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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라

호찌민 시내 한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인 오토바이 무리에서 한 여성운전자가 안전헬멧을 고쳐 쓰고 있다. 2019년 1분기 기준 베트남 경제활동 인구는 5,543만명으로, 남성 52.3%,여성 47.7% 비율을 보이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폭행 사건이 한국은 물론 베트남 현지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을 ‘생각보다’ 잘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일수록 오해에서 빚어지는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찌민 반히엔대 한국학과장을 맡고 있는 까오투이완(35) 교수는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문화적으로) 서로 비슷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동질성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그 차이에 대해서는 연구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상사 지적에 웃음은 ‘실수 인정’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관련된 각종 행사에서 한국 측 인사들의 발언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사말은 ‘한국과 베트남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 한결같이 같은 유교 문화권임을 강조한다. 더러는 ‘사돈의 나라’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베트남 측 인사들에 대한 친밀감의 표시이거나 수교 사반세기 만에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양국 간 높은 수준의 협력을 설명하기 위한 수사로 이해된다.

실제로 이 외에도 한류 문화,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선전 등의 영향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호감도는 높은 편이다. 지난 1월 베트남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일보가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에 동질감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이 70.7%에 달했다.

그러나 베트남 전문가들은 ‘한국과 베트남은 비슷한 것이 많다‘ ‘친근하다’는 일반적인 인식 아래 양측의 차이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다.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 응용이론문화센터장을 맡고 있는 전응옥템 교수는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가 일부 비슷할 뿐 같은 문화가 아니다”라며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라도 실질적으로는 달리 이해되거나,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정반대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템 교수는 한국으로 결혼 이주한 여성이 식탁에서 턱을 괴고 시어른을 쳐다보다 일어난 폭행 사건, 상사(어른)의 지적(훈계)에 웃음을 보였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를 예로 들었다. 전자 행동의 경우 베트남에서는 ‘경청’의 의미가 있고, 후자 상황에서의 웃음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아오자이 차림을 한 베트남 여성이 하노시 시내 돌담길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전문가를 고용해 촬영에 나선 해당 여성은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해당 벽화는 한ㆍ베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하노이시 호안끼엠 인민위원회와 공동 조성한 공공미술거리 일부다. 양국 미술가들이 참여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우리와 ‘다른’ 유교 문화 

베트남은 ‘한국과 같은 유교 문화권’으로 표현되지만 베트남의 유교 문화는 한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 베트남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베트남 사회학자인 하노이 탕롱대 이계선 교수는 “역사가 ‘전쟁의 역사’인 베트남에서 남성들이 전쟁을 하는 동안 집안일, 농사, 생활 공동체의 중심은 여성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인 유교 문화는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 일상 생활과 사고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로는 자리 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시대 숭유배불(崇儒排佛) 정책이 대변하듯, 한반도에서는 유교가 정치 수단, 사회 통제의 도구로서 높은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베트남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베트남의 유교는 학문으로서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부연했다.

템 교수도 “한국ㆍ중국ㆍ일본은 유목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남성을 우월하게 여기고 무예를 중시하며 무역을 전통으로 삼았다”며 “하지만 베트남은 여성 중심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을 귀하게 여기고 정을 중시했지만 무역은 싫어하는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근본적으로 다른 바탕 위에 중국의 유교 문화가 유입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국 문화는 위계질서를 중시해 아랫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위에서 호통을 치고, 밑에서는 두들겨 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체면을 중시해 윗사람도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템 교수는 또 “구타는 노골적인 모욕으로 간주된다”며 “한 사람이 치욕을 당할 경우 주변 사람들이 단결해 약자를 보호하는 공동체 의식도 한국인들이 모르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여성 경제활동. 그래픽=강준구 기자
 ◇“여성 지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 

한국과 베트남 사회의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높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남성들의 경제권이 커지면서 베트남에서도 가부장적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나, ‘양성평등’에 관한 한 베트남이 한국을 크게 앞서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응우옌티탐 한국북조선연구소 소장은 “1,000년 동안 지배를 받으면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유교는 수많은 외부 영향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프랑스 식민시절에는 여성들도 공부를 했고, 이후 공산주의 사회를 거치면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사인 딜로이트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 기업들의 여성임원 비율은 17.6%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진병오 재하노이 한베가족협회장은 “한국처럼 남아선호 사상이 있지만 분명한 모계사회이고, 이 때문에 이혼을 하더라도 양육권은 물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쫓겨나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베트남 남성”이라며 “베트남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고 전했다.

채수홍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베트남은 근대화, 사회주의를 거치면서 여성의 권리 의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보다 빠르게 발전한 나라”라며 “베트남 여성을 배우자로 맞는 한국 남성들은 이 특징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노이ㆍ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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