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인간의 실수

입력
2019.07.15 04:40
31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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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열린 세계 응급의학회 기간이었다. 주 강연장에서 ‘의료진의 실수와 정확성 향상’을 주제로 강연이 진행 중이었다. 의료 현장에서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가 발생하지만, 그 선택을 내리는 주체가 모두 사람이기에 실수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대부분의 실수는 다행히 사소한 위해에서 그치지만, 매우 가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돌이켜보면 그런 실수들은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어, 어쩔 수 없는 신의 영역 같아 보이기도 한다.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은 안간힘을 써서 그 사태를 수습한다. 하지만 행위의 당사자라면 반대의 ‘만약’에서 진행되었을 일이 예측 가능하다. 그것은 삶이 죽음으로 바뀌는 단순한 비가역 반응일 수 있다. 수많은 인간이 부대끼는 응급실에서는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응급의학회에는 유독 인간의 실수에 대한 강연이 많다. 의료진 보수 교육에서 가장 흔하게 다루는 내용이기도 하다. 나는 전날에도 비슷한 주제의 강연을 들었고, 오늘은 영국에서 온 의사가 연단에 섰다. 솔직히 큰 기대감은 없었다.

하지만 이 강연의 시작은 학회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지척에 앉아, 그녀가 보통의 강연자처럼 긴장하거나 딱딱한 표정을 짓지 않고 슬픈 표정으로 연단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런 감정을 가지고 학회 발표를 시작하는 강연자는 참 드물다. 그녀는 ‘인간의 실수’라고 적힌 하얀 화면을 올려놓고 갑자기 사람들에게 첫마디를 건넸다.

“지금 제 강연을 듣는 모든 분들은 전부 일어나주시길 바랍니다.”

약간의 의아함을 품은 청중은 의자를 끄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 저는 의료진의 실수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묻겠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응급실에서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분은 자리에 앉아 주세요.”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온 응급실 의사였다. 실수가 없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모두는 그대로 서 있었고, 강연장은 고요했다. 그녀는 서 있는 우리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없겠지요. 그러면, 이제 그 실수가 환자에게 결정적인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시 앉아 주세요.”

우리는 적어도 꼭 한 번은 그 실수의 당사자일 수밖에 없었다. 많은 경험을 거치고 해외 학회장까지 모인 각국의 응급실 의사 대부분은 아직도 서 있었다. 그들은 그 실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고, 결정적인 해가 있었음을 모를 리 만무했다.

“거의 앉아 계신 분이 없네요.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그 결정적인 해악을 끼친 사건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해악인지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을 다 잊은 분, 그래서 지금 죄책감 없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앉아 주세요.”

나는 앉을 생각이 없었다. 그 사건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구체적인 한 장면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았다. 하지만 주변 몇 명은 그 말을 듣고 주섬주섬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자유롭다기보다는, 앞으로 만날 환자를 위해 그 기억을 떨쳐낸 것으로 보였다. 그런 기억을 매번 되새기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그녀는 청중의 상당수가 착석하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 제법 많은 수는 앉으셨네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가장 슬픈 표정이 되어, 청중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서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내 강의가 끝날 때까지 서서 여러분께 말할 것입니다. 이제 모두 앉아주세요.”

그 뒤의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강의가 내내 무엇인가 호소하는 느낌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먼 곳에서 그토록 생생한 슬픔을 지니고 와 동료들에게 그 호소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분명한 사실 외에는.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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