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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적국 간주 의미
양국 갈등 넘어 동북아 전체 혼돈
일본 국민들이 아베 도발 자제시켜야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 한일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 전찬수(오른쪽)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오른쪽 두번째) 동북아통상과장이 12일 도쿄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 일본 측 대표인 경제산업성 과장 2명과 마주앉아 있다. 도쿄=연합뉴스

일본 사람들을 만나면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서울이나 평양이 말을 듣지 않으면 공격하고,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 군함을 격침하기 위해 도쿄에 미사일이나 핵폭탄이 떨어지는 참화를 감수하겠느냐고. 아마 미친 사람 취급하며 단연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달리 묻고 싶다.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로 돌아가 이웃 국가들을 압도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전쟁을 치를 생각이 있느냐고. 역시 아니라고 단언할 것이다.

또 묻고 싶다. 중국 난징에서 30만명을 학살하고, 한국의 젊은 처자들을 군 위안부로 데려와 능욕하고, 주변국 청년들을 강제로 끌고 와 탄광이나 섬에서 일을 시키던 시절을 꿈꾸느냐고. 아마 화를 내며 일본은 인권과 신뢰를 중시하는 민주국가라고 답할 것이다.

이쯤 되면 그들이 불쾌한 표정으로 거꾸로 물을 것이다.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아베 총리의 수출 규제 때문이라면, 전쟁까지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그렇다면 다시 물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산업을 마비시키고, 이달 하순 각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게 어떤 의미인 줄 아느냐고. 아마 대다수는 그저 규제 조치 중 하나로 생각할 것이다. 할 수 없이 또 묻겠다. 한국이 우방이 아니라 적국이냐고. 우방의 느낌은 약해졌지만 적국은 아니라는 답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설명부터 해야겠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된 나라에 대해선 전체 수출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른바 ‘캐치올(catch all)’ 규제다. 연원은 냉전시대에 서방이 공산국가들에 전략물자 수출을 통제하던 ‘코콤’이다. 냉전이 끝나고 1996년 코콤 대신 ‘바세나르 체제’가 출범했고, 북한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등이 서방국가들의 규제 대상이 됐다. 일본은 국제전략물자 수출 통제 체제에 가입한 국가들을 ‘화이트리스트’에 넣고 수출 허가 절차를 간소화했다. 한국은 화이트리스트의 대표적 국가인데 여기서 빼겠다는 것은 우방국이 아니라는 의미이고, 사실상 적대국으로 간주하겠다는 해석도 가능케 한다.

설명을 했으니 다시 물을 것이다. 한국이 이란 이라크 시리아 북한 같은 나라냐고. 실성하지 않았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이제 엄중하게 묻고 싶다. 당신네 나라는 사법부 판결을 정부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느냐고. 그렇게 바꾸지 못했다고 수십 년간 우방으로 지냈던 이웃을 적국으로 간주하겠느냐고. 물론 한국 정부가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집행하지 않고 정부 차원의 자체 기금이나 일본과 협의를 통해 해결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안 했다고 경제적 보복을 넘어 군사 안보적 균열과 대립까지 감수한다는 게 타당하냐고. 더욱이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한미일 3각 안보 공조를 무너뜨리고 한미동맹마저 흔들 것이며, 만약 미국이 이를 방조한다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원한다는 의미로 투영될 것이다. 이 흐름이 현실화하면 동북아 전체가 대립과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여, 정녕 그대들은 그런 혼돈의 상황을 바라는가. 제국주의의 대립으로 촉발된 2차 세계대전에서 사상자가 5,000만~7,000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문명사회가 이성을 잃지 않겠지만, 어찌 알겠는가. 그런 극단적 상황까지 갈 수도 있는 아베의 무도한 도발을 제어하고 절제시킬 것을 일본 국민들에 호소하고 싶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모두가 아는 마르틴 니묄러의 시 ‘침묵의 대가’를 소개하고 싶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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