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건 하고 살자, 열 달 여행 수업의 교훈이죠”

입력
2019.08.13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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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선 하반하 세계여행학교 대표 

 

이용선(가운데) 하반하 세계여행학교 대표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아이들과 거리 공연에 나섰다. 이 대표는 1년 중 10개월을 해외에서 여행하며 종종 한국의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선보인다. 이용선씨 제공
이용선(가운데) 하반하 세계여행학교 대표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아이들과 거리 공연에 나섰다. 이 대표는 1년 중 10개월을 해외에서 여행하며 종종 한국의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선보인다. 이용선씨 제공

15년간 생태놀이학교를 운영했던 부부가 학교를 접고 집을 팔아 초ㆍ중학생 자녀 셋과 함께 3년짜리 세계여행에 나섰다. ‘학교성적 77점이었던’ 자녀들은 주변의 우려와 달리, 귀국 후 저마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사회에 정착했다. 힘을 얻은 부부는 다른 집 아이들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아예 대안학교를 열었다. 열 달간 세계를 누비며 공동체 생활과 ‘먹고사는 문제’를 배우는 이곳의 이름은 ‘하반하 세계여행학교’. 하반하는 ‘하고싶은 것은 반드시 하면서 살자’의 줄임말이다.

10년째 이 학교를 운영하는 한재식(56), 이용선(53) 부부는 지난 3월 다시 열달짜리 여행에 나섰다. 미국, 캐나다, 남미 대륙과 호주로 떠나는 이번 여행에는 초등학생부터 24세 군필자까지 학생 21명, 인솔교사 5명이 함께 한다. 최근 이메일로 만난 이용선 씨는 “지금까지 하반하를 졸업한 학생은 121명인데 가장 큰 공통점은 (여행의) 경험을 기억해 스스로 자기 길을 잘 찾아가는 것”이라며 “일반적이지 않은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인 만큼 규율이 있다. 새벽 6시 일기를 제출하는 것으로 학교가 시작되면 외국어, 독서토론, 음악, 운동 등을 촘촘하게 배운다. 매일 정해진 분량의 영어 단어를 외우고 영어책을 읽고 여행 지역 언어도 배운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먹고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게 공교육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대표적인 교육이 ‘정산제도’. 현지에서 스스로 용돈을 벌고 사용 내역을 기록하는 건데, 여행 직후 일주일간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기록부터 시작한다. 수십 인분의 식사를 함께 준비하고, 빨래를 직접 한다.

이용선(맨 오른쪽) 하반하 세계여행학교 대표가 터키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에서 아이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용선 씨 제공
이용선(맨 오른쪽) 하반하 세계여행학교 대표가 터키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에서 아이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용선 씨 제공

이씨는 “아이들이 직접 배낭을 메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관계 맺고, 공부하고, 협동하며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공연을 하는 동안 천천히 변하기 시작한다”며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다는 걸 알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장기 여행 전 아이들은 한국에서 일주일에서 삼주일간 합숙을 하면서 예행연습을 한다. 이씨는 “함께 생활하며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사안을 소개하고 여행 중 공연하는 모듬북, 길놀이, 노래 등을 연습한다. 10대 청소년들과 여행하며 어디서든 환영받는 일은 재능을 보여주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할 나라도 사전 공부했다.

처음부터 열달짜리 여행프로그램을 운영한 건 아니었다. 세계여행 3년간 자녀들의 ‘폭풍성장’을 본 생태놀이학교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도 동참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시즌스쿨을 열었는데 40명이 몰렸다. 한데 한달 간의 인도 여행이 끝날 즈음 이들 부부가 깨달은 건 ‘시간이 너무 없다는 사실’이었단다. 이씨는 “한 달은 아이들 파악하는데 쓰이는 시간이다. 최소 1년은 함께 해야 좋은 습관을 갖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곧바로 10개월 팀을 만들었고 매년 15명 내외의 참가자가 모집됐다. 현재는 10개월 여행하는 팀 ‘정기수’, 여름방학, 겨울방학 한달 간 정기수에 합류하는 ‘시즌팀’으로 운영한다.

2006년 세계여행에 나섰던 한재식(왼쪽에서 네번째), 이용선(세번째) 씨의 세 자녀는 20대 청년으로 자랐다. 첫째는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일하다 현재 하반하 교사로, 둘째는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다 현재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셋째는 성신여대 학생으로 지낸다. 이용선씨 제공
2006년 세계여행에 나섰던 한재식(왼쪽에서 네번째), 이용선(세번째) 씨의 세 자녀는 20대 청년으로 자랐다. 첫째는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일하다 현재 하반하 교사로, 둘째는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다 현재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셋째는 성신여대 학생으로 지낸다. 이용선씨 제공

1년 중 10개월을 여행하는 삶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다시 태어나도 또 이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제 자신을 많이 볼 수 있거든요. 여행 중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하기도 하고요. 일반 학교에서 심하게 일탈했던 아이들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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