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기술의 발전!' 홀로그램 동물 공연하는 독일 서커스단

입력
2019.08.06 15:31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코끼리의 모습(왼쪽)과 코끼리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상영한 공연.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코끼리의 모습(왼쪽)과 코끼리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상영한 공연.

안녕하세요. 동물을 연구하는 함수정이에요. 오늘은 반려동물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바로 서커스에 이용되는 동물이에요.

독일은 2002년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최초로 헌법에 인간의 동물보호 책임을 명시해 동물권을 헌법으로 인정하였어요. 그만큼 동물에 대한 독일인들의 인식이 꽤 높아요. 하지만 독일에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동물들이 많아요.

서커스에 등장하던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러스트레이션. luplupme
서커스에 등장하던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러스트레이션. luplupme

 독일에도 존재하는 동물 서커스 

예전에는 여러 동물들이 서커스에 등장했어요. 큰 공 위에 올라가서 균형을 잡는 코끼리, 자전거를 타는 곰, 불붙은 고리를 뛰어넘어 통과하는 호랑이나 사자 등 큰 대형 야생동물과 맹수들도 서커스에 이용했어요.

코끼리와 사자 같은 야생동물을 이용하는 서커스단은 이제 많지 않지만, 말, 낙타, 개 등의 동물이 주로 서커스를 위해 이용되고 있어요. 서커스가 끝나면 추가로 돈을 조금 받고 동물들을 만져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곳도 있고요. 독일 여러 지역의 많은 동물보호단체들은 서커스에서의 동물 이용에 반대하며 서커스가 열릴 때마다 그 앞에서 시위나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동물학대에 박수는 없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서커스 동물 반대 시위를 벌인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
"동물학대에 박수는 없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서커스 동물 반대 시위를 벌인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

많은 유럽연합 국가는 이미 서커스에서 행하는 동물공연을 전면적으로 또는 특정 동물공연을 법적으로 금지했어요. 이탈리아, 그리스, 키프로스는 서커스에서 모든 동물공연을 금지했고,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아일랜드 등의 나라에서는 특정 동물공연, 특히 야생동물의 공연을 금지했어요.

독일에서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동물보호단체들이 서커스에서의 전면적인 동물공연 금지에 관한 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나지 않고 있어요. 몇 년 전 독일 동물보호법으로 원숭이, 하마, 곰 등 특정 야생동물의 사육조건을 개정했지만, 다른 야생동물이 서커스에 이용될 때 갖춰야 할 사육조건에 대한 법률은 미흡하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 시행하는 것처럼 서커스 동물에 대한 법적인 금지는 없어요.

서커스 동물공연 금지에 관한 법적 규율 여부를 보여주는 유럽 지도. 애니멀스 유나이티드(Animals United)
서커스 동물공연 금지에 관한 법적 규율 여부를 보여주는 유럽 지도. 애니멀스 유나이티드(Animals United)

 서커스 동물의 훈련법 

반려견을 교육할 때는 보통 먹이를 보상으로 사용해 어떤 특정 행동을 하면 그 보상을 주죠. 하지만 서커스 동물 훈련은 이와 아주 달라요. 서커스 공연을 위한 훈련은 쇠사슬로 동물의 발을 묶어두고 채찍, 회초리로 때리거나 꼬챙이로 찌르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동물학대라는 비판을 받아왔어요. 서커스 동물이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을 보상으로 여겨 훈련이 되게 되는 것이죠. 아니면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두었다가, 훈련에 잘 따르면 먹이를 보상으로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요. 배고픔에 방치해 동물이 훈련에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죠. 우리가 재주라고 표현하는 서커스 동물들의 행동은 이렇게 강압적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며, 동물들이 자연적으로 하지 않는 행동이기에 그들의 본능과 야생성을 무시하는 거예요.

 서커스 동물의 열악한 사육 환경 

서커스에 이용되는 동물들은 작은 우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머무르고, 서커스단이 다른 지역으로 움직일 때는 몸을 돌리기도 힘든 좁은 이동장 안에서 긴 자동차 여정을 견뎌야 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관리되고 있어요. 동물보호단체들이 서커스단에서 기르는 동물들의 우리를 기습 방문해 그들의 열악한 사육 환경과 건강 상태를 폭로한 적도 있었어요.

