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벨트를 가다] 커피와 인간, 그 불가분의 관계

입력
2019.07.24 09:00

<8회> 인간과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숲 속에서 만난 아이들. 지금처럼 먼 훗날에도 커피와 불가분의 관계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커피는 단순히 작물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런 삶을 수천, 수만년동안 이르가체페 고원에서 이어왔을 것이다. 최상기씨 제공
이르가체페 숲 속에서 만난 아이들. 지금처럼 먼 훗날에도 커피와 불가분의 관계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커피는 단순히 작물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런 삶을 수천, 수만년동안 이르가체페 고원에서 이어왔을 것이다. 최상기씨 제공

커피와 사람은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 우연의 가설일 수도 있고, 답을 두고 꿰 맞춘 억지소리일 수도 있지만(그래서 과학적 인과성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또는 인문학적으로 그럴싸하게 우겨볼 소지는 다분하다.

우선 인류와 커피의 고향이 같다. 커피의 기원은 잘 알려진 대로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Abyssinia) 고원이다. 이 곳의 칼디(Kaldi)라는 이름의 염소 목동이 야생 커피를 발견하고, 이 열매가 수도승들에게 전달돼 최초의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칼디의 전설. 물론 희랍의 수사(修辭)나, 누군가 지어낸 얘깃거리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유전자 구조를 추적하는 등 일련의 탐구로 에티오피아 고원지역이 야생 커피의 기원지로 밝혀진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인류의 기원도 여러 주장이 분분하지만, 에티오피아 하다르(Hadar) 고원 지역에서 발견된 320만 년 전 인류 최초의 어머니 루시(Lucy)를 가장 의미 있는 증거로 여긴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침팬지와 뚜렷이 차이를 구분 지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인류의 기원이라는 것. 물론 커피와 인간, 두 가지 기원의 인과성은 없다. 하지만 왜 하필 에티오피아의 고원 지대인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뿐 아니라, 호모하빌리스, 호모에렉투스, 호모사피엔스 등의 인골 화석이 발견된 곳은 바로 동아프리카의 리프트 밸리다. 커피 또한 이 지구대를 따라 하라르(Harar) 등 에티오피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것을 보면 수십만 년 동안 커피와 인류는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함께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커피는 물 이외에 인류가 최초로 즐긴 음료다. 차의 역사가 5,000년, 카카오는 4,000년 가량 된 반면 커피의 역사는 적게는 수만년에서 수십만년 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커피가 처음 인류와 만난 곳에 기록 문화를 가진 고대 문명이 발달하지 못해 정확히 언제부터 인간이 커피를 마셨는지는 알기 어렵다.

160만년 전 처음으로 호모에렉투스가 동아프리카를 벗어나 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주했지만, 커피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리프트 밸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커피는 열대의 고원지역이라는 제한된 서식 환경으로 인해 뜨거운 사막과 메마른 초원을 건너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재배식물인 수수나 조 등이 인간의 이동 경로를 따라 쉽게 옮겨간 것과 구별된다. 또한 테프(teff,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주식인 ‘인제라’의 원료)와 엔세테(ensete, 가짜 바나나 나무)가 에티오피아 현지에서는 주식으로 쓰이는 중요 작물이지만, 2,000m 내외의 열대 고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경우와 비슷하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난 후에도 커피는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현지 사람들만 아는 존재가 되었고, 꽤 오랜 기간 이 지역 인간들만이 향유하는 식품이었다.

물론 공존의 이유만으로 인간이 커피를 마셨다는 데는 과학적 근거의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오랜 조상들, 적어도 20만년 전에 나타난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빨간 열매 상태로라도 커피를 먹지 않았을까. 실제로 지금까지 에티오피아 서남부 지역 마을에는 커피 열매를 원기를 북돋는 음식으로 다양하게 먹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에티오피아 남부 구지(Guji) 지역의 부녀자와 아이들이 빨갛게 익은 체리를 말리고 있다. 이들 오로모인들은 수백만년 전 인류와 커피의 탄생지인 바로 그 곳에서 오늘도 온종일 커피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최상기씨 제공
에티오피아 남부 구지(Guji) 지역의 부녀자와 아이들이 빨갛게 익은 체리를 말리고 있다. 이들 오로모인들은 수백만년 전 인류와 커피의 탄생지인 바로 그 곳에서 오늘도 온종일 커피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최상기씨 제공

인문학적으로 우겨볼 또 하나의 공통점은 수명이다.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커피나무가 사람만큼 산다고 말한다. 커피나무의 수명은 50년 정도다. 커피나무가 실제 열매를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은 20~30년이고,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는 노목은 잘라버리기 때문에 정확한 기대수령을 알기 어렵다. 물론 100년이 넘는 수령을 가진 커피나무들도 있어 보호되기도 하지만, 자연 상태의 커피나무(forest coffee)는 50년가량 살면 고사한다. 인간의 수명은? 지금은 보건 의료환경이 개선돼 좀 더 늘어났지만, 2010년 내외로 에티오피아 국민들의 기대수명은 53세 정도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커피나무만큼 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서식 환경은 어떨까. 아라비카 커피는 인간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기후환경에서 자란다. 열대지방의 고산지대. 사시사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비가 자주 내리지만 습하지 않고, 눈부신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지상낙원의 기후. 그 곳에서 커피가 자란다.

아라비카 중에서도 산미가 곱고 향이 뛰어난 스페셜티 커피가 재배되는 고산지대의 기후조건은 더욱 까다롭다. 가장 따뜻한 달의 기온이 25℃ 수준이고, 가장 추운 달의 온도가 13℃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계절별 온도 변화가 적고, 우기, 건기 등 날씨 환경이 규칙적이어야 한다. 이런 기후는 인간에게도 가장 쾌적한 환경이다. 커피의 중독성은 이런 최적의 자연이 만들어낸 부산물이 아닐까?

무엇보다 커피는 인류가 가장 사랑하는 음료다. 마시는 잔 수로는 차보다 적지만, 한 잔당 사용하는 분량이 5배 이상 많기 때문에 총 소비량으로는 단연 차에 앞선다. 생산량이나 국가간 물동량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커피가 사랑을 받는 까닭은 사람의 복잡한 미각에 가장 충실한 음료이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라비카 커피는 단맛, 신맛, 쓴맛, 그리고 제5의 미각이라 불리는 감칠맛(우마미)까지 갖고 있다. 그런 복합적인 향미로 인해 차(茶)와 더불어 온 지구적 사랑을 받는다. 아울러 산업적 이해에 따라 나뉘기도 하지만, 대체로 커피 그 자체로는 사람의 몸에 이로운 음료라는 주장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커피는 사람과 유사한 속성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작물이자 기호식품이다. 비록 생산과 소비지역이 나뉘고, 매우 불공정한 거래 품목이면서 농업에서 제조업, 서비스에 이르는 복합적인 산업적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커피를 찬미했듯 사람에게 커피는 가장 가까이 사랑을 받는 신과 자연이 내려준 선물이다.

“Bunnaafi Nagaa hindhabinaa” (분나아피 나가아 힌드하비나아, May Coffee and Peace be with you. 에티오피아 암허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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