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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말벗 봉사 단체 ‘꾸래’와 함께 한 백사마을
백사마을 초입 전경. 재개발을 앞두고 세입자들이 목소리를 내고자 현수막을 걸어 놨다. 정유정 인턴 기자

“세입자의 권리 함께 지킵시다.”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에 위치한 백사마을. 불암산 자락 마을 입구는 거미줄 같은 전선과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으로 어수선했다. 2009년부터 10년을 끌어오던 재개발 정비계획안이 지난 5월 드디어 통과되면서 주민들도 재개발 준비에 한창이었다.

백사마을은 서울에 몇 안 남은 판자촌 중 하나다. 옛 주소 ‘104번지’를 따 ‘백사’라 이름 붙은 이 마을은 서류 상으로는 1,024가구가 살고 있다. 그러나 빈 집 비율이 높아 실제로 거주하는 가구는 500가구도 채 되지 않는다.

백사마을 골목길을 지나다 볼 수 있는 집들. 지붕이 다 헤지고 부서져 있다. 정유정 인턴기자

인적이 드문 데다 비까지 내린 후라 동네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골목길을 지나다니며 보니 성한 집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지붕 위 벽돌과 판자는 군데군데 부서져 있었고, 집 보수를 위에 덮어둔 천은 찢어져 바람에 날렸다.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들여다 본 어느 집 마당은 오랫동안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인지 1m 남짓 되는 잡초가 무성했다.

꾸래가 말벗 활동을 위해 봉사 대상자 집을 찾아가고 있다. 청년들 주변에 엉성하게 판자를 덧댄 집들이 보인다. 사진은 지난 4월 모습. 꾸래 제공

이 마을을 주기적으로 찾는 2030이 있다. 봉사단체 ‘꾸래(꾸준히 만날래)’는 여름이면 폭염에, 겨울이면 혹한에 내몰리는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2주에 한 번 마을을 찾는다. 이 날도 청년들은 삼삼오오 모여 동사무소를 통해 연결된 독거노인의 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봉사를 시작했죠. 리더 공정윤(28ㆍ합동신학대학원 신학전공)씨는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폐지를 주우러 돌아다니는 한 할머니를 본거예요. 세상은 축제 분위기인데 홀로 빨갛게 언 손으로 폐지를 정리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 분이 백사마을에 사신다는 것을 듣고 시작하게 됐죠.” 공씨와 마음이 통한 청년들은 꾸래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꾸준히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백사마을 골목길. 경사가 높아 건장한 청년도 오르기 쉽지 않다. 꾸래가 만나러 가는 독거노인의 집을 가기 위해서는 이 골목을 지나야 한다. 정유정 인턴기자

“몸 불편하고 생계 어려울수록 집이 산 꼭대기에 있는 것 같아요.”

꾸래가 목적지로 향하기 전, 마을 주민들과 안면을 트기 위해 마을 입구 쪽에 위치한 집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고개를 내민다. 열린 문 안으로는 유명 상표 신발들이 진열된 신발장이 보인다. 박상우(24ㆍ한양대 경제 전공)씨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마을 초입에 위치한 집들은 생계가 나아 보여요. 우리가 만나러 갈 할머니 댁은 지금부터 약 30분간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해요. 할머니는 무릎도 안 좋으셔서 외출도 잘 못하시는데. 안타깝죠.”

약 20분간 등산하듯 비탈길을 올랐다. 높은 언덕 끝 집 앞에 놓인 서로 다른 높이의 낡은 의자 4개가 보인다. 그 중 한 의자에만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이복실(73ㆍ가명) 할머니는 “집이 너무 더워 밖에 나왔다”며 젊은이들이 반가운 눈치였다. 이씨의 집은 다른 집들과 다닥다닥 붙어있어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열기가 잘 빠지지 않는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라도 있으면 좋겠우. 근데 없으니께 이렇게 나와서 바람이나 쐬는 거지. 근데 손에 든 건 뭐우? 먹을 거라구? 나 줄 겐가?”

꾸래와 함께 봉사 대상자 집을 찾아 가는 길. 벽화 봉사자들이 예쁘게 그려놓은 벽화와 좁고 지저분한 골목이 보인다. 정유정 인턴기자

꼬불꼬불 골목길을 지나 꾸래와 함께 도착한 집. 미리 모여있던 세 할머니가 이들을 반갑게 맞는다. “우리 선생님들 온다구 어제 도나쓰도 미리 사두고 떡집 가서 떡도 쪘지.” 김금분(80ㆍ가명) 할머니가 일행을 반겼다.

김씨는 하루 2시간 30분씩 한 달에 10번 복지관에서 일감을 받아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주변 초등학교에서 급식 도우미, 학교 앞 교통정리, 쓰레기 줍기 등을 한 뒤 김씨가 받는 돈은 한 달에 27만원. 그러나 요즘 김씨는 수입이 없다. “무릎이 쑤셔서 힘들긴 해도 생활비를 버니까 좋지. 근데 지금은 학교가 방학이잖어. 그럼 나도 방학인 거여. 두 달은 돈 못 벌고 이렇게 집에 있는 거지, 뭐. 별 수 있남?”

꾸래가 말벗 활동을 하며 할머니들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있다. 지난 3월 촬영된 사진. 꾸래 제공

김춘향(84ㆍ가명) 할머니는 재개발에 별 감흥이 없다. “10년째 똑같은 소리만 했어. 항상 진짜 할 것처럼 하다가 결국 안 했다구. 재개발 설명회 들으러 오래서 갔는데두 뭔 소린지 한 개두 모르겠어. 그래서 보상으로 얼마를 준단 건지…”

“재개발 되면 갈 데가 없어.. 내가 얼른 죽어야지.” 재개발 소식이 달갑지 않기는 이금선(91ㆍ가명)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백사마을에서 40년을 넘게 살다가, 몇 년 전 무릎 수술 후 간병할 사람이 없어 아들 집에 약 2년간 얹혀 살았다. 술을 마시면 행패를 부리는 아들 때문에 백사마을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주 경력 때문에 재개발에 따른 보상비를 받지 못하게 됐다.

백사마을 골목길. 지역 청년들이 벽화 봉사자들이 칠해 놓은 벽화로 벽들이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져 있다. 정유정 인턴기자

봉사자 박은정(36ㆍ대학강사)씨는 “우리 청년들이 어르신에 대한 한시적인 관심에 그치지 않고, 어르신들의 마음을 환하게 해드릴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노력할거예요. 이런 어르신들의 열악한 환경에 좀 더 많은 사람이 관심 가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정유정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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