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이 들어요. 일러스트=김경진기자

저는 1년 전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평소처럼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모가 “아빠가 돌아가셨으니 얼른 집으로 오라”고 전화했어요. 택시 타고 가는 중에도 꿈 같았어요. 집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텅 빈 집에 벌벌 떨면서 앉아 있었어요.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어요. 아빠가 제 이름을 부르며 들어올 것 같았어요. 장례식 내내 사람들은 ‘이제 이 집안에 너밖에 없다’, ‘오빠는 고졸에다 엄마는 능력도 없는데,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 ‘네가 가족들 먹여 살릴 유일한 희망이다’ 등의 말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힘들지 않은 척 했어요. 밥 먹고 잠도 자는 제가 역겨웠지만 괜찮은 척 했어요.

아빠가 그런 시도를 한 게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어요. 저는 몰랐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빠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계셨다는 사실을요. 그런 사실을 저는 아빠가 떠나고 나서야 엄마가 말해줘서 알게 됐어요. 저희 집은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쯤 아빠 사업이 실패하면서 사정이 안 좋아졌어요. 항상 집에는 오빠와 저밖에 없었고, 엄마는 매일 식당엘 나가셨어요. 아빠는 사업에 실패해서인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땐 1년에 한두 번 아빠를 봤던 것 같아요. 저는 중학생 때부터 어른이 되면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집안 사정이 다시 좋아졌어요. 아빠 사업이 잘됐었거든요. 저는 서울로 대학을 왔고요. 대학 시절 내내 집에서 학비와 용돈을 주셨고, 6개월간 해외 연수도 다녀왔어요. 그러다 집안 사정이 다시 안 좋아졌어요. 저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로 제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벌었어요. 그러면서도 집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건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가스 사용료나 전기세, 관리비 등이 수개월 연체됐던 것도 최근에야 알았어요. 부모님이 아무도 제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 가족은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아요. 게티이미지뱅크.

아빠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저에게 급하게 24만원만 보내라고 하셨어요. 대출금을 급하게 갚아야 했는데 그런 사정도 모르고 저는 아빠에게 화만 내고 짜증만 냈어요. 당시에 매일 술 마시고 잠만 자는 아빠가 너무 보기 싫고, 미웠었거든요. 그러고 며칠 뒤 엄마 생일이었어요. 집에 케이크를 사 가서 우울해하는 아빠는 남겨두고 엄마랑 둘이 나갔어요.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밥도 먹고, 벚꽃 앞에서 사진도 찍었어요. 아빠만 쏙 빼놓고요.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마카롱을 사서 아빠에게 ‘그만 우울해하고 이거 맛있으니 드셔보라’고 한 게 마지막이었어요.

아빠를 보내고 나서야 저는 아빠의 존재를 너무나 크게 느껴요. 자주 표현하지 못했지만 아빠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했어요. 무뚝뚝했지만 저한테는 사랑한다는 얘기도 자주했어요. 아빠가 돈이 없으면서도 1,000원이라도 기부를 하길래, 제가 돈도 없으면서 기부를 하느냐고 하니 “없을 때 도와주지 못하면 있을 때도 도와주지 못한다”는 말을 멋쩍게 건네는 아빠의 모습도 선명해요.

아빠는 제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법조인이 됐으면 한다고 했어요. 지금은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제가 로스쿨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빨리 취업해서 집에 도움을 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빠를 좀 더 챙겼더라면 아빠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때 제 행동 하나하나가 후회가 됩니다. 저와 제 가족은 아무도 아빠 얘기를 꺼내지 않아요. 하지만 늘 그 생각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어요. 저와 제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박민지(가명ㆍ28ㆍ직장인)

민지씨, 저는 의사로서 민지씨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많은 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저 역시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나눈 환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그들을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정말 예상치 못하게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는 상실과 슬픔을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낼 때 대부분이 그렇지만, 민지씨처럼 갑작스레 이별하는 경우에는 고통과 슬픔이 더 심합니다. 준비된 죽음은 없지만 사랑하는 가족과의 갑작스런 이별은 남은 가족에게 굉장히 큰 고통을 주지요. 엄청난 비극과 상실과 고통, 슬픔을 맞닥뜨릴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감정들을 추스르기가 어려워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남은 가족에게는 그를 보고 싶은 그리움이 남고, 다시 보지 못하는 애통함이 남고, 떠나 보낸 비통함과 슬픔이 듭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후회와 죄책감이 마음 깊이 남습니다. 떠난 사람이 아닌 남은 가족들에 남는 감정들이지요.

