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시니어 자유여행 디자이너 ‘인디 라이프’ 홍은표ㆍ안정옥 부부 
자신들이 경험한 50, 60대 해외 자유여행을 아이템으로 은퇴 후 사업을 시작한 홍은표(왼쪽), 안정옥씨 부부가 지난달 26일 마포구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각자 집필한 여행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지금 하는 일을 70, 80대에 해도 후회가 없겠나 생각했죠. 좋아하는 것, 많이 해본 것, 잘하는 것을 찾았어요. 은퇴 전 2년 동안 준비기간을 거쳤습니다.”

50, 60대의 해외 자유여행기를 쓰고, 동종의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 ‘인디 라이프’를 꾸리고, 이들 세대의 자유여행을 돕는 컨설턴트로 도약하고 있는 홍은표(62), 안정옥(62) 부부의 말이다. ‘은퇴하고 뭐하지?’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 질문에 ‘취미로 하던 일을 업(業)으로 삼는다’ 처럼 쉬운 답은 없을 것이다. 생각은 쉽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이들처럼 밝은 표정으로 자신들의 선택에 만족하는 경우도 찾기 어렵다. 그 비결은 뭘까.

◇”스스로 선택한 여행에서 느낀 행복감”

건설사에서 해외플랜트 사업을 담당하던 홍씨는 43세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다. 어떻게 생계를 꾸려야 할지 막막했다. “갔다 오면 뭔가 생각 나겠지”라며 자녀 둘을 포함해 온 가족을 데리고 떠난 배낭여행이 지금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년 전 이들이 선택한 여행지는 터키ㆍ이집트 등이었다. 안씨는 “그땐 너무 낯선 곳이어서 유언장까지 썼다”며 “재산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톨릭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고생도 이만 저만 아니었다. 홍씨는 버스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한 밤 중 도착한 낯선 오지의 시골마을에서 “오늘 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야 하나”란 고민에 빠지기 일쑤였다. 안씨는 이집트 동부 시나이 반도로 가려고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사막 길을 달릴 때 이슬람의 금식 기간인 라마단을 맞아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코란 암송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져 껌으로 귀를 막기도 했다. 그런데 높은 기온 탓에 껌이 귓속으로 녹아 들어 이를 제거하느라 한참을 고생하기도 했다.

이런 고생에도 이들이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말은 통하지 않지만 친절하고 소박한 무슬림을 만나 하룻밤 편안히 보내며 그들에 대한 편견을 떨쳐낸 일, 천주교 신자임에도 이슬람사원(모스크)에서 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얻은 순간. 이런 경험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즐길 수 있었단다.

무엇보다 스스로 선택한 여행의 예측 불가능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더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얻은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홍씨는 “남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경험을 함으로써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됐고,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자유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며 “여행을 통해 소유하는 삶보다 경험하는 삶이 의미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

이 여행으로 마음을 다잡은 홍씨는 귀국해 2001년 미국의 소프트웨어를 국내에 들여오는 정보기술(IT) 회사를 차렸다. 다시 생활도 안정됐다. 그런데도 홍씨는 환갑을 앞둔 즈음 문득 “지금 하는 일을 60, 70, 80대까지 계속해도 삶에 후회가 없겠나”란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매일 저녁 맥주 한잔씩을 앞에 두고 안씨와 상의를 했다. 6개월여가 지나 이들은 “아니다”란 답에 도달했고, 환갑이었던 2년 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자유여행이 자신들에게 가장 행복한 일 가운데 하나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자기 삶을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50, 60대는 가진 게 많죠. 이들이 국부의 50, 60%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세계 행복지수 57위인 우리나라에서 이들이 과연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까요. 이렇게 행복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자기 삶을 자기가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성장 일변도의 사회환경에서 살면서 젊을 때부터 경쟁에만 익숙한 이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한번 보세요.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여행 인구는 2,000만 명을 넘었는데 50, 60대의 70% 이상은 아직도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만 하고 있죠. 땅 따먹기 하듯 유행하는 곳을 ‘찍고’ 다니는 여행으로는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죠.”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했던 50, 60대의 자유여행 노하우를 책을 통해 공유하고, 컨설팅도 하는 ‘5060세대 자유여행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로 했다. 첫 결실로 이들은 지난해 ‘인디 라이프’ 출판사를 열었고, 안씨가 터키ㆍ그리스ㆍ이집트 여행기를 담은 ‘오래된 그이터’, 홍씨가 이스라엘ㆍ요르단ㆍ팔레스타인 여행기를 담은 ‘이스라엘 기행’을 각각 펴냈다.

