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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집 공간 사람’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강원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동갑내기 부부의 집은 밖에서는 쉽게 마당으로 들어갈 수 없다. 오가는 이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해 3m 높이의 낮고 완만한 지붕을 올렸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때로 강렬하게 원하면 전에 없던 용기가 생긴다. 부산에 살던 불혹을 앞둔 동갑내기 남동혁(39)ㆍ박현주 부부는 ‘전원주택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정든 고향에서 300㎞ 떨어진 강원 강릉시에 지난해 4월 정착했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3년 전 박씨의 부모가 먼저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부모님 집 창밖으로 펼쳐진 자연 풍경이 계속 떠올랐다”고 했다. 그 옆에 집을 지었고, 직장을 옮겼고, 아이(8)도 전학했다. 대도시에서 산촌으로 삶의 터전이 바뀌면서 세 식구의 삶도 달라졌다. 단적인 예로 눈뜨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수직 하강했던 출근길은 처마에 맺힌 빗방울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는 출근길로 바뀌었다. 커튼이 쳐진 셔틀버스를 탔던 아이는 매일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논밭을 지나 학교로 향한다. 부부는 “원했던 삶이지만 불편할 게 많을 거라고 각오했는데, 이렇게 삶이 풍요로워질 줄은 몰랐다”고 지난 1년을 회고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각형 대지에 C자 형으로 얹어진 주택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80㎝의 단 덕분에 입구에서 낮고 완만하게 뻗은 지붕 곡선을 감상하게 된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낮고 완만한 지붕의 C자 형 주택

강릉 시내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부부의 단층집이 있다. 널찍한 앞마당 대신 안으로 말리듯 둥근 회색 벽돌집이 예상을 깨고 나타난다. 건축주는 “자연에 우뚝 솟아오르는 것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땅과 가까운 단층집에 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얇은 나뭇살 현관을 들어서면 돌이 깔린 타원형 마당이 객을 맞는다. 80㎝ 높이의 단이 마당을 가로지른다. 단은 선뜻 내부로 들어설 수 없는 위계를 드러낸다.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전원주택의 특성상 주거 공간이 쉽게 침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했던 건축주가 가장 우려했던 안전 문제를 건축적으로 풀었다. 설계를 맡은 고영성ㆍ이성범(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는 “마당에 단차를 두면 심리적으로 경계감이 든다”며 “폐쇄적이지 않으면서도 보호받는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하늘을 배경 삼아 낮고 둥글게 이어지는 지붕 곡선이 아름답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마당을 감싸듯 집은 C자 형으로 놓여 있다. 오각형 대지 형태에 반듯한 직사각형 건물을 두면 마당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 곡선 형태로 한계를 보완했다. 한쪽은 부모의 집과 연결되도록 살짝 열어 뒀다. 마당에 서면 낮고 완만한 지붕이 편안하게 펼쳐진다. 지붕은 밖에서보다 마당에서 더 잘 보인다. 고 소장은 “길과 마주한 주택 앞이 높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위화감이 든다”며 “앞쪽 지붕은 최대한 낮게 하고, 뒤쪽 지붕은 마당 단차에 맞춰 살짝 높였다”고 말했다. 별채가 있는 앞쪽 지붕은 높이가 3m, 중정 너머 본채가 있는 뒤쪽 지붕은 5m다.

한옥을 닮은 서까래는 지붕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한옥에 살기는 부담스럽지만 한옥 느낌을 원했던 건축주의 요구에 맞춰 한옥의 아름다운 서까래를 지붕 아래에 숨겨 놨다. 서까래 아래에는 작은 툇마루도 내어 자연스럽게 마당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고 소장은 “각 공간이 분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각 공간에서 언제든지 시선이 교차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강원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의 주택의 중심은 주방이다. 집의 형태에 따라 주방도 둥글게 휘어진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주방을 중심으로 펼쳐진 입체적인 공간

