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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연쇄살인, 폭염] 해외 편<3> 호주는 폭염 환자 이렇게 연구한다
호주 남부 도시 애들레이드 외곽의 노후 주택단지. 김창선 PD

한국 최악의 폭염이 2018년 여름이었다면 호주는 2009년 여름이 그랬다. 70년 만에 찾아온 대폭염이었다. 남반구가 달아 오르던 2009년 1월 26일부터 2월 7일까지 2주 만에 인구 2,460만명 호주에서 432명 이상의 ‘초과사망자’가 발생했다. 온열질환 사망자 만을 폭염 피해자로 집계하는 한국과 달리 호주는 폭염 기간 총 사망자 숫자에서 해당 기간 연평균 사망자 숫자를 뺀 초과치를 폭염 인명 피해 규모로 간주한다. 당시 인구 130만명인 호주 남부 도시 애들레이드에서만 56명이 초과사망했다. 애들레이드의 최고기온은 45.8도까지 치솟았다.

지구 온난화 시대 인류 최대 재난 중 하나로 부상한 폭염. 폭염 인명 피해를 줄이는 첫 단추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다 죽거나 다치는지 알아내는 일이다. 이 문제가 공중보건학계와 기상학계의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극심한 폭염 피해가 빈번한 호주에서도 애들레이드는 가장 먼저 폭염 예보 기준치를 갖춘 도시다. 애들레이드의 폭염 연구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2009년 호주 폭염 피해/ 강준구 기자/2019-07-15(한국일보)

한국보다 먼저 해법을 찾아 나선 이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19일 애들레이드대 공중보건대학을 찾았다. 세계 온열질환자 연구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 펭 비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호주는 이미 늦가을로 접어들어 거리엔 가로수 낙엽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온열질환자 대책 마련을 위해 15년 이상 공동 연구를 진행해 온 펭 교수는 “2009년 폭염으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과학자로서 누가 왜 위험에 처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고 말했다.

◇애들레이드의 폭염 대응 ‘어벤져스’

2009년 기록적인 폭염 뒤 펭 교수를 중심으로 총 18명의 ‘연합군’이 꾸려졌다. 그는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연구는 학문 간 협업이 중요하다”며 “보건학자는 물론 지방정부의 복지부 공무원, 환자 및 시민 설문지를 만드는 심리학자, 심층 조사를 위한 사회학자, 그리고 인구학자, 인류학자도 연구팀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폭염 사망자 및 그 대조군 정밀 연구였다. 연구팀은 2009년 폭염 이후 대학과 보건당국의 엄격한 연구윤리 검토를 거쳐 당시 폭염 사망자 유족의 연락처를 확보한 다음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어 같은 나이, 같은 성별이었지만 사망하지 않은 시민들을 추려 다시 조사했다. 인터뷰 설문지를 통해 대상자 건강 상태는 물론 직업, 학력, 소득, 주거환경, 반려동물 여부, 친구ㆍ이웃과의 교류 횟수 등 다양한 사회ㆍ경제적 환경 요인을 확인했다.

당연한 조사 과정으로 보이지만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구급체계나 병원의 환자 정보, 건강보험 정보가 거의 연동되지 않고, 연구 목적을 위한 환자 정보 접근 역시 극도로 제한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펭 교수는 “연구를 위한 개인정보 확보 절차가 매우 까다롭지만 호주는 공익 목적 의료연구에 관대한 편이라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망자 유족의 연락처를 얻게 되면 연구의 목적과 피조사자 권리를 상세히 일러준 다음 인터뷰 동의를 구하는 식”이라며 “대조군의 경우 선거인 명부를 통해 추출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림 3 호주 애들레이드대 공중보건대학에서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연구를 이끌고 있는 펭 비 교수. 김창선 PD.

연구팀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폭염 최대 취약계층 특징 분류, 데이터베이스 마련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펭 교수는 “일부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홀로 지내는 노인이 가장 위험했다”며 “특히 이동이 불편해 대부분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침실에 에어컨이 구비돼 있지 않고 심장질환 등을 갖고 있는 이들이 가장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특히 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이 에어컨을 잘 틀지 않았고, 치안을 이유로 야간에도 창문을 잘 열지 않아 피해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호주의 전기요금은 세계에서도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1kwh당 약 295원으로, 한국(130원)의 2배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온열질환자 ‘이환율(Morbidity Rate)’과 폭염의 상관관계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환율이란 병원 입원 및 구급차 호출, 응급실 방문 횟수 등을 의미한다. 사망자 연구가 사후 분석이라면, 이환율 연구는 현재 상태에서 가장 위험한 이들을 분류해 내는 작업이다. 예방 정책 수립의 핵심 요소인 셈이다.