◇‘인디 라이프’ 여행 도우미

“내가 선택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한다면 보다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옵션’을 선택하지 않으면 소외되는 여행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으로 들어가는 문일 뿐이에요. 5060세대가 두려워서 망설이는 자유여행 방법을 가르쳐주고 돕고자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바로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홍씨는 자신이 하던 사업을 그만두기까지 2년여 동안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각종 강의를 듣고 공부하며 은퇴 후 사업 아이템을 숙고하고 준비하는 기간을 거쳤다. 지금은 이 곳에서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자유여행 강의를 맡고 있다.

홍씨 부부가 차린 회사 이름인 ‘인디 라이프’는 이들의 삶의 비전이기도 하다. 스스로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독립한 삶이다. 그런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유독 여행에서만 ‘인디 라이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이들의 소신이다.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해외 자유여행을 50, 60대가 떠나는 게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일까’란 질문에 홍씨는 “열린 마음과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지만,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국가일지라도 이런 마음가짐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홍씨는 일화를 들려줬다. 그리스 델포이에서 저녁 마실을 나간 안씨와 자녀들이 1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 걱정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한 현지인 할아버지가 자신이 운영하는 액세서리 가게로 안씨와 자녀들을 불러들였고, 이들은 각자의 언어를 쓰면서 눈빛, 손짓, 몸짓으로 소통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스마트폰만 잘 활용하면 50, 60대도 쉽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게 홍씨의 설명이다. 외국어 동시통역 어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구글 맵 등 길찾기 앱으로 세계 각지의 낯선 곳도 잘 찾아 다닐 수 있으며, 스카이프와 같은 앱으로 무료 통화도 얼마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해외에 나가보면 대학교 1, 2학년 또래의 젊은이들이 혼자서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훌륭한 조건이 아닌데도 자유롭게 잘 다닌다. 우리 세대는 영어가 조금 안되지만 그들보다 경험이 많아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주머니 사정도 더 넉넉한데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 걱정 말라.” 안씨가 거든 말이다.

그래서 이들이 꿈꾸는 ‘인생 2막’은 뭘까. “우리가 사랑하는 여행을 통해 스스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다른 50, 60대에게도 여행을 통해 다른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스스로 선택하는 행복을 알려준다면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만간 이들은 화가 고흐의 작품이 전시된 유럽의 미술관과 고흐가 살며 작품활동을 했던 곳을 누비는 ‘반 고흐 루트’를 50, 60대의 자유여행 코스로 개발할 계획이다. 고흐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며 위인전으로만 접한 그의 이미지와는 다른 실제 일생을 되짚어보고, 노년 세대가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고 새로운 구상을 할 기회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우리나라에 오는 전세계 50대 이상 관광객에게 영어ㆍ중국어ㆍ일본어 관광통역 안내사 자격증을 갖춘 한국인 50, 60대가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또는 협동조합 설립도 준비중이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자신들이 경험한 50, 60대 해외 자유여행을 아이템으로 은퇴 후 사업을 시작한 홍은표(오른쪽), 안정옥씨 부부가 2018년 7월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자유여행 중 찍은 사진. 인디 라이프 제공
자신들이 경험한 50, 60대 해외 자유여행을 아이템으로 은퇴 후 사업을 시작한 홍은표(오른쪽), 안정옥씨 부부가 2017년 9월 자유여행을 간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나룻배에 앉아 있다. 인디 라이프 제공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