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전근대적 기업문화 퇴출 계기 돼야

입력
2019.07.16 04:40
31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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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징계하고, 이 같은 피해를 호소한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사용자를 처벌토록 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부터 시행된다. 개정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 업무상 적정한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한다.

언뜻 이런 사례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낸 자료를 보면 의외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이 ‘직장 갑질’이라 부르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 흡연, 회식 참여를 강요’하거나 모욕감을 줄 의도로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질책하는 것도 괴롭힘에 해당한다. 회식 자리에서 통용되는 ‘후래자 삼배’ 같은 경우도 이 때문에 피해자가 고통을 받았다면 역시 갑질이다.

법 개정을 추동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조사해 최근 내놓은 괴롭힘 사례에는 송년회 때 장기자랑을 강요받거나, 차별적으로 시말서나 반성문을 쓰게 하고, “너는 얼굴 생긴 게 임팩트가 없다“는 폭언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도 포함돼 있다. 이 또한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내 괴롭힘은 피해자 개인의 정신적ㆍ신체적 고통을 동반하는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일부 간호사들의 악습인 ‘태움’ 사건들에서 보듯 개인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범법 행위다. 진즉 이런 법 제도와 문화가 일터에 뿌리를 내렸더라면 강동성심병원 간호사들의 장기 자랑도,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나 물컵 갑질도,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 폭행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뒤늦었지만 법 개정이 국내 기업의 공고한 위계질서와 집단 우선주의 문화가 조직 생산성과 개인권익 보호라는 긍정적인 순기능을 한참 벗어나 남용되던 행태를 바꾸게 되길 기대한다. 시행 과정에서 따져 봐야겠지만 개정법이 가해자에게 징계나 근무지 이동 등 사내 처벌만 허용한 점을 두고 솜방망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가해자ㆍ사용자 모두 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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