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맞보복” 여론 높지만… 당장 쓸 카드가 없다

입력
2019.07.12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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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TO 제소해도 최소 2년, 규정 어기며 맞대응 쉽잖아 

 정부, WTO 예외규정 보며 전략물자 수출 제한 검토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상응조치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우리 정부가 당장 꺼낼 수 있는 맞대응 카드는 많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WTO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대일(對日) 수ㆍ출입 제한 등 맞보복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WTO 예외규정을 검토하며 전략물자 수출 제한 등 대안을 강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11일 “일본에 대한 맞대응 조치는 WTO 규정과 절차에 근거해 이뤄질 것”이라며 “다만 즉시적인 조치를 위해 WTO 예외조항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WTO 규정의 근간이 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제11조에서 가입국들의 일방적인 ‘수ㆍ출입 수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의 조치가 WTO 규정에 어긋난다고 우리 정부가 근거로 내세운 조항이 바로 이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가 자동차 부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의 일반 품목에 대해 대일 수출을 규제하거나 일본산 자동차의 수입을 일방적으로 제한하면 WTO 규정 위반이 된다. 한 통상 전문가는 “일본의 이번 조치에 대해 동등한 수준으로 맞보복 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이 높다”면서도 “하지만 일본과 똑같이 보복할 경우 WTO 제소를 카드로 내 건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명분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우리 정부가 WTO 규정에 근거해서 일본에 수ㆍ출입 제한 등 맞대응 조치를 하려면 앞으로 최소 2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WTO는 분쟁해결기구(DSB)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에 한 해 상대국으로부터 입은 피해액만큼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2심제로 이뤄지는 DSB 재판이 끝나는데는 2~3년이 소요된다. 우리 정부의 일본에 대한 상응조치도 그 이후에나 가능한 셈이다.

우리 정부가 그 시간을 마냥 기다리기는 어렵다. 당장 일본의 수출 규제 확대 조치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WTO 예외조항을 살펴보고 있다. GATT 21조는 중대한 국가안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포괄적으로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산업부는 전략물자에 대한 선별적인 대일 수출 제한은 WTO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전략물자로 원자력 전용 품목, 센서 및 레이저, 항공ㆍ전자 기기, 우주 비행체 및 관련 장비, 재료 화학물질 미생물 독소 등을 관리하고 있다. 다만 산업부는 이런 WTO 예외규정에 근거한 수ㆍ출입 제한 역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에 대한 맞대응은 WTO 규정에 의거한다는 게 원칙”이라며 “다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WTO 예외규정을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뉴스1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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