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기준금리 인하해야”… 연준 전임 의장들은 집단 반발

입력
2019.08.07 16:30
수정
2019.08.08 00:1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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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문제는 中 아닌 연준” 또 금리 인하 압박

지난해 11월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제롬 파월(오른쪽) 당시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EPA=워싱턴 연합뉴스
지난해 11월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제롬 파월(오른쪽) 당시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EPA=워싱턴 연합뉴스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에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응수한 미국 정부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를 향해 기준금리 대폭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이 대중 환율전쟁의 다음 수순으로 자국 금리 인하를 통한 달러화 가치 절하를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은행 독립성 보장’이라는 불문율을 깬 노골적 요구에 연준은 전임 의장들이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등 집단 반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ㆍ제조업 정책국장은 6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 출연해 “미국의 기준금리를 다른 나라와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연준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최소 0.75%포인트 또는 1%포인트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바로는 미국의 높은 기준금리 탓에 고용과 수출이 억제돼 성장률이 떨어졌다고 강조했다.

미 정부 내 대중 강경파로 손꼽히는 나바로의 발언은 전날 중국이 고시환율 절하로 이른바 ‘포치(破七ㆍ달러당 7위안 돌파)’를 유발한 것을 겨냥, 미국도 환율 측면에서 대응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준의 금리 인하는 달러가치 하락을 유도한다. 실제 나바로는 이날 “(연준의)금리 인상이 미국 달러를 강세로 만들어 수출을 억제했다”며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5일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을 예고하는 트윗에서 “연준도 듣고 있느냐”며 금리 인하를 에둘러 압박했다. 트럼프는 7일에도 트윗을 통해 “우리의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연준”이라며 “연준은 더 큰 폭으로 더 빨리 금리를 내리고 터무니없는 양적 긴축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정부의 전례 없는 통화정책 간섭에도 그간 대응을 자제해온 연준은 이번엔 강하게 반격하고 나섰다.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 전임 연준 의장 4명은 6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미국은 독립된 연준을 필요로 한다’는 제목의 공동 기고문을 실었다. 이들은 “연준과 의장은 단기ㆍ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이, 경제에 가장 이익이 되도록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트럼프 비판 성명이었다. 이들은 “정치 지도자들이 선거철에 즈음해 단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을 요구하는 일이 많았다”며 “정치적 필요에 기초한 통화정책은 결국 경제 악화로 귀결됐다”고 지적했다. 또 제롬 파월 의장에 대한 트럼프의 비난을 겨냥해 “연준 의장은 정치적 이유에 따른 해임이나 강등 위협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현직 연준 인사도 나섰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6일 공개 강연에서 “서로 한방씩 치고받는 무역전쟁 와중에 연준이 (금리 조정으로)일일이 대처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불러드는 연준 내 대표적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이지만 미중 무역분쟁에 금리 인하를 동원하자는 정부의 주장은 물리친 셈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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