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24시] 미국 여자축구팀, 오만함일까 당당함일까

입력
2019.07.07 17:00
수정
2019.07.07 23:1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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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열린 미국과 영국간 여자월드컵 준결승에서 골을 넣은 미국의 알렉스 모건이 차를 마시는 세리머니를 펼쳐 논란을 낳았다. AP 연합뉴스
지난 2일 열린 미국과 영국간 여자월드컵 준결승에서 골을 넣은 미국의 알렉스 모건이 차를 마시는 세리머니를 펼쳐 논란을 낳았다. AP 연합뉴스

최근 영국을 꺾고 2019 여자월드컵 결승에 3회 연속 진출하는 쾌거를 올린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을 두고 정작 미국 내에선 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대팀을 비하하는 듯한 골 세리머니에다 일부 선수가 국가를 부르지 않아 ‘오만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하지만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듯 다른 한쪽에선 여성 축구 선수들의 거리낌 없는 당당한 태도를 지지하는 폭발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영국과의 준결승에서 골을 넣은 알렉스 모건은 차를 홀짝 마시는 세리머니를 펼쳐 구설수를 낳았다. 차를 즐겨 마시는 영국 문화를 비꼰 것으로 해석돼 상대팀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4일이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보니 미국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 보스턴 티파티를 상기시킨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차를 마시는 것이 뒷담화를 나눈다는 의미도 있어 미국 대표팀에 쏟아지는 뒷말을 조롱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미국 대표팀은 월드컵 우승 3회의 세계 최강팀답게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태국에 13 대 0의 대승을 거뒀으나 골마다 과도한 세리머니를 펼쳐 논란을 불렀다. 이후 칠레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칼리 로이드 선수는 축구장에 어울리지 않는, 살짝 손뼉만 치는 정중한 모습의 ‘골프 박수’ 세리머니를 펼쳤다. 예의 없는 세리머니를 펼친다는 비판을 조롱한 면도 없지 않다. 세리머니 논란에 대해 모건은 “스포츠에서 여성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우리의 성공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하는데 큰 대회에서 남성 선수들이 어떻게 축하하는지 보라”고 반박했다.

미 대표팀에 대한 뒷말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장인 메건 라피노는 월드컵 내내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국가를 부르지 않고 손도 가슴에 올리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인종차별에 항의해 국가 연주 동안 무릎을 꿇은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에게 연대감을 표해 무릎을 꿇었던 그는 미국 축구협회가 모든 선수의 기립을 의무화하자 이 같은 행동으로 대응한 것이다. 라피노는 “월드컵에서 우승하더라도 백악관에 가지 않을 것”이란 인터뷰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도 설전을 벌였다.

앞서 미국 여성 대표팀은 지난 3월 남성 대표팀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며 미국 축구협회를 상대로 소송도 제기했다. 미 축구협회와 대표팀은 월드컵 이후 처우에 대해 조정을 하기로 한 상태다. 라피노는 6일에는 남녀 월드컵 상금이 크게 차이가 나 공평하지 못하다며 국제축구연맹(FIFA)에도 불만을 표출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여성 축구대표팀의 인기는 더욱 치솟아 대표팀 셔츠가 최고 인기 품목이 됐고 미 스포츠 방송매체 ESPN이 앞으로 미국 여성 축구리그 경기를 생중계하기로 발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1998년 여자월드컵 우승 멤버인 줄리 파우디는 WSJ에 “우리는 당시 문제를 피해 다니는 얌전한 소녀들이었다”라며 “지금의 대표팀은 우리가 건드리지 못했던 부분에서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너무 사랑스럽다”고 찬사를 보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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