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그래피티 거장 존원이 지난 1월 서울경찰청 로비에서 물감을 뿌리는 액션페인팅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변화하는 경찰상을 주제로 ‘자유와 젊음’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서울경찰청 블로그

노랑색 나비, 흰색 나비, 그리고 주황색 물감이 만들어낸 작은 방울들.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물감을 문지르거나 뿌려 완성한 아름다운 그림. 꽃과 수많은 나비가 보이는 가로 10m, 세로 2m의 대형 걸개그림 ‘나비의 꿈’에서 평화나 희망, 행복만이 아니라 염원과 분노를 봤다면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고경일 상명대 만화ㆍ애니메이션학과 교수가 유럽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2014년 액션 페인팅 방식으로 완성한 이 그림은 세계에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알리기 위해, 일본에 대한 분노를 담아 그린 작품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무시와 편견, 차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비로 표현했다. 이 그림은 당시 서울 을지로 지하보도에 전시됐는데, 만취한 일본인이 한쪽 연결부위를 뜯어내 훼손했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고경일 상명대 교수가 2014년 시민들과 함께 만든 대형 걸개그림 '나비의 꿈'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질서정연한 회화를 파괴하는 액션 페인팅은 거친 방식과 다수의 참여가 가능한 이점 때문에 예술가들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낼 때 선호된다. 고 교수는 올해 6월에도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한국ㆍ일본 작가들과 함께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전시회를 열었다. 소녀상과 함께 역시 현지에서 액션 페인팅 방식으로 제작된 그림들도 함께 전시됐다.

액션 페인팅은 분노, 치유, 희망을 작품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보여준다. 2014년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열린 ‘대국민 치유 프로젝트’에서의 무용가 황규선씨의 모습. 한국사진방송 공식블로그

고 교수는 액션 페인팅 작품이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에 의해 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10m×2m 크기의 그림을 시민들이 참여해서 그린다면, 다 각자의 필체가 있기 때문에 나비를 쫙 그린다고 해도 화면 구성이 안 된다”며 “때문에 처음부터 계산을 하고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리 색을 골라놓고, 처음에는 블루계열의 색만 나눠줬다가 거둬들이고, 그 다음에는 레드 계열의 색을 나눠주고, 화이트는 고 교수 자신만 쓰는 식으로 색상의 조화를 고려한다. 미리 밑그림을 그려서 기본적인 통일성도 부여한다. 여기에 문지르고 뿌리는 등의 각 시민들의 개성적인 표현이 합쳐져 그림이 탄생하는 것이다.

고 교수는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해 만화와 회화 등을 넘나드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돈이 되는 그림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목적”이라며 “내용에 따라서 회화든 만화든 형식도 변화한다”고 말했다.

액션 페인팅은 회화 작품의 결과물보다 마치 살풀이 행위처럼 그 과정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고, 이 점이 사회적 메시지 전달이나 심리 치유에 적합하게 쓰인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공동의 트라우마를 겪은 국민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액션 페인팅 행사가 열린 적도 있다. 2014년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국민 마음 치유 프로젝트’가 진행돼 배우 겸 화가 민송아씨, 행위예술가 권노해만씨, 무용과 황규선씨 등이 참여해 대형 캔버스에 몸을 이용한 그림을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들의 슬픔을 표현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서울경찰청에서 그래피티 예술가 존원이 붓으로 물감을 흩뿌리는 방식의 액션 페인팅 작품을 제작해 전시했다. 기획 담당자인 변재민 경감은 “경찰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액션 페인팅 작품을 제작했다”며 “서울경찰청 1층 로비에 올해 말까지 전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변 경감은 “그래피티가 거리에서 이뤄지다가 예술성을 인정받아 전시로 정착한 역사를 갖고 있듯 경찰도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핵심 가치로 삼아 기존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참여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액션 페인팅 작품들은 아직 미술계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계를 갖고 있다. 고 교수는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재단들에서도 액션 페인팅을 작품으로 잘 보지 않고 이벤트로만 본다”며 “올해 해외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작가들이 돈을 십시일반 냈고 출혈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액션 페인팅이 어떻게든 미술 안에서 평가 받을 수 있는 구조로 가야 된다”고 말했다.

대학 강사이자 미술평론가인 이모씨는 “시민들이 참여해서 액션 페인팅을 한다는 것은 공공예술의 성격에 가까운데, 이런 공공성을 확보면서도 전문적이고 논리적인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느냐가 미술의 딜레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권현지 인턴기자

1950년 작품 ‘가을의 리듬’을 제작 중인 잭슨 폴록. 사진가 한스 나무스가 촬영했다.
 美 잭슨 폴록은 어떻게 ‘액션 페인팅'의 선구자가 됐나 

물감 뿌리는 잭(잭 더 드리퍼ㆍJack the Dripper). 영국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를 패러디 해서 잭슨 폴록(1912~1956)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액션 페인팅은 미국의 화가 잭슨 폴록으로부터 시작됐다. 결과물만 보면 추상화로 귀결되는 작품들을 주로 그렸는데, 미국평론가 해럴드 로젠버그가 그의 작업 행위에 초점을 두고 ‘액션 페인팅’이라고 정의했다. 커다란 화폭에 물감을 흘리고, 끼얹고, 튀기고, 쏟아 부으며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 주목한 것이다.

폴록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이며 20세기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한 명이다. 폴록의 작품은 마치 벽화처럼 규모가 큰 경우가 많다. 붓이 화폭에 닿지 않고, 물감을 뿌리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종이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서 작업하길 좋아했다. 딱딱하게 굳은 붓은 마치 막대기처럼 쓰인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에 따르면 폴록의 드리핑(물감 떨어뜨리기)은 크게 세 가지 원천이 있다. 우선 폴록 스스로 밝혔듯이 미국 서부 원주민의 모래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나바호족은 형형색색의 모래를 땅에 뿌려 그림을 그리는 관습이 있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영혼을 치유하는 의식이었던 셈이다.

다른 하나는 멕시코 벽화운동이다. 1936년 멕시코의 벽화가 다비드 시쿠에이로스가 노동절 행진을 위해 플래카드를 만들 때 폴록이 옆에서 도왔다. 멕시코 사회주의자들은 캔버스와 유화물감의 ‘이젤 회화’를 부르주아 문화의 낡은 관습으로 여겼다. 대형 화폭을 바닥에 깔아놓고 공업용 염료를 막대로 찍어 흘리는 폴록의 기법은 이런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 플래카드 만드는 기법과 닿아있다는 점은 액션 페인팅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방식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당시의 미국 화가들은 초현실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다. 초현실주의는 머리에 떠오르는 무의식적 문장을 그대로 받아 적는 방식이다. 이 문학의 기법을 그림에 적용시킨 것이 프랑스 화가 앙드레 마송의 ‘자동 드로잉’이며, 이는 폴록의 드리핑과 궤를 같이 한다.

미술평론가 이모씨는 “잭슨 폴록이 액션 페인팅을 했던 당시에는 혁신적인 지점이 있었다”며 “이젤에 세워 세로로 그리던 것을 눕혔고, 예술가의 특권이던 붓질을 버리고 물감을 뿌리면서 우발성에 맡기는 시도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그러나 “클레멘트 그린버그라는 비평가가 폴록의 작업에 엄청난 미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유명해졌고, 당시 미국이 국가적으로 유럽이 가진 회화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지원하면서 우상화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