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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 앞서
우수리스크에 흉상ㆍ기념비 건립
[저작권 한국일보]정병천(왼쪽부터) 국가보훈처 현충시설과장,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 안민석 최재형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 공동대표위원장, 소강석 추모위 공동대표위원장,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문영숙 추모위 공동대표위원장, 이블라디미르 우수리스크 시의원이 12일 오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열린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해 흉상과 기념비 건립을 축하하고 있다.

8ㆍ15 광복절을 사흘 앞둔 12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112㎞ 떨어진 우수리스크 시내에서 애국가와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1860~1920) 선생의 고택 내 마당에 모인 후손과 고려인, 정부 관계자 등 100여명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올해 4월 출범한 최재형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추모위)는 최재형 선생의 순국100주년(2020년)을 앞두고 그의 고귀한 희생과 위대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광복절에 맞춰 그가 순국 직전 머물렀던 고택 마당에 그의 흉상과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날 열린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한 최발렌틴(최재형 선생의 손자ㆍ82세)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은 “이곳을 지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 이곳에 살았기에 흉상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궁금해 할 것”이라며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의 삶과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새롭게 알게 되고, 그들의 공적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우수리스크 고려인 수십 명도 행사에 참석했다. 이블라디미르 우수리스크 시의원은 “이곳은 연해주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최재형 선생을 기리는 유일한 기념관”이라며 “그가 남겼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향후 한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러시아 동포들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최재형 선생. 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 제공
[저작권 한국일보] 러시아 우수리스크 시내 최재형 선생 고택 전경. 그는 1919년부터 순국 직전까지 이곳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함북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최재형은 9세 때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가족과 연해주로 이주했다. 11살에 가출한 후 선원이 돼 세계 각지를 다니다 1878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왔다. 이후 군수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그는 전 재산을 항일 독립운동과 한인 동포 교육 사업 등에 아낌없이 지원했다. 1908년 안중근 의사와 함께 국내 국외 최초의 독립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하고, 1909년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도 힘을 보탰다. 그의 우수리스크 고택에서 안 의사가 사격연습을 했다. 핍박 받던 동포들을 아낌없이 도와 ‘페치카(난로를 뜻하는 러시아어) 최’라고 불렸던 그는 1920년 4월 일제가 연해주 한인 의병을 공격할 당시 체포돼 탈출을 시도했다가 총격으로 안타깝게 죽음을 맞았다. 그의 시신과 묘소는 아직 찾지 못했다. 최발렌틴 회장은 “유해를 찾고자 많이 노력했지만, 우수리스크 감옥 인근 언덕에 버려졌다는 얘기만 들었지,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는 그의 사후 42년 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다.

최근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그의 기념비 건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날 개회사에서 안민석(더불어민주당 의원) 추모위 공동대표위원장은 “지난 100년간 역사에 묻혔던 위대한 독립운동가가 부활했다”며 “100년 전 총칼로 우리를 위협했던 일본이 경제적인 침략을 자행하는 지금, 우리는 최재형 선생의 고귀한 항일운동 정신을 받들어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수리스크=글ㆍ사진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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