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메르스 사태 막을 수 없었을까… GEPP 개발 모태가 됐죠”

입력
2019.08.17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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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병 확산방지 프로젝트 앱 개발ㆍ보급 주역… KT 윤혜정ㆍ이선주 단장 

2015년 국내에 퍼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3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렇게 많은 사망자가 나왔던 것은 최초 감염자의 추적이 안됐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체류하면서 메르스에 걸렸던 최초 감염자는 바레인을 통해 귀국했다. 당시 보건당국은 바레인이 메르스 발병국이 아니었고 감염자가 사우디에 머물렀던 사실을 알 수 없어서 의심환자로 분류하지 못했다. 메르스 감염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그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자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병원을 3군데나 옮겨 다녔다. 의사들 또한 감염자의 중동지역 방문 사실을 몰라서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지 못했다.

지난 일에 ‘만약’을 가정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메르스 감염만큼은 예외다. 감염자의 사우디 체류 사실을 보건당국이 사전에 알았다면, 감염자가 사우디에 머물 때 메르스 감염 위험을 통보 받았다면, 의사들이 감염자의 중동지역 방문 사실을 알았다면 이후 사태가 달라졌을 수 있다. 3가지 가정에 대한 고민이 전세계 최초로 국가 감염병을 추적하는 KT의 감염병 확산방지 프로젝트(GEPP)의 모태가 됐다. 2015년 시작된 GEPP는 해외 로밍 이용자들이 메르스나 에볼라 바이러스 등 감염병 지역에 머물 경우 주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귀국하면 보건당국에서 관리하도록 지원해 감염병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GEPP는 휴대폰을 이용해 감염병을 추적하는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효과가 커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14일 KT는 아프리카 가나 정부와 GEPP 도입을 위한 제휴를 맺었다. 케냐 라오스 캄보디아 등 다른 국가들도 다음달까지 잇따라 KT의 GEPP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처럼 GEPP가 인류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전세계적 각광을 받게 된 이면에는 KT의 두 여성 임원이 있다. 윤혜정(53) 빅데이터 사업지원단장과 이선주(50) 지속가능경영단장이다. 12일 두 여성 임원을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만나 GEPP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감염병 확산방지 프로젝트(GEPP)를 진행한 주역인 KT의 윤혜정(왼쪽) 빅데이터사업지원단장과 이선주 지속가능경영단장이 GEPP의 해외 확대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KT 제공
감염병 확산방지 프로젝트(GEPP)를 진행한 주역인 KT의 윤혜정(왼쪽) 빅데이터사업지원단장과 이선주 지속가능경영단장이 GEPP의 해외 확대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KT 제공

-GEPP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맡나.

윤혜정: GEPP에 필요한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와 시스템 개발을 내가 맡고 전세계에 보급하는 일은 이 단장이 한다. 자동차의 엔진(윤 단장)과 운전대(이 단장) 같은 역할이다. 따라서 둘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고 한 몸처럼 긴밀하게 협력해서 일을 한다.

-GEPP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KT에서 해외 로밍 서비스를 이용해 감염병 발병국 방문 사실을 추적해 보자는 제안을 질병관리본부에 했다. 해외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용 국가를 확인할 수 있어서 감염병 지역을 다녀온 경우 바로 알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만든 GEPP는 감염병 발병국 방문자가 해외 로밍을 이용할 경우 질병 예방을 위한 주의사항 등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고 질병관리본부에도 알려서 귀국 후 잠복기가 지날 때까지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또 발병국 방문자가 병원에 가면 모든 의사들이 이용하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발병지역 방문 사실이 자동으로 표시돼 진료를 돕는다. 2016년에 KT만 우선 시작했으나 2017년부터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다른 통신업체까지 해외 로밍 이용자들의 정보를 질병관리본부에 제공하고 있다.

윤혜정 KT 빅데이터사업지원단장은 "외국인들도 한국에 많이 오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감염병 확산 방지 프로젝트(GEPP)에 많이 참여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KT 제공
윤혜정 KT 빅데이터사업지원단장은 "외국인들도 한국에 많이 오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감염병 확산 방지 프로젝트(GEPP)에 많이 참여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KT 제공

-로밍 대신 범용이용자식별카드(유심ㆍUSIM)를 해외에서 구입해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어떻게 추적하나.

이선주: 해외 여행자의 80% 이상이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유심칩 구매자처럼 로밍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해외 정부 및 통신업체들과의 협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유심칩을 구입하면 현지 통신업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국내 통신업체에서 방문국가 등을 알 수 없다.

그래서 GEPP는 유엔이나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범 지구적 과제로 진행해야 한다. 황창규 KT 회장이 2016년 6월 유엔 글로벌 콤팩트 리더스 서밋에서 GEPP를 전세계가 공동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KT는 국제기구에 동참을 호소하고 저개발국가들에 직접 GEPP를 보급하는 등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GEPP로 가축 감염병까지 막을 수 있다던데.

윤: 돼지열병,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 감염병까지 추적해 확산을 막는 프로그램(LEPP)으로 발전시켜 GEPP와 마찬가지로 해외에 보급할 계획이다. 가축 감염병이 사람에게도 전염된 적이 있는 만큼 가축 감염병 발병 지역의 축산물 차량 이동을 확인하는 앱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을 세계식량농업기구(FAO)와 여러 나라에 제안했다. 캄보디아 등에는 LEPP를 앱으로 만들어 보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축산물 차량 뿐 아니라 농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가축 감염병 발생시 경로를 차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이 가축 감염병이 발생한 국가에서 로밍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관련 축산물을 사오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어서 해외 가축 감염병의 국내 유입 차단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선주 KT 지속가능경영단장은 "GEPP를 전세계에 확대하기 위해 감염내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GEPP에 적극 반영해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KT 제공
이선주 KT 지속가능경영단장은 "GEPP를 전세계에 확대하기 위해 감염내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GEPP에 적극 반영해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KT 제공

-GEPP는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하는 이유는.

이: KT 직원들은 국민기업이라는 정서가 강해서 국가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GEPP는 통신업체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려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전세계에서 인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GEPP와 LEPP에 참여하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KT의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킬 것으로 본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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