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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생물자원관 전문가들이 동ㆍ식물, 생물 자원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주에 한 번씩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단독사냥을 하는 말벌인 금테줄배벌. 사회성 말벌의 독에는 천적인 동물에게 고통을 유발하거나 면역ㆍ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성분들이 발견되는 반면, 단독사냥말벌의 독에선 신경독과 같이 먹이를 마비시키기 위한 물질들이 나온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소방청에 따르면 2018년 한해 119구조대의 출동 건수는 83만여건이며, 그 중 가장 높은 신고 횟수를 보인 것은 ‘벌집 제거’로 지난해만 14만4,000여건(21.7%)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애를 먹이는 벌, 특히 말벌은 8~9월이 번식기로 활동이 가장 왕성합니다. 이때는 사람들의 야외활동이 많은 시기이기도 해서 사회성말벌인 좀말벌, 땅벌 등이 침입자에 대한 방어작용으로 사람을 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곤 합니다.

독성학, 동물학, 의학 등에서 ‘독(毒)’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 일정한 양이 흡수되었을 때 다양한 피해를 주는 물질로 정의됩니다. 독성 작용을 유발하는 물질에는 베놈(venom), 포이즌(poison), 톡신(toxin)이 있습니다.

말벌, 전갈, 거미, 물장군 등의 생물에는 독샘이 있으며, 여기서 독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베놈이라고 합니다. 포이즌은 학문에 따라 정의가 조금 다른데, 독성학에서는 아주 적은 양으로 노출되더라도 즉사하거나 병을 유발하는 독물을 말합니다. 약학이나 동물학에서는 천연 독과 화학적으로 합성한 독을 모두 의미하며, 중독성이 있거나 축적되는 독을 포함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널리 알려진 독이 있는데요. 바로 임금이 왕족 또는 신하가 죄를 범했을 때 내렸던 사약입니다. 사약은 중금속인 비소를 가공한 ‘비상’을 사용하거나 ‘부자’ 등 독이 있는 식물을 이용해서 만든 포이즌입니다.

반면 톡신은 독성학에서 생물체가 생산한 특정 단백질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식중독을 유발하는 박테리아인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움이 만든 보툴리눔 톡신, 그리고 파상풍균에 의해 만들어지는 파상풍 톡신 등이 있습니다. 약학이나 동물학에서 톡신은 병원균에서 유래된 독소를 뜻하기도 합니다. 한편 한의학에서는 ‘먹는 음식이 약만큼 중요하다’라는 의미의 식약동원(食藥同源) 철학에 따라 독도 적절히 사용하면 약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옻나무, 뱀, 양귀비, 복어 등의 독을 약으로 이용하기도 했죠.

사회성 말벌인 별쌍살벌.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사회성말벌과 단독사량말벌, 독의 종류가 달라 

