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최소 15분 지나야 식욕 억제 호르몬 ‘렙틴’ 분비… 빨리 먹으면 불필요한 과식 불러 
국민의 90% 이상이 식사를 15분 이내 마치는 ‘후다닥 식사’를 하는 것으로 조사돼 비만과 각종 대사질환에 걸릴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국민의 90% 정도가 식사를 15분 안에 허겁지겁 마치는 것으로 조사돼 비만과 각종 대사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만 하는 사람을 ‘데스크 포테이토’라고 한다.

김도훈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이 이 병원에서 건강 검진한 8,775명의 식사 시간을 분석한 결과, 15분 이상 천천히 먹는 사람은 10%에 불과했다. 5~10분이 44.4%로 가장 많았으며 10~15분은 36.2%, 5분 미만에 식사를 끝내는 사람도 7%나 됐다. 15분 이내 식사를 끝내는 사람이 87%가 넘었다. 이처럼 식사를 급히 하면 비만이나 각종 대사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게 문제다.

 ◇식사 시작 15분 지나야 식욕억제호르몬 분비 

식욕은 식욕억제호르몬(렙틴)과 식욕자극호르몬(그렐린)에 의해 좌우된다. 렙틴은 음식을 충분히 먹었다는 신호를 뇌로 보내 먹는 행동을 멈추게 하고, 그렐린은 위가 비었을 때 공복감을 뇌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지방에서 분비되는 식욕억제호르몬인 렙틴은 1994년 제프리 프리드먼 록펠러대 교수팀이 발견했다. 렙틴은 식사를 시작한 지 최소한 15분이 지나야 분비된다. 특히 렙틴은 음식을 천천히 잘게 씹어 먹을수록 잘 분비된다. 그런데 15분 이내로 식사를 일찍 마치면 렙틴이 분비되지 않아 포만감을 덜 느끼게 되면서 과식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로 인해 칼로리 섭취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비만이나 각종 대사질환에 걸릴 위험도 높아진다.

조희숙 강원대 의료관리학 교수팀은 지역사회건강조사에 참여한 19세 이상 강원도 주민 1만5,833명(남성 7,311명, 여성 8,522명)을 대상으로 식사 속도와 비만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식사시간이 20분 이하로 짧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비만인 경우가 남성은 17%, 여성은 15% 많았다.

식사 시간이 5분 미만인 사람은 15분 이상인 사람보다 비만 위험은 3배, 당뇨병 위험은 2배, 이상지질혈증 위험은 1.8배, 지방간 위험은 23배 높았다. 특히 식사를 빨리 하는 식습관이 오래될수록 급성심근경색은 물론 뇌혈관질환, 뇌졸중이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

음식을 빨리 먹는 사람은 대체로 입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넣으면서도 씹는 횟수는 적다. 한 술 가득 입안에 넣고 몇 번 우물우물하다 삼키게 된다. 음식물은 20~30회 정도 오래 씹어야 잘게 부서지면서 침속 소화효소가 골고루 닿는다. 대충 씹은 상태의 많은 음식물이 한꺼번에 위로 내려가면 위에 무리가 가게 된다.

음식물이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위점막이 위산에 더 많이 노출되고, 소화 기능이 떨어져 소화불량, 복통, 속쓰림 등이 생긴다. 장기간 이어지는 불량한 식습관으로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위암 등에 노출될 위험도 높아진다.

최영은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음식을 급하게 먹으면 식후 역류 증상을 일으킬 위험이 높아져, 5분 내에 식사했을 때가 30분 이내 식사하는 것보다 역류 증상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했다.

반면, 렙틴과 정반대 역할을 하는 식욕촉진호르몬인 그렐린은 공복 시 위장에서 분비돼 식욕을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식사 직전에 수치가 최고로 높아지며 식사 1시간 뒤에는 최저로 떨어지게 된다. 그렐린 분비량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평소 식사를 자주 건너뛰거나 굶는 다이어트를 지속하면 뇌신경을 더 강하게 자극해 그렐린이 더 많이 분비된다. 식사량 조절이 어려워져 과식이나 폭식을 유발하는 이유다.

식욕촉진호르몬인 그렐린을 줄이려면 아침 식사를 거르지 말아야 한다. 아침 식사를 거르면 그렐린이 늘어 칼로리를 더 많이 섭취하기 때문이다. 하루 세 번, 제때 식사를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식사 중간에 출출할 때 호두·아몬드 등 견과류 중심의 간식을 먹어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음식을 오래 씹으면 치매도 줄여 

음식을 씹는 것은 뇌 건강에도 중요하다. 입안에서 음식물을 씹으면 대뇌피질을 자극하고, 뇌로 가는 혈류를 늘려 뇌세포에 충분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함으로써 치매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실제로 잘 씹지 않는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 치매에 더 많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치매 환자에게 치료운동으로 씹는 운동을 권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음식을 먹을 땐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먹는 ‘느림보 식사법’을 실천하는 것이 비만 예방과 건강 증진을 위해 필수적이다. 먹는 식사시간을 늘리면 역설적으로 불필요한 과식을 줄여 체중감량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김선미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허겁지겁 급하게 밥을 먹으면 뇌에서 ‘배가 부르다’는 포만감을 인지하지 못해 과식하기 쉽다”고 했다. 최영은 교수는 “음식은 최소 20번 이상 충분히 씹고, 음식물을 완전히 삼킬 때까지 다른 음식을 먹지 않고, 숟가락 대신 젓가락으로만 식사해도 천천히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게티이미지뱅크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