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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색채ㆍ구도 17세기 日 화풍이 만국박람회 전시 계기로 유행
19세기 후반 서양 예술계에 영향… 모네ㆍ마네도 ‘자포니즘’에 심취
<12> 우키요에와 인상파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우키요에 판화의 대가 안도 히로시게의 ‘오하시와 아타케의 천둥’(왼쪽 그림, 1857년, 34㎝×22.5㎝, 미국 브루클린 미술관 소장)을 모사한 빈센트 반 고흐의 ‘빗속의 다리’(오른쪽 그림, 1887년, 73㎝×54㎝,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우키요에 화풍에 깊은 인상을 받은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본 작가들은 마치 조끼 단추를 채우는 것만큼이나 수월하게, 잘 고른 몇 개의 선만으로 형태를 그려낸다”며 찬탄했다.

요즘 일본과의 갈등 관계가 심상치 않다. 적대적 관계가 심화될수록 냉정하게 상대방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본이 인접한 나라이다 보니 피상적으로는 잘 안다고 여기지만 경제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는 부족한 편이다. 미술 분야에서도 우키요에(浮世繪)와 같은 일본 전통 회화에 대해서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일본류의 원조, 우키요에

우키요에를 얘기하기 전에 인상파 그림을 먼저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미술사에서 인상파 혹은 인상주의라는 사조가 등장하게 된 것은 1874년 파리에서 열린 그룹전이 계기였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의 움직임, 질감의 변화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하는가에 중점을 두었다. 이전의 화가들은 주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인상파는 그림 도구를 들고 밖으로 나가 야외의 밝은 태양 아래에서 그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들을 외광파(外光派)라고도 부른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이 없는 실내 화실을 벗어나 자연의 빛과 색채를 캔버스에 담으려 하였기 때문에 주로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인상파 이전 회화는 주로 눈에 보이는 사실과 원근법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들인데 반해서 이들은 같은 장소, 같은 사물도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의 우연적인 장면을 화폭에 담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인상파 화가들에게 당시 유행처럼 번진 화풍은 바로 일본에서 건너온 풍속화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구도였다. 우키요에가 보여주는 축약적 구도와 상식을 뒤엎는 배치, 그리고 일본 특유의 화풍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일본 미술이 서양 사회와 예술계에 유행한 계기는 네덜란드와의 무역과 만국박람회 전시였다. 그 후 일본풍은 특히 인상파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 예술 전반에 나타났다. 이 같은 일본의 영향을 자포니즘(Japonisme)이라고 부른다. 요새 유행하는 용어로 말하자면, 서구에서의 소위 일본류(日本流) 열풍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상파 대가들을 사로잡다

당시 우키요에가 얼마나 인상파 화가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는 이들의 그림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우키요에의 흔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마네(Edouard Manet)의 그림 ‘에밀 졸라의 초상’에는 일본 무사도 그림들이 배경에 그려져 있다.

모네(Claude Monet) 역시 19세기 우키요에의 영향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아내인 까미유를 모델로 일본 여인을 그렸다. 이 작품이 ‘일본 여인(La Japonaise)’이라는 그림이다. 당시 파리에 있는 미술품 가게나 골동품 가게에서는 기모노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부채와 같은 소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그림에는 그런 일본풍 소품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파리에서 이처럼 일본 문화가 유행한 덕분에 이 그림은 인상파 전에 출품되어 좋은 평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높은 가격에 팔렸다. 그러나 정작 모네 자신은 자포니즘이 유행하던 당시 일본풍 그림을 하나의 습작 정도로 그렸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반면에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경우는 아주 특별하다. 그는 우키요에의 화풍과 강렬한 색채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건너온 고흐는 얼마 안돼서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Arles)로 옮겨 그곳에 정착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아를 지방의 풍광, 하늘과 자연의 빛깔이 우키요에 그림에서 보는 풍광의 색채와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고흐는 ‘탕기 영감의 초상’ 같은 그림의 배경에 후지산과 기녀 등 일본적인 풍물들로 채워 넣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을 일본 수도승으로 그린 자화상도 남겼다. 그는 우키요에 화법을 연구하기 위해 우키요에 화풍의 대표적인 작품인 안도 히로시게의 ‘오하시와 아타케의 천둥’을 그대로 모사하기도 하였다. 히로시게의 그림과 고흐의 모작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원작인지 모를 정도다.

