 경력 등을 두고 여야 간 설전이 벌써부터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 전 수석을 장관에 기용한 것보다 더 심각하게 짚어 봐야 할 부분이 불안한 외교ㆍ안보팀을 고스란히 유임시킨 결정이라고 본다.

지금 정부에서 외교ㆍ안보팀을 이끄는 중심축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 등일 것이다. 남북관계까지 외교ㆍ안보 업무에 포함시키면 통일부 장관도 포함될 수 있다. 개각 전부터 정 실장은 물론, 강경화ㆍ정경두 장관을 직접 겨냥한 경질론이 거셌다. 한반도 평화외교의 잇단 차질, 파국적 수준에 이른 한일 갈등과 북한 목선 ‘해상 노크 귀순’ 사태 등에 따른 문책 요구였다.

최근 국회에서는 정 장관 해임결의안이 제출된 상태에서 “국방ㆍ외교장관이 무능하다. (대통령에게) 두 사람을 해임 건의할 생각이 없느냐”는 대정부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이낙연 총리도 “(청와대와) 상의하겠다”며 교체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각에 앞서 이미 외교ㆍ안보팀 개편 기대는 일찌감치 일축됐다. 북미ᆞ남북 후속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한일 외교갈등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전쟁 중에 장수를 교체할 수 없다”는 당청의 비공식 입장이 나돌며 유임설이 굳어졌다. 실제로 ‘8ㆍ9 개각’에선 정 실장, 강 장관과 정 장관 등이 모두 자리를 지켰다.

전쟁 중 장수를 바꿀 수 없다는 식의 막연한 주저가 외교ㆍ안보팀을 유임시킨 이유라면, 매우 걱정스럽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 건 시스템과 국면이 유지될 필요가 있을 때다. 그렇지 않다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신속한 결단으로 국면전환이 모색됐어야 했다. 지금의 한일 갈등은 외교문제를 경제보복으로 풀려는 일본 아베 정권의 잘못이 크지만,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래 일본의 외교협의 요구를 8개월 동안이나 외면한 외교부의 책임도 못지않다.

일각에선 법원 판결을 정부가 좌우할 수 없다는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우며 애초부터 일본의 협의 요구가 무리였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외교부로서는 국내 대법원 판결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외교적 성의’를 보여 주며 연착륙을 도모할 여지가 없지 않았다. 사실 그런 게 외교 아닌가.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의 급속성장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전략적 속셈에 따른 것으로 마찰이 불가피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더라도 외교부로서는 진작 그런 기미를 간파해 대처했어야 했다.

외교ㆍ안보팀 개편 요구는 결코 당장의 실책 때문만이 아니다. 현 정부 외교ㆍ안보팀 출범 이후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심각한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17년 12월엔 ‘사드사태’를 풀겠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별 성과도 없이 ‘혼밥 논란’만 빚은 참담한 의전 실패에서부터,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직전까지 결렬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문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상황 TV시청 장면을 생중계하기 위해 방송사 카메라까지 준비했던 웃지 못할 촌극에 이르기까지 돌이켜 보면 모골이 송연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외교ㆍ안보팀 개편을 결단하지 못하는 건 ‘햇볕정책’을 계승해 2017년 ‘신(新)베를린선언’으로 발표된 한반도 평화정책을 흔들림 없이 관철하겠다는 의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문정인 특보의 주미대사 기용을 검토하고, 대표적 대북 대화론자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배치한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배에 실린 정책과 구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공이 무능하면 배는 좌초할 수밖에 없다. 연말까지 미룰 일이 아니다. 외교ㆍ안보전략의 차질 없는 성과를 위해서나, 당면 외교현안의 해법을 위해서도 외교ㆍ안보팀 개편은 빠를수록 좋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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