또한 서커스에 이용되는 야생동물들은 대부분 높은 지능을 갖고 있고 사회적 동물이지만, 종 특징에 적합한 사회적인 접촉 없이 서커스단에서 평생을 보내기도 해요. 이는 동물의 존엄성과 자유 욕망을 짓밟는 것이죠. 공연장의 시끄러운 음악, 밝은 조명, 관람객들의 시끄러운 박수는 서커스 동물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줘요. 이런 환경에 처한 서커스 동물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곤 해요. 코끼리가 앞뒤로 몸이나 좌우로 머리를 흔드는 행동이 대표적인 정형행동의 예인데요. 이런 것에 무지한 사람들은 코끼리가 춤을 춘다고 표현하기도 하죠.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코끼리의 모습. 프로텍팅 와일드라이프(Protecting Wildlife)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코끼리의 모습. 프로텍팅 와일드라이프(Protecting Wildlife)

 허술한 관리 및 늙고 방치된 서커스 동물들의 문제 

서커스 동물을 제어하는 것은 쉽지가 않기에 생긴 문제들도 많아요. 서커스에서 탈출해 문제를 일으킨 동물들도 많았고, 서커스 동물에게 죽임을 당한 조련사도 있어요. 그리고 늙고 방치된 서커스 동물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문제가 되기도 해요.

몇 년 전 한 동물보호단체가 독일 서커스단에서 40년 넘게 지낸 침팬지를 네덜란드에 있는 보호소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해당 서커스단을 고소했어요. 이 침팬지는 독일에 마지막으로 남은 서커스 침팬지예요. 2011년부터 시작한 이 긴 법정 싸움은 2018년 법원이 서커스단의 손을 들어줘서 침팬지가 서커스단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어요. 판결 이유는 40여 년 동안 서커스단에서 지낸 침팬지를 다른 보호소로 보내면 이미 나이가 많고, 사회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기 힘들 거로 추측하기 때문이라 해요. 이 사건은 서커스단에서 동물의 종 특성이 무시되고, 다른 동종 개체들과의 사회적인 접촉 없이 지내면 그들의 본 모습을 잃는다는 걸 보여주는 예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40여 년을 서커스단에서 지내 온 침팬지와 서커스 단장.
40여 년을 서커스단에서 지내 온 침팬지와 서커스 단장.

요약하자면 서커스 동물은 아래와 같은 문제를 갖고 있어요. 전문가들은 서커스단에서 동물복지에 맞도록 동물을 사육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해요.

-동물이 강압적인 방법으로 훈련되고 공연에 이용된다.

-서커스 동물은 1년에 50번 정도 도시들을 돌아다닌다

-동물들이 대부분 시간 동안 작은 우리나 좁은 이동장에서 지낸다.

-사회적 접촉이나 종 특성에 맞는 움직임이 현저히 제한된다.

-동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전혀 충족되지 않는다.

-종 특성에 맞는 먹이 제공이나 관리가 부족하다.

-야생동물 담당하는 수의사는 국가 전체적으로 많지 않고 대부분의 서커스단은 재정이 부족해 서커스 동물들에 대한 수의학적인 검사나 돌봄이 불충분하다.

-서커스 산업 종사자는 동물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다.

-서커스단 공연이 없는 겨울에는 동물들이 지내기에 적합한 장소가 없다.

동물을 이용한 서커스를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의 캠페인 포스터. 위쪽에 쓰인 "고통이 얼마나 웃기니?"라는 문구와 쓰러져 있는 코끼리 사진으로 서커스 동물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독일 동물보호협회(Deutscher Tierschutzbund)
동물을 이용한 서커스를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의 캠페인 포스터. 위쪽에 쓰인 "고통이 얼마나 웃기니?"라는 문구와 쓰러져 있는 코끼리 사진으로 서커스 동물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독일 동물보호협회(Deutscher Tierschutzbund)

 진짜 동물 대신 3D 홀로그램 이용한 동물공연 등장 

이렇게 동물을 서커스에 이용하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는데요. 최근 세계 언론을 통해 독일의 론 칼리(Roncalli) 서커스단이 내놓은 3D 홀로그램을 사용한 동물공연이 주목을 받았어요.