스스로 생을 끊지 않았더라도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갑작스레 잃을 때도 엄청난 상실과 슬픔을 경험합니다. 남은 가족들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때로는 적절하지 않은 방법일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슬픔을 표현하고, 상실과 고통, 비극을 드러냅니다. 비교할 순 없지만 가족의 극단적 선택은 남은 가족에게 이렇게 슬픔을 표출할 기회마저 없앱니다.

민지씨, 허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떠난 사람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무(無)의 상태에요. 떠난 이를 애도하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라, 떠난 사람은 세상과 더 이상 인연이 없습니다. 떠난 이에게는 이승의 삶이 아무것도 없는 무이지만, 남은 가족들은 그렇지 않지요. 남는 게 너무 많아요. 앞서 말한 슬픔과 상실, 후회와 죄책감이지요. 이런 감정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건드려질 때보다 민지씨처럼 후회와 죄책감이 건드려질 때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남은 가족들은 자기 자신을 자책하면서 끝이 없는 절망에 빠져요. 가족을 잃어서 느끼는 후회와 죄책감은 어떤 고통보다 크기 때문에 끝을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마음은 낡은 천처럼 부서질 겁니다.

민지씨에게 제가 가장 해드리고 싶은 얘기는 그 헤진 마음을 우리는 꿰매고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서 마음의 상처가 저절로 아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상처를 꿰매고 남은 삶을 이어가야 해요. 상처를 내버려두어도 살아가지겠지요. 하지만 상처를 꿰매지 않으면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행복한 일이 생겨도 그걸 누리는 스스로가 나쁜 사람 같아서 괴로울 거예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어지지 않아요.

가족과 함께 충분히 애도하고 슬픔을 나누세요. 게티이미지뱅크

민지씨,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이 다 다르고, 저마다의 이유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의학적으로 봤을 때 우울증의 한 증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합니다. 본인도 어쩌지 못했을 거고, 가족들이 막을 수도 없는 일이에요. 당신이 느끼는 후회와 죄책감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의 가족들 모두가 느낍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을 저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신뿐 아니라 가족들이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당신의 아버지는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었을 거예요. 가족을 사랑하지 않아서, 마음이 약해져서 떠난 게 아니라 증상이 심해졌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신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라는 무력감을 들게 하려는 얘기는 결코 아니에요. 다만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인한 심한 괴로움과 아픔을 조금 내려놨으면 해요.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고, 가족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삶의 흐름들이 있어요. 비극이기도 하고, 상실이기도 하고, 막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일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어요.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안 좋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해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에서 최선을 다해서 진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내려놓으라고 해도 큰 위로가 되지 않겠지요. 하지만 당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상처를 반드시 꿰매야 한다는 얘기에요.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남은 가족들은 그 아픈 상처를 서로 손잡고, 어깨를 내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면서 꿰매야 해요. 민지씨의 가족은 아버지가 떠났을 때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것 같아요. 남은 가족에게는 애도의 과정이 필요해요. 많이 울고, 그리워하고, 목놓아 통곡해도 괜찮아요. 아버지를 떠나 보낸 그 때에는 너무나 당황하고, 밀려드는 후회와 죄책감에 내색조차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주변에서 민지씨에게 힘내라고 하는 얘기들에 힘들다고 말조차 못했던 당신이 너무나 가엾습니다.

이제라도 당신의 가족들이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고, 나누어야 해요. 아버지 얘기를 가족끼리 꺼낼 수조차 없다면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와 상담을 받는 것도 방법이에요. 아버지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은 회복이 아니에요. 상처가 깨끗하고 반듯하게 꿰매지지 않더라도 얼기설기 꿰매지더라도 용기를 내야 해요. 그리고 상처를 꿰매고 남아 있는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냐고 제게 묻는다면 저는 단호하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할 거예요. 상처를 꿰매고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야 해요. 당신의 삶은 즐거운 일도 있고, 행복한 순간들도 많을 거예요. 그런 순간마다 당신이 아버지에게 대해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상처를 꿰매야 해요. 상처를 참고, 묻는 것은 도움이 안됩니다. 당신이 느끼는 후회와 죄책감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반응이에요. 그것을 아무에게나 드러내서 말하라는 게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마음을 이야기하고 충분히 슬퍼하라는 얘기예요. 가끔은 서로 탓도 해가면서요.

가족들이 서로를 위하면서도 저지르는 흔한 실수가 있지요.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다른 가족들이 걱정하니깐 그런 말 하지마’라고 덮어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지 말고 ‘네 마음이 무척 힘들구나’라고 공감하고, ‘어떨 때 마음이 힘드니,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라고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해요. 아버지의 일을 까맣게 잊고 살 순 없어요. 조금씩 상처를 꿰매는 과정에서 순간순간 잊을 순 있어요. 당신의 남은 인생 또한 너무나 가치 있고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를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상담신청서 내려받기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