◇폭염 연구로 챙긴 실생활 대책
호주 지방정부 차원 실생활 온열질환 대책 이행/ 강준구 기자/2019-07-15(한국일보)

연구팀의 노력은 온열질환자 분석에서 끝나지 않고 ‘텔레크로스 레드아이 서비스(Telecross Redi Serviceㆍ이하 텔레크로스 서비스)’ 도입으로 이어졌다. 텔레크로스 서비스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정부가 적십자를 통해 심각한 폭염 기간 동안 취약계층의 안부를 점검하는 무료 전화 서비스다. 펭 교수 연구팀이 분석해낸 폭염 취약계층 조건에 맞는 독거인, 장애인, 질병 또는 사고를 당해 회복중인 환자, 당뇨병 및 심장질환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환자 등이 서비스 대상이다.

심각한 폭염 기간이 되면 교육을 이수한 자원봉사자가 하루 3차례 서비스 대상자에게 전화를 걸고 이 중 2회 이상 응답이 없으면 지역 간호사가 현장으로 바로 출동한다. 문이 잠겨 있을 경우에는 현지 경찰이 강제 개방할 수 있도록 했다. 펭 교수는 “연구 결과를 실제 정책에 반영한 성공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텔레크로스 서비스는 2010년 호주 ‘지역사회 안전기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폭염 희생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호주의 노력은 기상 예보 분야에서도 두드러졌다. 특히 폭염 기간 동안 최저기온 수치까지 예보 기준으로 삼고 있는 대목은 최고기온만을 기준으로 하는 한국의 폭염 특보 체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호주 ‘국가 폭염 프로젝트(National Heatwave Project)’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기상청 존 나린 국장이 지난 달 18일 취재진에게 최저온도와 온열질환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김창선 PD.

호주 ‘국가 폭염 프로젝트(National Heatwave Project)’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기상청 존 나린 국장은 “폭염을 분석할 때 최저온도가 최고온도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정한 날 최고 기온이 극도로 올랐어도 밤에 25도 아래로 떨어지면 인체에 축적된 열기가 식을 수 있다”며 “밤에도 25도 이상을 유지하고 다음 날 다시 35도에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지면 인체에는 2배의 열이 축적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2009년 애들레이드 폭염 자료를 토대로 최고ㆍ최저기온 모두를 반영하는 평균온도를 계산해 폭염 강도와 사망자 숫자 추이도 비교했다. 그 결과 ‘폭염 강도가 가장 강했던 날로부터 2, 3일 후에 사망자 수가 최대치에 이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얼마나 뜨거운 열에 노출되느냐’ 못지않게 ‘얼마나 오래 열에 노출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호주는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폭염 기간 최고기온과 최저기온 추이와 지역별 평균기온을 비교해 3단계로 나눈 폭염 예보를 시행 중이다. 1단계는 일반적인 여름 날씨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견뎌 낼 수 있는 정도, 2단계는 노년층 및 기저질환 등이 있는 취약계층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수준, 최고 단계인 3단계는 건강한 사람조차도 견딜 수 없는 수준을 의미한다. 호주 대륙이 워낙 광활하고 사막부터 해안까지 다양한 지리적 환경이 있기 때문에 온도 기준치도 지역별로 다르다는 게 나린 국장의 설명이다.

나린 국장은 이 3단계 예보를 발전시켜 노동, 복지, 보건, 체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실질적인 강제력을 갖는 경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린 국장은 “호주의 모든 지역과 각 분야에 통일적인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자칫 너무 자주 경보를 울려 국민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며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기 위해 각 분야의 파트너들과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폭염 대응의 성공과 새로운 도전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애들레이드. 김창선 PD.

2009년에 이어 불과 5년 만인 2014년, 폭염이 다시 호주를 덮쳤다. 폭염 대응 전문가들은 시험대에 서게 됐다. 결과는 성공과 숙제를 동시에 안겨줬다. 새로운 예보 시스템을 도입하고 텔레크로스 서비스를 적극 활용한 결과 2009년 304건이었던 애들레이드 지역 중증 온열환자 이송 건수는 2014년엔 160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다만 이송자 중 사망자 비율은 2009년 11%에서 2014년 12%로 소폭 올랐다. 절반의 성공이었던 셈이다.

나린 국장은 “우리가 과거를 통해 배우는 능력을 좀 더 빨리 갖췄더라면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반복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우리가 연구를 계속하는 것도 과거에서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들에이드(호주)=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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