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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 이열음 태국서 대왕조개 불법취식… 최대 5년형
6년 전 아르마딜로 취식 논란… 재미 치중 불법ㆍ자연파괴 눈감아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 출연한 배우 이열음씨가 태국에서 바다 생물 사냥에 나서고 있다. SBS 제공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정글의 법칙)은 2011년부터 방송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지상파 방송이 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시청률 10% 안팎을 꾸준히 기록하며 방송사에 효자 노릇을 해 왔다. 이국 땅에서 연예인들이 문명의 도움 없이 생존해나가는 모습을 담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MBC가 ‘정글의 법칙’을 본 따 ‘오지의 마법사’(2017)와 ‘두니아: 처음 만난 세계’(2018)를, KBS가 지난해 ‘거기가 어딘데??’라는 유사 프로그램을 방송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른바 탐험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려 온 ‘정글의 법칙’의 출연자가 지난달 태국에서 멸종위기로 보호를 받고 있는 대왕조개를 채취하고 시식해 국내외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왕조개 채취ㆍ시식 장면은 지난달 29일 방송에 고스란히 담겨 출연자와 제작진이 태국 법에 따라 처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방송가에서는 촬영 국가의 이질적인 문화와 특수한 자연 상황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다가 벌어진 사고로 보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진의 고질적인 불감증이 부른 화라는 지적이다.

탐험 프로그램을 둘러싼 사건사고는 오래 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정글의 법칙’의 효시 격인 KBS2 ‘도전! 지구탐험대’에선 1999년 배우 김성찬(당시 45)씨가 라오스에서 촬영하던 중 뇌성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씨를 급히 섭외해 출국하는 과정에서 예방약을 복용시키지 않으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김씨는 여행자보험에도 들지 않아 유가족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2005년엔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우먼 정정아(42)씨가 콜롬비아에서 촬영하던 도중 아나콘다에 물려 부상을 입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위험이 큰 촬영이었으나 제작진은 정씨에게도 여행자보험을 가입시키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KBS2 '도전! 지구탐험대'는 출연자 사망 및 부상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글의 법칙’도 ‘전과’가 있다. 2013년 9월 카리브해 연안 소국 벨리즈의 한 마을에서 출연자들이 아르마딜로 요리를 먹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아르마딜로는 한센병을 전염시킬 수 있는 동물이다. 주로 피부 접촉과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지만, 고기를 섭취해도 한센병을 옮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정글의 법칙’이 출연자 보호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은 별다른 해명 없이 2년 뒤에도 동일한 장면을 방송해 도마에 올랐다.

‘정글의 법칙’ 제작진은 과거 사건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태국 촬영에 임한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의 부실한 촬영 관리는 출연 연예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됐다. ‘정글의 법칙’ 촬영장이었던 태국 핫 차오 마이 국립공원의 나롱 콩가이드 원장은 3일(현지시간) 국립공원법 및 야생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배우 이열음(23)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방송에서 이씨는 바다 속에서 대왕조개 3개를 발견해 채취한 후 동료들과 함께 시식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나롱 원장은 6일 “방송사가 사과를 해도 고발을 철회할 뜻은 없다”며 “이열음이 태국에 없더라도 경찰은 그를 찾아낼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왕조개는 1992년 제정된 태국 야생동물보호법에 따라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다. 태국에서 대왕조개를 불법 채취하면 최대 2만 바트(약 76만원)의 벌금 또는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거나 두 처벌 모두를 받을 수 있다. 한국과 태국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다. 태국의 요청이 있으면 한국이 이씨의 신병을 인계할 수 있으나 중대 범죄가 아니면 신병을 넘겨주는 경우는 드물다. 자칫 이씨의 인도 여부가 양국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방송 탐험 프로그램 사고. 그래픽=신동준 기자

대왕조개 채취가 실수로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의혹도 있다. 현지 방송사 타이 PBS는 7일 사냥 장면을 촬영하지 않겠다고 ‘정글의 법칙’ 조용재 PD가 태국 관광스포츠부에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동남아 국가에서 다이빙 교육을 하는 이모(28)씨는 “초보자가 공격적인 대왕조개를 채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제작진이 채취에 앞서 사전 작업을 해뒀을 것”이라고 밝혔다. SBS는 대왕조개 취식 사건이 불거지자 8일 “내부 조사 결과에 따라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이열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책임이 있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제작진이 해외 촬영 문제에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프로그램 재미에만 치중하며 시청률에 목메다 보니 현지 상황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처음 ‘정글의 법칙’은 기존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원주민과 동식물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이를 명분으로 삼았다”며 “어느 순간부턴 정글 서바이벌로 바뀌면서 ‘먹방’이 방송 코드로 자리를 잡았다. 법적 문제가 없었더라도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취식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라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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