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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통해 ‘농약 외국 맥주’ 리스트가 확산되었다. 식약처는 해당 리스트에 포함된 국내 수입 맥주를 검사한 결과, 글리포세이트가 불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더위가 절정에 달했다. 산책을 멀리 못 가서 늘 안달인 나의 반려견이 몇 걸음 가다가 주저앉을 만큼의 폭염이다. 이럴 땐 집에 틀어박혀 선풍기를 틀어놓고 납량 특집 영화를 한 편 시청하며, 시원한 맥주 한잔 하는 것이 최고의 피서다.

납량특집, 선풍기, 맥주를 언급하고 나니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괴담이다. 루머라는 영어 단어로도 익숙하다. 사실인지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꽤 중요하게 여겨 구전하는 정보다. 불확실한 정보이기에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공포를 조장한다. 불안과 공포로 간담은 서늘해진다. 납량특집 영화가 종종 괴담을 다루는 이유다. 1998년 영화 여고괴담은 납량특집 공포 영화를 거론할 때 쉽게 떠오르는 작품이다. 한 여고 안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죽음과 그에 얽힌 사건을 다루었는데 공전의 히트를 해 시리즈가 5편까지 나왔다.

선풍기 괴담은 그 역사가 깊다.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을 수 있다는 내용인데,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팬 데스(Fan death)는 한국 문화에서 잘 알려진 믿음'이라고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유학 시절 미국 친구들에게 선풍기 괴담을 사실인 양 말해 주었다가 망신을 톡톡히 당한 적이 있다. 선풍기 괴담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국내 언론은 여름에 종종 선풍기로 인한 사망 사건을 보도했다. 정말 선풍기 바람 때문에 사망한 것인지 과학적 증거나 설명도 없이 말이다. 그러한 언론보도를 기억하는 일부 소비자는 선풍기를 여전히 살인 무기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괴담이 먹거리와 관계되면 무심코 지나치기 어렵다. ‘농약 맥주’ 괴담이 그 예다. 얼마 전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통해 제초제 성분인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되었다는 ‘농약 외국 맥주’ 리스트가 확산되면서 맥주 애호가들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식약처는 해당 리스트에 포함된 국내 수입 맥주를 검사한 결과, 글리포세이트가 불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글리포세이트는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분류한 발암물질 2A군에 속한다. 이 군은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발암물질로 추정되지만, 과학적 근거가 제한적인 물질들을 포함한다. 소고기와 같은 붉은 고기도 속한다. 반면 맥주와 같은 알코올은 비소, 벤조피렌, 벤젠, 담배 등과 같이 인체 발암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충분한 발암물질 1군에 속한다. 이 점을 지적하며 모 대학 화학과 교수는 “정작 걱정해야 하는 것은 글리포세이트가 아니라 술과 에탄올”이라고 언론에 기고한 바 있다. 부정확한 정보가 지나친 혹은 잘못된 걱정을 부추긴 셈이다.

디폰조와 보르디아는 ‘루머 심리학’이라는 저서에서 사람들은 루머를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부터 반복해서 듣고, 어떠한 반박도 듣지 못할 때 루머를 믿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SNS를 통해 친구나 지인으로부터 듣는 정보는 정확성을 떠나 믿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들은 사람들이 루머로 인해 공중 보건 전문가의 권고를 무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에서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오해와 괴담으로 국민이 예방 접종을 기피하여 홍역 등 감염병이 확산하는 비상사태가 초래된 것이 그 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 메르스 감염병 위기 당시 비타민C가 메르스를 예방한다는 괴담이 돌아, 비타민C 판매는 급증한 반면 정부의 권고 행동은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기도 했다.

여고 괴담이나 선풍기 괴담은 한번 밤잠을 설치거나 가볍게 넘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의 먹거리나 국가적 위험 이슈와 연관된 괴담이라면 SNS의 정보를 과신하기보다 공신력 있는 정보를 찾아 정확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내 일상이 공포와 불안으로 점철된 납량 특집 영화처럼 되지 않도록 말이다.

백혜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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