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전쟁, 보다 공격적 전략이 필요할 때

입력
2019.08.08 04:40
25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당정청 협의회가 4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이낙연 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당정청 협의회가 4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이낙연 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일본 아베 정부의 도발로 시작된 한일 경제관계가 갈등을 넘어 사실상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모두가 손해를 보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전쟁의 모습이다. 전쟁에 임하는 일본의 무기는 바로 수출규제다. 자국 산업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반도체 등 우리 주력산업에 치명적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가 너무도 분명히 읽혀진다. 전쟁은 피해야 하겠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라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승리해야 한다.

승리를 위해서는 방어도 중요하지만, 효과적인 공격수단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일본의 추가 공격까지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는 지난 8월 2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백색국가 배제 관련 1,194개 품목 중 대일의존도가 높은 159개 품목의 공급 안정성 확보, 피해기업 지원 등과 함께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자립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다분히 수비와 방어에 치중한 대책인데, 현 국면에선 보다 공격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159개 품목뿐 아니라 1,194개 품목 전체, 그리고 이번 백색국가 배제와 관련이 없더라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모든 품목의 수입선을 다변화하여 대일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어야 한다.

방어전략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우선 품목분류를 보다 세분화해야 한다. 같은 품목이라도 기술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이번에도 단순한 불화수소가 아닌 초고순도 제품이 문제였다. 기업현장에서 소재 부품 기술의 공급체계를 뿌리부터 정밀 해부해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과제별로 예산과 함께 금융 세제 입지 등 지원방안, 환경 노동 공정거래 등 규제개혁방안이 입체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선정된 과제는 정부 내 과제별 책임전담제를 도입하여 끝까지 끈질기게 관리하여야 한다.

소재 부품 산업 육성은 어제 오늘의 과제가 아니다. 많은 양적 성과에도 외국, 특히 일본의존 문제는 좀처럼 극복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 동안 나왔던 대책들이 너무도 ‘공급자’ 중심이었던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과제는 철저하게 기업 현장의 실태와 수요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써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기술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중소기업 및 연구기관뿐 아니라 이 제품을 실제 필요로 하고 구매하는 수요기업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대기업의 지식과 경험, 역량이 과제선정부터 연구개발, 시험, 인증, 양산 등 전 과정에 걸쳐 중소ㆍ중견기업 및 연구기관과 활발하게 공유되어야 한다. 구매조건부 R&D, 공동투자, 전략적 제휴, 협업, 컨소시엄 구성 등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는 초기 단계의 위험부담을 덜어주고 인센티브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공급자인 ‘소재부품 전문기업’ 육성 위주로 운영되어온 특별법은 전면적으로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가깝다고 생각해온 이웃이 하루아침에 수출규제라는 칼을 들고 적으로 돌변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정국가에의 높은 의존도가 무엇보다 큰 위험요인이라는 점을 확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단기 경영효율이나 비용절감,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라도 중소ㆍ중견기업과의 상생협력 생태계 조성, 공급선 다변화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번 도발은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우리는 위기를 극복해온 경험과 저력이 있다. 어떤 면에선 우리 경제의 여러 가지 난제를 해결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소재 부품 장비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기술독립’을 이루고, 산업구조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경제침략이 궁극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전화위복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전쟁의 승리이자 진정한 극일(克日)의 길이라고 믿는다.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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