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여성 캐릭터면 ‘꾸안꾸’? 디즈니코리아의 시대착오

입력
2019.07.18 09:21
수정
2019.07.18 09:23

17일 개봉한 디즈니 영화 ‘라이온 킹’ 마케팅을 두고 디즈니코리아가 입길에 올랐다. 디즈니코리아는 유독 여성 캐릭터를 두고 구시대적인 마케팅 방식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논란이 된 디즈니코리아 공식 SNS의 이벤트 화면. 월트디즈니코리아 SNS 캡쳐
논란이 된 디즈니코리아 공식 SNS의 이벤트 화면. 월트디즈니코리아 SNS 캡쳐

디즈니코리아는 지난 1일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나와 가장 닮은 라이온 킹 캐릭터는?’이라는 제목의 영화 예매권 증정 이벤트를 진행했다. 사달은 여주인공 ‘날라’를 소개하는 문구에서 시작됐다. 디즈니코리아는 암사자 날라를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사바나의 예비 영부인’ 등의 수식어로 표현했다.

그러자 누리꾼들은 영화와는 상관없는 부적절한 홍보 문구라며 비판했다. 특히 “암컷이면 동물이라도 꾸안꾸 해야 하냐(wjdd*******)”, “사자가 메이크업이라도 해요?(song***)”, “같은 주인공 캐릭터인 날라마저 예비 영부인이라는 설명으로 함축 시켜버리다니, 사자의 꾸안꾸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하네요(b2tt******)” 등의 반응이 있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 때문에 극 중 혁명을 이끄는 등 용감하고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 날라의 모습이 퇴색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포털 사이트에 ‘꾸안꾸’를 검색하면 ‘라이온킹 꾸안꾸’가 연관 검색어로 나올 정도였다.

또 디즈니코리아가 라이온 킹의 다른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성별과 무관한 홍보 문구를 사용한 것과도 비교됐다. 심바는 ‘용감하고 용맹한 미래의 왕’, 무파사는 ‘진정한 리더’, 스카는 ‘야심가’ 등 남성 캐릭터들은 각각의 특성이 강조되는 문구로 표현됐다. 반면 여성 캐릭터의 경우 외모가 강조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이 정도면 아무 광고도 안 하는 편이 더 긍정적이겠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디즈니코리아는 문제가 된 이벤트 게시물을 곧바로 삭제했다.

 ◇ 여성 캐릭터 무시 논란 처음은 아니었다 

영화 ‘토이스토리4’ 보핍 캐릭터 관련 홍보 이미지 전 후. 월트디즈니코리아 SNS 캡쳐
영화 ‘토이스토리4’ 보핍 캐릭터 관련 홍보 이미지 전 후. 월트디즈니코리아 SNS 캡쳐

디즈니코리아의 마케팅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디즈니코리아는 앞서 개봉한 영화 ‘토이스토리 4’에서도 여성 캐릭터 ‘보핍’을 그저 ‘우디 여친’으로 소개해 뭇매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예쁘게 변신’이라는 문구로 또 한 번 여성 캐릭터 외모를 부각시키는 광고에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보핍은 영화에서 주인의 소유물이 아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최초의 장난감으로 등장한 캐릭터다. 디즈니코리아는 문제가 되자 보핍 관련 문구를 ‘자유로운 탐험가’, ‘다시 돌아온 보핍으로 변신’ 등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수정 조치했다.

영화 ‘알라딘’의 자스민, 영화 ‘캡틴마블’의 캡틴마블 캐릭터 홍보 이미지. 월트디즈니코리아 SNS 캡쳐
영화 ‘알라딘’의 자스민, 영화 ‘캡틴마블’의 캡틴마블 캐릭터 홍보 이미지. 월트디즈니코리아 SNS 캡쳐

또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 인기몰이를 한 영화 ‘알라딘’에서도 지적은 나왔다. 이전의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에서 진취성이 강화한 여주인공으로 바뀐 자스민 공주를 ‘예쁨 주의보’, ‘그래서 메이크업은 어떻게 하는 건데?’ 등의 홍보 문구로 묘사했다. 영화 내용과는 다른 외모에 치중한 홍보를 진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마블 최초의 여성 히어로 영화인 ‘캡틴마블’ 홍보 때도 ‘얼음공주’라는 표현을 사용해 질타 받기도 했다.

 ◇ 디즈니와 디즈니코리아는 왜 다른가 

디즈니는 과거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조하는 데 앞장서곤 했다. 왕자의 연인이 되는 것으로 캐릭터 역할을 다한 ‘백설공주’, 왕자의 도움으로 신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신데렐라’, 자신을 구원해줄 왕자를 기다리기만 했던 ‘오로라’ 등 ‘디즈니 프린세스’로 대표되는 공주들이 그랬다. 시대가 바뀌자 디즈니는 그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SNS에서는 최근 디즈니의 행보를 두고 “과거 디즈니가 영화에서 저지른 과오에 대한 반성”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디즈니코리아의 여성 캐릭터 관련 인식은 변화하는 디즈니의 걸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여러 차례 비판을 겪었음에도 여성 캐릭터 관련 디즈니코리아의 마케팅 논란은 꾸준히 일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옥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지금까지 여성을 주변화 시키면서 남성 캐릭터들의 주체성을 돋보이게 하는 식으로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지만, 최근 제작사들은 각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때문에 아직까지도 여성 캐릭터를 배제하는 홍보 마케팅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영화의 홍보 텍스트에는 일차적인 메시지가 담기는 격인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옛날식의 성차별적 전술을 쓰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것”이라 비판했다.

디즈니코리아 측은 이번 논란에 대해 “디즈니 코리아는 SNS 포스팅과 관련된 이슈를 인지하고 이에 즉시 해당 포스팅을 수정했다”며 “앞으로 여러분의 의견을 보다 신중히 경청하며 브랜드에 걸맞은 콘텐츠 게재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윤정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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