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니체는 고대 그리스 희극을 "부조리의 구토로부터의 예술적 해방"이라고 정의했다. 윌리엄 어윈 교수를 비롯한 '심슨 가족이 사는 법' 저자들은 오늘날 '심슨 가족'이 이러한 해방 창구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 본다.

“교육이 어떻게 날 더 똑똑하게 해준다는 거야? 뭔가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이전에 배운 건 뇌에서 밀려난다고. 와인 만들기 강의 들었을 때 운전하는 법 다 까먹은 거 기억나지?”

30년 넘게 미국은 물론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는 만화영화 ‘심슨 가족’ 속 아버지인 호머 심슨의 대사다. ‘한심함’으로 요약되는 그의 캐릭터와 겹쳐 웃음을 유발한다. 중년 남성 호머는 부부 사이의 위기로 아내 마지가 가정상담을 신청해 둔 와중에도 낚시를 하고 싶어 고민할 정도로 남편으로서 낙제점에 가깝다. 그런데 그런 호머의 말에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읽어낼 수 있다면?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안다는 것은, 아는 게 없음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앎의 의미다.” 자신이 아는 게 없음을 인정한 호머는 알고 보면 진정한 득도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었던 걸까.

미국 펜실베니아 킹스칼리지의 철학 교수인 윌리엄 어윈은 ‘심슨 가족’이 단순히 ‘한 멍청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윈 교수와 그의 동료 철학자들은 ‘심슨 가족’에서 발견한 철학적 의미를 글로 써 책으로 엮었다. 겹겹이 이어지는 풍자와 패러디가 ‘심슨 가족’의 가장 큰 묘미로 꼽힌다. 에피소드 한 편을 제작 하는 데만 8개월 간 300명의 인력이 투입된다는 사실에서 ‘심슨 가족’의 촘촘한 설계도면을 엿볼 수 있다.

책은 등장인물을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 ‘심슨 가족’ 속에 등장하는 패러디와 코미디 등을 살핀다. 특정 에피소드를 통해 칸트의 도덕론 같은 본격적인 철학 주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1989년부터 2001년 4월까지 방영된 ‘심슨 가족’의 에피소드를 줄줄이 사례로 제시하는 저자들의 글이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성품 유형으로 볼 때 호머는 악인은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도 아니다. 절제할 줄 모르고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일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머는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인생을 최대한 사랑하는 인물이다. 책의 저자로 참여한 라자 활와니는 이러한 호머의 모습이 “삶의 즐거움에 대한 비관주의가 거의 최고치에 이른 현대 시대에 중요한 자질”이라고 봤다.

심슨 가족이 사는법
윌리엄 어윈 등 엮음ㆍ유나영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492쪽ㆍ2만2,000원

합리적인 도덕적 균형을 지향하는 마지, 가족 중 가장 뛰어난 지성을 가졌지만 우울한 리사, 반항적인 문제아 바트, 아직도 젖먹이인 매기까지 그저 웃어 넘겼던 캐릭터들로부터 읽어낸 철학적 메시지에 무릎을 치게 된다. 저자들은 이 책이 ‘심슨 가족의 철학’이나 ‘철학으로서의 심슨 가족’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슨 가족과 철학’이라는 주제로 쓰였다고 밝히고 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