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석학 칼럼] 지구 온난화와 건강보호

입력
2019.07.29 04:40
25면
2018년 9월, 지구 온난화로 녹아버리고 있는 스위스 론 빙하에서 과학자들이 미생물 샘플 등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포토아이
2018년 9월, 지구 온난화로 녹아버리고 있는 스위스 론 빙하에서 과학자들이 미생물 샘플 등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포토아이

극단적 기상이변에 따른 사회기반시설 훼손에서부터 가뭄으로 인한 식량공급 불안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시급히 대비해야 하는 수많은 기후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심각한 위험이 나타날 수 있음에도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인류건강이다.

자연재해 발생 시 홍수, 기근, 건축물 붕괴로 인한 직접 사망은 대개 피해의 시작에 불과하다. 뒤 이어 발생하는 질환과 질병은 훨씬 더 많은 피해를 낳기도 한다. 지구 온도와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도 증가하며, 동시에 치명적인 전염병과 풍토병 발생 위험을 수반한다.

지난 3월 모잠비크에서 발생한 사이클론 ‘아이다이’가 콜레라 전염병을 일으키고 6,700건 이상의 발병 의심 사례가 보고되면서 이러한 위험성이 부각됐다. 흔히 무시되는 풍토병 위험에 관한 예는 또 있다. 2010년 홍수가 파키스탄에 들이닥친 지 1년 후, 말라리아, 설사, 급성호흡기 피부감염 사례가 3,700만 건 보고됐다. 마찬가지로 2014년 솔로몬군도에서는 열대성 폭풍으로 인한 수도권 범람으로 설사병이 발생했고, 질병은 홍수의 영향을 받지 않은 5개 지역으로 퍼졌다.

탄력적인 1차 보건의료시스템은 그런 참상을 막는 최선의 예방책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이슈는 기후논의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는 보건시스템이, 기후와 관계가 있든 없든, 환경 충격과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특히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94개국 중 84%가 질병 발생을 감지하고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보건의료시스템이 신속대응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즉각적인 재난 대응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 별개로, 장기적으로 기본적인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게 되며, 보건의료시스템 자체는 물론 시스템이 보호하려는 사람들을 더 취약하게 한다. 대부분의 경우, 빈곤층 등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는 물론, 믿을 만하고 효과적인 1차 보건의료시스템을 이용하는데 있어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다.

기후변화가 계속됨에 따라 이 같은 취약점이 초래할 결과들은 점점 더 악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도시화를 비롯한 다른 글로벌 변화상에 따른 부작용과 융합해 더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2050년까지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도시 지역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수치는 현재보다 25억명이 많은 수치다. 빈곤, 갈등, 기후변화 등과 같은 요소에 의해 가속화하는 측면이 있는 급속한 도시화는 전염병과 풍토병의 위험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전염성 질환이 촉진되는데, 점점 악화하는 오염과 공중위생 부족은 폐렴 등 호흡기질환 및 로타 바이러스나 콜레라, 설사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비단 가난한 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온 상승은 유럽과 북미 일부 지역에서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이집트 숲모기와 같은 질병매개체의 재출현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며, 캐나다와 같이 고위도 국가의 새로운 지역으로도 전파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과거 미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던 황열병과 뎅기열, 지카바이러스의 재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자료를 토대로 기후변화와 인구증가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볼 때 2080년까지 추가로 60억명의 인구가 뎅기열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효과적인 1차 보건의료시스템이 없다면, 충격이 발생한 후 항상 뒤늦게 대응할 수 밖에 없고, 그 경우 비용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효율도 떨어진다. 그런데 다행히 필요한 수준의 의료를 쉽게 제공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구축돼 있다.

그 시스템은 바로 가장 광범위한 대상자들에게 도달하는 예방접종 시스템이다. 정기 예방접종은 가장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어린이들과 가장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전 세계 어린이의 80% 이상을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같은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확실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확대돼야 하는 예방접종이야말로 1차 보건의료시스템이 가장 쉽게 구축될 수 있는 기반이다. 지역 사회관계, 공급 망, 숙련된 직원, 데이터 모니터링, 질병 감독, 그리고 건강기록 등이 이미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영양보충 및 말라리아 예방 프로그램과 같이 개인에게나 더 많은 공동체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다른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세계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해 2℃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관리한다 해도, 세계는 이상기후로 인하여 발생하는 건강 비상사태가 급격히 늘어날 때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1차 보건의료시스템을 확장시키고 강화하는 일은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에 대응하는 데 있어 순발력을 높여줄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세스 버클리 세계백신면역연합 최고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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