◇일본 회화에 스민 서양화 기법

일본에서 서양화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된 것은 1720년 에도(江戶)시대 도쿠가와 막부의 요시무네(德川吉宗)가 기독교 이외의 양서(洋書)에 대해 내렸던 금지 조치를 완화하고 난 이후다. 그리고 1722년에는 일본의 유일한 개항이었던 나가사키를 통해서 당시 일본으로서는 유일한 서양이었던 네덜란드에 유화를 주문했으며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서양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었고 서양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 알려진 초기 서양화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의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려진 것들이다. 이러한 서양 사실주의 화풍에 접한 일본인은 서양화가들이 명암과 원근법을 비롯한 과학적인 방법을 구사하여 3차원 대상을 2차원 캔버스에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공간적 입체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같은 서양 양식이 일본 회화에 끼친 영향은 우키요에 판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키요에 풍속화에는 서양화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도 일본 회화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색채와 질감이 배어있다.

◇포장지 그림에 열광한 유럽

우키요에란 일본 에도시대에 서민생활을 기조로 하는 풍속화 양식이다. 그러나 우키요에라는 말은 일본의 역사적 고유명사로서 보통명사인 풍속화와는 구별된다. 우키요에의 어원은 우키요(憂世), 즉 ‘근심스러운 세상’이란 말이지만, 이후 ‘잠시 동안만 머물 현세라면 조금 들뜬 기분으로 마음 편히 살자’며 현재 세태와 풍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고방식이 퍼지면서 호색적인 당세풍(當世風)이란 의미를 내포하는 우키요(浮世)라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현존하는 우키요에 그림 대부분은 무명화가들이 그린 것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주로 사회풍속을 주제로 삼았으며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즐거움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양식이었다. 이들 그림에는 여러 유형의 여인들이 주요 모델이 되었다. 가령, 기녀, 무희, 유나(湯女)라고 불리는 목욕탕 종업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키요, 곧 세련된 욕망의 발산처는 유곽과 가부키(歌舞伎) 등을 공연하던 극장 거리가 있는 유흥가였다. 에도 시대에는 이런 여인들이 일하는 유흥가의 풍속을 담은 미술, 문학 등이 융성하게 되었는데 이 중에서 우키요에는 가장 큰 결실이다.

또한 에도 시대의 많은 그림책에 실린 삽화 중 상당수는 유흥가에서 일어난 남녀 관계를 묘사한 춘화(春畵)였다. 여기에 쓰인 삽화로는 주로 목판화가 이용되었다. 목판화 기법의 개량에 따라 다양한 풍속화의 기법과 표현방식이 더욱 발전하면서 18세기 중엽 내지 말기에 우키요에가 특히 성행하게 된 것이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이 서양과 무역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일본 상품들을 꾸린 포장지가 유럽 인상파 화가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이 바로 우키요에였다. 목판화로 찍어 그저 포장지로 사용되었던 일본의 풍속화가 유럽 사회에서 인기를 끌자 일본 상인들은 우키요에를 유럽 도시의 화랑에 재빠르게 공급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돌고돌아, 모네를 사모하는 일본

일본에서 우키요에 그림을 보고 싶다면 도쿄 중심부 하라주쿠에서 오모테산도 쪽으로 가다 보면 눈에 띄는 오타(太田) 우키요에 미술관에 가보면 좋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쓰시카 호쿠사이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그의 역동적인 파도 그림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드뷔시(Claude Debussy)가 교향시 ‘바다(La Mer)’를 작곡할 때 영감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미술관 안에는 작은 정원이 있어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니 도쿄를 방문하는 미술 애호가들은 꼭 둘러볼 만한 곳이다.

이처럼 일본 풍속화는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예술가들에게 한때의 이상적 모델이었다. 우키요에 신드롬은 그들에게 새로운 유행이었다. 아이러니컬한 현상은 지금의 일본인들은 인상파 그림들에 대해서 상당한 애착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모네의 ‘수련’ 연작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모네가 일본식 정원을 그리기도 했고, 그의 그림이 일본인들이 좋아할 만한 밝고 화사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 따라 세상의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인가….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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