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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업적과 한계, 총체적 평가 필요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 고독 살펴야
세월이 하수상하니 노의원이 더욱 그립다
지난해 7월26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추모문화제에 입장하지 못한 추모객이 ‘당신의 꿈, 당신의 뜻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에 얼굴을 파묻은 채 노 의원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이 떠난 뒤 벌써 일년이 지났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지요? 당신을 생각하면 15년 전인 2004년 4월 15일이 생각납니다. 그 날은 5ᆞ16 쿠데타에 의해 짓밟혔던 우리의 원내 진보정당이 43년 만에 부활한 날입니다. 당신은 비례대표 마지막 한 석을 놓고 벌어진 혈투에서 김종필을 꺾음으로써 군사독재세력에게 복수를 했습니다. 이 승리 덕분에 우리는 노회찬이라는, 조봉암 이후 가장 ‘대중적인 진보정치인’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날 이후 당신이 진보정치인으로 약자들에게 보여준 애정과 기여, 탁월한 정치평론가로서 진보정치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헌 등은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썩은 정치인들을 깨끗한 인물로 바꿔야 한다는 낙선운동에 대해 “인물교체를 넘어서 50년 동안 삼겹살 구워 먹은 낡은 불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일갈했던 당신의 ‘불판 교체론’은 TV토론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지금도 삼겹살을 먹을 때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잘 알려져 있는 2004년 이후의 행적만이 아니라 현장 노동운동, 투옥, 진보정치연합, 민주노동당 창당 등 진보정치를 위해 음지에서 고군분투했던 원내 진출 이전의 행적들을 포함해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진보정당의 불모지에서 이만큼이라도 진보정당이 자리잡게 된 데에 가장 기여한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하지만 한 정치인에 대한 진정한 추모는 ‘우상화’가 아니라 한계까지도 드러냄으로써 계승해야 하는 그의 정신을 실현하고 그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알리고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민주노동당 탈당과 진보신당 창당, 재탈당과 통합진보당 창당, 재분열과 정의당 창당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 당신이 택했던 다양한 고뇌어린 정치적 선택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이는 진보정치에 있어서 ‘이상’과 ‘현실’을 어떻게 절충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지만, 사실은 외롭게 싸워왔고, 세속적인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고독하게 살다가 간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였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주류는 반공세력이었고 민주화운동세력이 비주류라면, 이 비주류의 주류는 ‘자유주의’(리버럴) 세력으로 민주화의 과실을 거의 독점해 왔습니다. 진보세력은 비주류의 비주류로 소외되어 왔는데 이중 다시 주류는 민족주의세력이라 당신은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였습니다. 당신과 저는 이 같은 동병상련 때문에 아주 가까웠지만 ‘애정’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상’을 중시하는 학자였고 당신은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당신에게 가차 없는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떠난 지 일 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당신이 꿈꾸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타협적이고 만족스럽지 않지만 패스트트랙으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국회 정상화라는 이름아래 이루어진 거대 양당의 야합으로 그 미래가 불분명합니다. 그 결과, 당신의 1주기 날에 심상정 의원이 당신이 만들어줬던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직을 내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촛불이 정말 있었던 것인가 싶을 정도로 개혁의 분위기는 사라졌고 한국판 유사 극우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자유한국당이 막말 등 자해를 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상대방의 자해에 의한 지지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총선이 다가오고 있지만, 신바람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

노 의원님, 하늘나라에서도 소수파들의 권익을 위해 또 마이크를 잡고 싸우고 있지는 않는지요? 머지않아 나도 올라갈터이니, 함께 마시던 폭탄주 실컷 마셔봅시다. 그 때까지 잘 지내십시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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