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농도 니코틴은 구토 증상 없어도 즉사 가능’ 입증

입력
2019.07.09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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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10> 남양주 니코틴 살인사건

1세대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가 밝혀내

니코틴 원액. 게티이미지뱅크
니코틴 원액. 게티이미지뱅크

2016년 발생한 ‘남양주 니코틴 살인사건’은 무척 까다로운 사건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망원인을 ‘니코틴 중독’이라 밝혔지만, 니코틴과 관련된 직접 증거는 나온 게 없었다. 법조계에선 ‘무죄 확률 50%’란 말이 나돌았다. 여기에다 그 역한 니코틴을 원액 그대로 들이 마셨다면 다 토해내거나 해야 하는데, 그런 흔적도 없었다는 게 피고인측 변호인의 주장 중 하나였다.

이 때 이 사건 입증을 도와달라고 부탁받은 사람이 이정빈(73)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였다. 이한열 사건, 5ㆍ18민주화운동 사망자 사건 등에 참여했던 이 교수는 대한법의학학회장을 역임한 1세대 법의학자다. 니코틴이니까 몸에 해롭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얘기가 아니라, 니코틴 원액의 정말 살인도구로 쓰였는지 밝혀야 했다.

2016년 4월 발생한 남양주 니코틴 살인 사건에서 수사를 담당한 의정부지검 측 의뢰로 니코틴 독성 실험을 수행한 이정빈 가천대 의대 석좌교수. 이정빈 교수 제공
2016년 4월 발생한 남양주 니코틴 살인 사건에서 수사를 담당한 의정부지검 측 의뢰로 니코틴 독성 실험을 수행한 이정빈 가천대 의대 석좌교수. 이정빈 교수 제공

이 교수는 서울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개를 대상으로 니코틴의 유독성을 검증했다. 저농도의 니코틴을 먹었을 때는 개도 단지 구토 증세만 보였다. 하지만 고농도의 니코틴을 투입하자 개는 2~3분 새 경련을 일으키며 바로 사망했다. 고농도의 니코틴을 먹였을 경우 구토 같은 거부 증상 없이도 바로 사망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어 사망 후 시간 경과에 따라 니코틴 농도가 달라진다는 ‘재분포 현상’을 관찰, 이를 근거로 역산해보면 사망 당시 피해자의 혈액 내 니코틴 농도가 ℓ당 7.58㎎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했다. 이는 니코틴 치사농도로 학계에 보고된 ℓ당 3.7~5800㎎ 범위 안에 포함되는 수치다. 2심 재판부는 이러한 이 교수의 분석을 받아들여 “부검감정서상 부검의의 판단이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관련-5.18당시 공수부대가 주둔했던 광주시 동구 지원동 주남마을 뒷산에서 발굴한 유골을 1989년 1월 이정빈 교수가 검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5.18광주민주화운동관련-5.18당시 공수부대가 주둔했던 광주시 동구 지원동 주남마을 뒷산에서 발굴한 유골을 1989년 1월 이정빈 교수가 검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교수는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니코틴 원액이 정말 구토를 유발할 정도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물 1ℓ에다 니코틴 원액 13㎖를 탄 뒤 이쑤시개 끝에 ‘콕’ 찍어다 혀에 갖다 댔다. 살짝 갖다 댔을 뿐인데도 강한 자극이 느껴졌다. 니코틴에 닿은 혀는 타는 듯 했고 침이 줄줄 흐르며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감정 결과에 대해 “니코틴 원액은 구토 현상 때문에 살인 도구가 될 수 없다는 통념을 바꿨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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