우리 생활 주변에서 말벌, 거미, 노린재 등 독을 가진 다양한 생물을 쉽게 접할 수가 있습니다. 이 생물종의 독 성분이나 기능은 같을까요.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요. 전문가들은 종에 따라 사냥방법, 선호하는 먹이 등이 다르며, 이러한 종의 생태적 특성에 따라 분비되는 독이 다르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곤충을 포함한 무척추동물들의 생태적 습성을 기준으로, 독의 성분이나 특이한 기능 및 활용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말벌은 곤충강 벌목 말벌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국가생물종목록(국립생물자원관, 2018)에 따르면 장수말벌을 포함하여 국내에 96종이 알려져 있습니다. 집단을 형성하며 집을 짓고 사는 사회성말벌에는 말벌속(장수말벌, 꼬마장수말벌, 말벌, 좀말벌 등), 쌍살벌속(등검정쌍살벌, 뱀허물쌍살벌 등), 땅벌속(땅벌, 참땅벌 등)에 속하는 벌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단독사냥말벌에는 호리병벌속의 민호리병벌, 작은민호리병벌 등이 있는데, 말벌의 독은 독샘에서 생성되고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말벌의 독액 성분은 70% 이상이 활성 펩타이드나 효소 같은 펩타이드성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히스타민, 세로토닌, 도파민과 같은 아민류 등의 대사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펩타이드는 두 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펩타이드 결합으로 생성된 화합물을 총칭하는 것으로, 항균, 항바이러스, 항암, 신경조절, 살충 효과 등의 활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말벌은 생태적 특성에 따라 독액의 기능과 성분이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2016년 나왔습니다. 한 예로, 사회성말벌의 독에는 마스토파란, 베놈 알레르겐, VCP(Vespid Chemotactic Peptide)와 같이 천적인 동물 등에 고통을 유발하거나 면역ㆍ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성분들이 발견되는 반면, 단독사냥말벌의 독에는 신경독과 같이 먹이를 마비시키기 위한 물질들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단독사냥말벌과 사회성말벌의 독액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성분도 있습니다. 세포외기질 구성에 중요한 히알루론산을 가수분해하는 히알루론산 분해효소와 같은 물질입니다. 히알루론산 분해효소는 다른 독을 가진 동물에서도 발견되는 성분으로, 독의 확산을 촉진합니다. 가수분해된 히알루론산은 염증반응, 면역반응을 일으켜 독의 주입을 가속화하기도 합니다.

사회성말벌의 독은 항균, 항암 등의 효능을 보유한 의약품 등의 개발을 위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성말벌의 독액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펩타이드인 마스토파란은 말벌상과에서만 발견되며, 최근 국립생물자원관은 땅벌 독액으로부터 얻은 ‘마스토파란V1’이란 물질이 가지고 있는 항균 특성을 이용, 화학약품(포르말린, 페놀류 등)을 이용한 기존의 사균백신 제조방법을 친환경적으로 개선하고 면역증강 효과가 크게 향상된 새로운 백신 제조방법을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해외에서도 벌의 독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브라질 과학자들은 남미에 서식하고 있는 사회성말벌인 폴리비아 파울리스타(Polybia paulista)의 독액으로부터 분리한 독성물질(MP1)이 일반 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만을 선택해서 죽이는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노린재는 먹이 식성에 따라 침샘에서 분비되는 독 성분이 다르다. 식식성 노린재는 식물의 세포벽을 분해하는 효소를 지니고 있고, 포식성 노린재의 경우 먹이인 무척추동물을 마비시키기 위해 신경조절 펩타이드와 먹이를 액화시키기 위한 단백질분해 효소, 지방분해 효소 등을 지니고 있다. 흡혈성 노린재는 척추동물의 피를 원활하게 빨아먹기 위해 혈액응고를 막아 주는 성분을 갖고 있다. 사진은 식식성 노린재인 긴가위뿔노린재.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노린재의 독에는 먹이에 따라 다른 효소성분이 들어 있어 

노린재는 곤충강 노린재목에 속하는 곤충입니다. 이름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몸에서 누린내를 풍기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노린재는 먹이 습성에 따라 △식물의 즙액을 먹는 종류(식식성ㆍ食植性)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종류(포식성) △척추동물에게 기생하여 흡혈하는 종류(흡혈성) 등으로 구분됩니다. 노린재는 식물, 곤충, 척추동물로부터 영양분을 빨아먹기 때문에 입이 빨대 모양이며, 침샘에서 분비되는 독 성분을 통해 흡즙을 용이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린재의 입 모양은 공통적이지만 먹이 습성에 따라 침샘에서 분비되는 독 성분은 서로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예로 식식성 노린재의 경우 식물의 세포벽을 분해하는 효소인 아밀라제와 펙티나제를 지니고 있고, 포식성 노린재는 먹이인 무척추동물을 마비시키기 위해 신경조절 펩타이드와 먹이를 액화시키기 위한 단백질 분해효소 프로테아제, 지방 분해효소 리파아제 등을 지니고 있습니다. 흡혈성 노린재는 척추동물의 피를 원활하게 빨아먹기 위해 혈액 응고를 막아 주는 아피라제, 리포칼린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긴가위뿔노린재, 애허리노린재, 장수허리노린재,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등의 식식성 노린재, 주둥이노린재, 극동왕침노린재, 미니날개큰쐐기노린재, 장구애비, 물자라 등 포식성 노린재 그리고 빈대와 같은 흡혈성 노린재 등 89과 2,162종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조망성 거미인 산왕거미. 그물을 치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는 배회성 거미와 달리 한 곳에 정착해 그물을 치는 조망성 거미의 독액은 먹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신경억제활성과 식중독균 및 대장균에 대한 세포막 파괴 활성이 매우 높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일부 거미의 독은 피부암 억제해 

