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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대결 목적을 분명히 하고
새 패러다임을 위한 내부 대화 필요
자유로운 토론에 찬물 끼얹지 말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류효진기자

“비국민이라고 불릴지 모르지만….” 요즘 일본 언론의 칼럼 등에서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필자들이 이렇게 한 자락을 깐다. 한국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는 여론의 분위기가 엿보인다. 비국민(非國民)이란 단어는 흥미롭다. 일본 국민이 아니라는 뜻이지만 외국인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전에 따르면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거나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멸시해 부른 말로 2차대전 이후엔 금기가 됐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까지 이 말이 갖는 이미지는 강렬하다. 전전(戰前)세대의 일본인은 저마다 이 말에 대한 기억이 있다. 금발 푸른 눈 인형을 감춰야 했고, 아이들과 소풍을 갔다가 이웃에게 욕을 듣는가 하면, 무심코 한 말이 오해를 사 파출소에 끌려갔다. 모두 비국민이란 이름으로.

국가권력이 공동체 도덕 기준을 결정하고 생활까지 위력으로 지배하는 게 파시즘의 특징이다. 비국민이란 말은 관제 지식인들이 만든 뒤 공권력이 강제하게 됐다. 청일전쟁 때 처음 나온 뒤, 러일전쟁 때는 일상적으로 언론 공격에 등장했다. “그대여, 부디 죽지 말아라(君死にたまふこと勿れ)”란 시를 쓴 시인 요사노 아키코(与謝野晶子)는 반전론자도 아니었지만, 뤼순(旅順) 전투에 징용된 동생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시를 읊어 비국민의 상징이 됐다.

역사의 교훈을 일본말에서 찾자는 건 아니다. 이 말의 유령이 지금 우리 사회에 남아 방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에 대한 공격을 집권세력이 관리한다면 그건 일제 비국민 부르기의 변종이다. 우리 시민사회는 그런 시도를 경계하고 실제로 배격해 물리친 사례가 많다. 하지만 계속되는 고위 당국자들의 친일파 공격, 청와대의 공직사회 언행 단속 소식이 우려를 더한다.

지금은 국민과 국민, 정부와 국민 사이에 많은 대화가 필요할 때다. 이 전쟁의 목적은 무엇인가? 단기적 승리는 어떻게 정의되고, 장기적 승리는 어떤 상태인가? 궁금증이 드는 것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아베 정권의 목표는 비교적 명확하다. 단기적으로는 문재인 정권에 쇼크를 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전후 레짐의 탈각이라는 구호로 포장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단기 목표는 일본의 기습 공격을 물리치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 목표는 지금 불투명하고 우리 내부에 모순이 보인다.

아베의 비전에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후퇴가 전제된다. 2차대전 후 도쿄 재판은 승자에 의한 부당한 재판, 맥아더 군정의 개혁과 평화헌법은 아름다운 일본의 진화를 미국이 중단시킨 것이라는 게 그가 청산할 ‘전후 레짐’의 초석이다. 문재인 정부는 친일 잔재 청산을 내세웠지만 국내용 과제다. 평화경제가 한일 관계도 해결할 것이라는 통합 비전도 모든 길이 평양으로 통하지 않는 한 우리의 로드맵이 될 수 없다. 정부는 냉전체제가 불완전한 독립과 파시즘 청산을 가져 왔다는 내부 모순에 천착해 왔지만, 앞으론 냉전의 승자로서 누렸던 혜택을 재음미하고 새로운 대외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부터이고, 서로 다른 생각을 모으는 게 승리하는 길이다. 러일전쟁 때 일본은 뤼순 요새 공방에서 승리했지만 러시아군에 버금가는 희생을 내고 국력을 소진해 미국의 중재로 포츠머스협정을 체결했다. 일본 국민은 분노해 도심 히비야공원을 불태우고 폭동을 일으켰다. 전쟁의 실정을 몰랐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50억엔의 배상금이나 러시아 남부 영토의 할양 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선동했다. 생각이 질식한 일본 사회는 2차대전 때까지 폭주를 계속했다. 맥아더의 개혁은 스스로 멈추지 못한 열차를 멈춘 것이다. 이제 한국과 일본이 미국 없이 직접 부딪힌다는 것은 원치 않더라도 새 사고의 틀, 패러다임을 짠다는 걸 뜻한다. 정권의 이해는 국민의 이해와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말은 틀리기 마련이고, 생각은 때로 국익과 어긋난다. 그래도 토론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없도록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자유로운 생각이 살아 숨쉴 수 있는 공간이고, 장기전에 필요한 공간이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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