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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도입을 추진하는 가상화폐 리브라. 연합뉴스

페이스북(Facebook)이 2020년부터 출시하겠다고 밝힌 암호화폐 ‘리브라(Libra)’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2019년 6월 18일에 공개된 리브라 백서에는 전 세계 17억 명 이상의 성인이 전통적인 은행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리브라는 글로벌 통용성과 개방성을 토대로 저비용ᆞ실시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리브라는 기존의 암호화폐가 가지는 약점인 과도한 가치 변동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 자산에 의해 뒷받침되는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 형태로 구현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 오픈소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기술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독립적인 비영리단체인 ‘리브라 협회(Libra Association)’를 통해 그 운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세계 77억 여 명의 인구 중 24억 명 가량이 이용하는 페이스북이 암호화폐를 출시할 경우 국가 차원의 통화정책은 그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리브라 협회에는 비자, 마스터카드를 비롯해 온라인 경매업체 이베이, 전자 결제 시스템 제공업체 페이팔, 차량호출 서비스업체 우버 등 28개 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이미 각 분야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들이 협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2020년 출시 전까지 100개 이상의 파트너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 파급력이 기축 통화인 달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이 그저 호들갑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백서에 의하면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리브라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주소를 사용할 수 있고, 현실 세계의 신원 증명 내역과 연동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말미에는 “여러분이 저희와 함께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고 적혀 있다. 글로벌 기업의 새로운 시도를 비판하는 것에는 신중을 요한다. 흡사 1990년대 문화 대통령으로 일컬어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를 두고 혹평을 했던 작곡가가 새로운 음악 트렌드를 읽지 못한 사람으로 오랫동안 회자되었던 것처럼 금융거래의 탈국가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블록체인, 암호화폐 등 어려운 기술적 논의가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해당 기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당장 내일 벌어질지 모를지언정 아직은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금융혁신인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모여서 금융거래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된 시민들의 편익을 위해 암호화폐를 출시하겠다는 취지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는가? 그 목표가 구현되면 테러자금을 조달하고, 마약밀매나 보이스피싱 등 범죄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꿈부터 실현된다는 것을 모르는가? 불과 25년여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가명이나 차명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었다. 비실명거래는 지하경제를 활성화시켰고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바, 1993년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적으로 거론된다. 최근 들어 통장 발급 절차가 강화된 것은 통장을 개설한 사람과 실제 사용자가 다른 대포통장이 각종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때 노숙인 명의의 대포통장이 200만 원에 거래되기까지 했으니 정부가 통장 발급 및 본인 계좌 관리 등에 관한 강화된 지침을 내놓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리브라를 비롯하여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암호화폐는 범죄자금 유입 및 자금세탁을 막고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그동안 기울여 왔던 우리 사회의 노력에 배치된다. 실제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범죄에 이용될 경우 그 거래 내역을 파악하거나 범죄수익을 박탈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지난 2011년 마늘밭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을 통해 벌어들인 110억여 원의 현금이 중장비 기사에 의해 발견되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남의 눈을 피해 땅을 파고, 돈을 묻고, 그것이 발각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치 변동으로 인한 위험만 감수한다면 암호화폐로 안전하게 범죄수익을 은닉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자지갑의 주소나 암호를 확보하는 것이 관련 수사나 범죄수익 박탈의 관건이 되는 상황에서 범죄자의 자발적 진술만을 기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첨단을 달리는 범죄수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수색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수사 방식이 법제화될 필요가 있다. 리브라가 뜻하는 천칭자리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Astraes)가 가지고 다니던 저울대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기업이 인류와 사회를 위해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정의의 저울을 국가가 아닌 기업의 손에 들려주는 것에는 강력히 반대한다.

윤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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