별채와 마당을 지나 본채로 들어서면 두 면이 통창이다. 현관 정면 창 너머로 주방이 보인다. 주방에서는 누가 오는지 볼 수 있고, 집에 들어서는 이는 지붕의 서까래와 마당을 볼 수 있다. 그 사이로 시선도 오간다. 현관 왼편에는 손님방과 화장실이 있다. 세 식구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은 현관 오른쪽, 집의 가장 넓은 공간인 주방이다. 주방이 집의 중심이었으면 하는 부부의 요구에 따라 건축가는 주방을 중심으로 공간을 배치했다. 고 소장은 “작은 집일수록 주방을 입구 쪽에 두고 사적인 공간인 침실은 뒤로 배치해야 손님들이 와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마의 선처럼 주방도 둥그스름하게 휘어져 있다. 뒤쪽 벽에 싱크대를 두고 앞쪽으로 같은 선형의 테이블을 맞췄다. 마당과 연결되는 앞쪽은 소극장 객석처럼 단차를 두어 앉을 수 있게 만들었다. 주방은 마당의 높이보다 1m가량 낮다. 마당과 잘 연결되면서도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아래로 단을 내렸다. 주방에 서면 마당 너머 집 입구에 들어서는 이와 시선이 마주한다. 날이 좋아 주방 앞 유리문을 활짝 걷으면 하늘이 안으로 쏟아질 듯 들어온다.

주방 위에 마련된 다락 같은 거실 천장은 지붕 형태 그대로 사선으로 퍼진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건축가의 비범한 아이디어는 주방 위 공간을 살려낸다. 거실에서 TV를 보는 걸 꺼려했던 부부는 건축가에게 거실을 없애거나, 최소한의 공간으로 설계해 달라고 요구했다. 건축가는 거실을 주방 위에 뒀다. 집에 들어와 반층을 내려가면 주방, 반층을 오르면 거실인 셈이다. 지붕과의 높이가 2m인 다락 같은 거실이다. 고 소장은 “작더라도 거실을 만들고 싶었다”며 “하나의 독립된 공간이면서도 주방과 연결돼 있고, 구분된 듯 구분이 안 된 공간이어서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부부의 딸과 그의 친구들은 거실에서 주방으로 실 달린 인형을 내려 인형극을 하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공간을 자유롭게 탐험한다. 주방을 지나 집의 끝부분에는 부부의 방과 자녀의 방, 화장실이 삼각형을 이루며 있다. 부부의 방의 둥근 벽을 따라 창이 작고 길게 나 있다. 건축주는 “살아 보니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며 “침대에 걸터앉아 창을 보면 지붕 처마와 마당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주방의 긴 창으로는 꽃과 돌의 풍경이 그림처럼 틀에 맞게 담긴다”고 했다. 별채 창으로는 들판과 산이 액자처럼 걸린다.

세 식구는 집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낸다. 요리하고, 식사하고, 대화하고, 뛰어 노는 세 식구의 공용 공간이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건축면적이 155.25㎡(47평)로 전원주택 치고는 작지만 입체적이다. 지붕선과 공간의 단차 덕분이다. 곳곳이 볼거리이고 놀거리이다. 세 식구의 삶도 다채롭다. 꽃을 심고, 요리하고, 자연을 감상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아이도 친구들과 산수유 따러 가고, 닭을 키우고, 땅을 파서 벌레를 관찰하느라 숨 가쁜 하루를 보낸다. 캠핑을 즐겼던 부부는 이제 캠핑을 하지 않는다. 집이 캠핑을 대체한다. “집 곳곳에서 자연을 누리다 보면 바깥에서 부대끼고 지쳤던 마음이 좀 가라앉아요. 아이도 마찬가지죠.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더라도 집에 돌아와 뛰놀다 보면 싹 잊어 버려요. 집이 원래 그런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강원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자리한 주택은 열린 듯 닫힌 공간이다. 외부의 간섭은 줄이면서도 안팎으로 연결되는 공간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강릉=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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