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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나 처음 바다로 들어가는 새끼 아델리 펭귄. 극지연구소 제공

2월의 남극 인익스프레시블섬(Inexpressible Island) 해안가엔 새끼 아델리펭귄이 잔뜩 모여든다. 약 두 달간 부모의 보살핌을 받던 펭귄이 바다로 나갈 때가 된 것이다. 깃갈이가 끝나가는 새끼들의 몸엔 여전히 솜털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벌써 짧은 남극의 여름이 지나고 있었다. 이러다 언제 혹독한 겨울이 닥칠지 모른다.

2018년 2월 11일, 초속 10m가 넘는 강풍이 부는 날씨였지만 펭귄들은 떼를 지어 바다에 모였다. 하지만 쉽사리 바다로 뛰어들지 못했다. 강한 파도 탓도 있지만 어디서 갑자기 포식자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때를 기다리는 듯했다. 표범물범은 가장 대표적인 펭귄의 포식자다. 이름처럼 표범의 얼룩 무늬를 닮았을 뿐 아니라 맹수와 같이 강한 턱을 지녔는데, 순간 시속 40㎞로 빠르게 헤엄치며 1인치가량 되는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로 펭귄을 덥석 물고는 수면에 내동댕이치며 뜯어 먹는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임완호 감독은 바다 얼음 위에서 물범의 펭귄 사냥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이 날은 특별한 장면이 포착됐다. 우리가 생각했던 표범물범이 아니라 웨델물범이 새끼 아델리펭귄을 잡아먹고 있었다. 모두 두 마리의 웨델물범이 관찰되었는데 각각 한 마리의 펭귄을 사냥했으며, 표범물범과 같이 펭귄을 입으로 물어서 수면에 강하게 내리쳤다.

아델리펭귄을 입에 물고 수면에 내리쳐서 먹는 웨델물범. 극지연구소 제공

필자는 촬영 비디오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웨델물범의 펭귄사냥은 매우 드문 일이며 이제껏 영상으로 기록된 적이 없었다. 웨델물범이 아델리펭귄을 잡아먹는다는 문헌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웨델물범의 주요 먹이는 물고기, 오징어와 갑각류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바다 얼음 밑을 돌아다니며 먹잇감을 찾아다닌다. 치아는 뭉툭하게 바깥으로 뛰어나와 있어서 얼음을 깨고 바깥으로 나오기에 용이하게 적응했다. 또한 웨델물범은 표범물범과는 달리 천천히 헤엄친다(평균 시속 8~12㎞). 느긋하게 얼음 밑에서 물고기나 오징어를 먹던 녀석들이 어떻게 펭귄을 사냥할 수 있었을까?

손쉽게 펭귄을 잡을 수 있는 특정 시기가 되면 웨델물범이 별식으로 먹는 것일 수 있다.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 처음 바다에서 헤엄을 시작할 때엔 느리고 치아가 무딘 웨델물범도 마치 자기가 표범물범이 된 것 마냥 펭귄 사냥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 다른 가설은 웨델물범의 먹이인 물고기가 부족해져서 그에 따른 대체 먹이로 펭귄을 사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웨델물범 한 마리가 하루에 0.8~1.3마리의 이빨고기를 섭취한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남극해에서 이빨고기와 같은 대형 어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먹이원을 구하기가 힘들 것으로 추측된다. 웨델물범이 배가 고파서 펭귄을 먹을 수도 있지 그게 뭐가 그리 특별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태학자 입장에서 봤을 때, 남극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의 특이적 행동을 그냥 보고 넘길 수가 없다. 이는 어쩌면 남극 웨델물범의 위기를 경고하는 위험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아델리펭귄을 입에 물고 수면에 내리쳐서 먹는 웨델물범. 극지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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