론 칼리 서커스단은 1990년대 초반 코끼리, 사자 등 야생동물과 함께 하던 동물공연을 중단했어요. 하지만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나 당나귀 같은 동물을 여전히 서커스에 등장시켰죠. 2018년에 모든 동물공연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환영했다고 해요. 마침 제가 사는 함부르크에서 이 서커스단이 공연 중이라 직접 가볼 기회가 있었어요.

론 칼리 서커스의 공연 포스터. 론 칼리 서커스는 1976년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순회공연을 하고 있고 가장 유명한 서커스단 중 하나다.
론 칼리 서커스의 공연 포스터. 론 칼리 서커스는 1976년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순회공연을 하고 있고 가장 유명한 서커스단 중 하나다.

론 칼리 서커스단은 1~2년 단위로 새로운 주제의 공연을 하는데요. 이번 공연의 주제는 'Storyteller: gestern, heute, morgen(스토리텔러: 게스턴, 호이트, 모르근)'이었어요. 한국말로 번역하면 '이야기꾼: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뜻이에요. 론 칼리 서커스단이 지금까지 어떠한 공연을 보여줬고, 동물공연을 중단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담았죠.

독일에서도 서커스 산업은 이미 많이 쇠퇴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요. 론 칼리 서커스 공연의 가장 저렴한 표가 한국 돈으로 5만 원 정도 하는데 가득 찬 공연장의 모습에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어요. 동물공연 중단 후 홀로그램을 사용한다고 보도된 것도 이번 공연의 인기 원인이기도 해요.

 직접 가서 경험한 론 칼리 서커스 공연 

사실 전체 공연 중 홀로그램으로 동물을 보여주는 것 자체는 5분 남짓으로 굉장히 짧았어요. 처음에는 여러 마리의 말이 공연장을 빙글빙글 도는 것으로 시작해 예전에 실제 말이 어떤 모습으로 서커스에서 보였는지 추측해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커다란 코끼리 홀로그램이 앞발을 들어 올리는 자세를 취했어요. 과거엔 실제 코끼리가 이런 훈련된 행동을 보여줬던 것이죠.

홀로그램을 보여주는 중간에는 두 사람이 뒤집어쓴 말 모양 인형이 등장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전체 서커스 공연 중에는 커다란 코끼리 인형을 사용해 마치 사람이 코끼리 위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었어요.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예전에는 진짜 말과 코끼리가 훈련사와 함께 공연장에 등장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서커스단의 어제'를 알려줬어요.

서커스에 등장한 사람이 뒤집어쓰고 있는 말 모양의 인형탈과 코끼리를 탄 것처럼 보여주는 인형탈.
서커스에 등장한 사람이 뒤집어쓰고 있는 말 모양의 인형탈과 코끼리를 탄 것처럼 보여주는 인형탈.

중간중간 마술공연도 펼쳐졌는데요. 아무 것도 없는 모자 안에서 비둘기가 등장하거나 천 안에서 토끼가 등장하는 마술을 했어요. 하지만 여기서 등장한 비둘기나 토끼도 모두 실제가 아닌 인형이었어요. 결국 공연 끝까지 진짜 동물은 단 한 마리도 등장하지 않았어요. 마술공연에 흔히 이용하는 소형 동물도 모두 다 대체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저는 사실 큰 기대가 없었는데 공중곡예, 마임, 슬랩스틱 무대 등으로 가득 찬 서커스 공연이 생각보다 즐거웠어요.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 서커스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이었어요.

론 칼리 서커스단의 동물 없는 공연, 동물을 보여주는 홀로그램 사용은 페타(PETA)를 비롯한 많은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모범적이고 이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독일에 서커스 동물을 규제하는 법은 아직 없지만, 이미 대중들의 서커스 동물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아요.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서커스단이 동물공연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깨닫고 중단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요.

독일 동물보호법 1조에는 '그 누구도 합리적 이유 없이 동물에게 고통, 괴로움 또는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라고 쓰여 있는데요. 이처럼 여전히 서커스에 이용되고 있는 동물들이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규정이 하루빨리 제정되었으면 좋겠어요.

함부르크 = 함수정 동그람이 독일 통신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