거미는 거미강에 속하는 절지동물로 우리나라에는 물거미 등 약 915종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거미는 아파트, 주택, 논, 산 등 우리 생활환경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데 혐오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파리, 모기, 바퀴 등의 위생곤충과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을 잡아먹는 천적으로 인간에게는 익충입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거미가 가지고 있는 독을 이용하여 고혈압, 당뇨 등 다양한 의약품 분야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거미독은 다양한 화학물질의 혼합체인데요, 어떤 성분은 신경독으로서 곤충의 몸속에 주입되는 순간 신경계를 공격하여 곤충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죽이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또 다른 성분은 세포독으로 곤충 등 먹이의 조직을 붕괴시켜 액화된 상태로 만들어 거미가 먹이를 쉽게 소화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국립생물자원관과 동국대 연구진은 2018년에 이러한 거미의 사냥방식에 따라 독의 기능적 특성과 그 쓰임새가 다르다는 사실을 국내 최초로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거미가 사냥하는 방식에 따라 다리의 길이, 발톱 수, 눈의 발달 정도 등이 다르게 진화한 사실에 주목하고, 사냥방식이 다른 거미의 독 또한 기능이 다를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물을 치지 않고 땅, 숲, 계곡 등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사냥하는 배회성거미의 일종인 별늑대거미, 황닷거미는 한곳에 정착해 그물을 치는 조망성거미인 긴호랑거미, 무당거미 등의 독액보다 식중독균 및 대장균에 대한 ‘세포막 파괴(세포용해)’ 활성이 각각 5배에서 1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배회성 거미류가 먹이를 사냥하고 곧바로 먹는 습성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조망성거미류의 독액은 배회성 거미류보다 먹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신경억제활성이 3배에서 10배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그물에 걸린 먹이를 살아있는 상태로 일정 기간 저장했다가 먹이를 섭취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조망성 거미인 긴호랑거미.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또한 해외연구사례를 살펴보면 호주 퀸즐랜드대학과 플로레이신경과학연구소 공동연구진은 이러한 독특한 거미독의 특성을 바탕으로 사람이 물리면 15분 이내에 즉사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을 지닌 호주산 깔때기그물거미 중 한 종(Hadronyche infensa)의 독을 연구했습니다. 이 독에서 힐라(Hilla)라는 물질을 분리하여 뇌졸중 환자의 뇌에 투입한 결과,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고메신이라는 물질은 피부에 생기는 암의 일종인 흑색종을 억제하는데 효과적인 펩타이드로 밝혀졌습니다. 이 결과들은 생명을 죽이는 독이 때때로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연구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국토의 70%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생물의 다양성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독의 다양성도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에 서식하는 거미는 848종에 이르고, 그중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희귀한 야생 거미는 다른 나라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독 성분(펩타이드)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유전체서열 분석기술과 인공지능(AI) 기술은 이러한 독 펩타이드 정보를 단기간에 대량으로 확보하는데 이용될 수 있으며, 이러한 환경은 의약ㆍ미용 등의 바이오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을 선도할 좋은 기회로 볼 수 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 유용자원분석과 환경연구관 배창환, 환경연구사 안능호ㆍ방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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