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세심한 맛] 4인분 레시피로 2인분 만들면 왜 맛이 떨어질까

입력
2019.07.06 04:40
15면
같은 레시피라도 만드는 이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지만 본격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다면 레시피가 반드시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같은 레시피라도 만드는 이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지만 본격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다면 레시피가 반드시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40회를 맞아 레시피에 대해 살펴보자. 대체 레시피란 무엇인가. 정의를 내리자면 ’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절차가 담긴 글’인데, 이런 정의 탓에 많은 이들이 레시피를 오해한다. ‘사람마다 만드는 방식이 다 다를 수 있는데 어떻게 레시피로 특정하려 드는가’라는 논리를 앞세운다. 미국의 요리 연구가 마이클 룰먼은 레시피를 고전 음악의 악보에 비유함으로써 오해에 화답한다. ‘선율, 리듬, 표현 등 연주에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지만 같은 악보를 가지고도 연주자마다 얼마든지 다른 해석을 이끌어 낸다. 레시피도 그렇게 이해하는 게 좋다’라는 것이다. 

굳이 첨언하자면 사실 연주에 쓰이기 이전에 악보는 이미 기록물로서의 의미를 품고 있다. 만약 당대의 음악인이 문서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녹음 기술 같은 게 전혀 없었던 몇 백년 전의 음악이 어떻게 현재까지 전수될 수 있을까. 레시피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로마의 레시피 모음집인 ‘아피키우스(apicius)’는 전체가 전해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요리책으로, 기원이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따라서 음식을 만들지 않더라도 기록이 남지 않았다면 당대의 음식 문화를 파악하기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레시피와 손맛이 대립되는 개념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곰곰이 살펴보면 사실 손맛조차 아직 ‘글로 남겨지지 않은 레시피’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레시피는 출처에 상관 없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준다. ‘물에 담그면 불어 커지는 줄 모르고 미역 한 봉지를 전부 국에 넣었더니 끓으면서 바다괴물처럼 꾸물꾸물 냄비 밖으로 탈출했다’는 요리 초보의 참사 같은 건 레시피로 막을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요리든 조리든, 본격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다면 레시피가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레시피 찾기 및 활용 요령을 최대한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요즘에는 다양한 인터넷 요리 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이 개설돼 있어 레시피를 찾기 쉽지만 유료 콘텐츠일수록 내용이 알차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에는 다양한 인터넷 요리 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이 개설돼 있어 레시피를 찾기 쉽지만 유료 콘텐츠일수록 내용이 알차다. 게티이미지뱅크

◇좋은 레시피의 자격

실패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주는 레시피가 좋다. 설명이 자세한 레시피를 의미하는 것인가. 조금 다르다. 경력자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경험이 적은 조리 주체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미리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놓아 실패의 가능성을 줄여주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성공의 길을 걷게 해 주는 레시피가 좋은 것이다. 이런 레시피는 대체로 유료 컨텐츠이다. 이유가 뭘까. 정보가 넘치는 인터넷 시대에 일단 한 번 걸러주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레시피 쓰기는 과학 실험과도 비슷해서, 변수를 조정해가며 조리를 되풀이해 최선의 결과를 내는 법을 기록한다. 전문가가 펴낸 요리책은 요리팀이나 독자 모임 등을 동원해 이 과정을 진행하고, 노동의 대가가 책값에 반영된다. 

◇손맛 품은 종이책

책 이상으로 좋은 앱이나 유료 웹 콘텐츠도 많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책, 특히 종이책만이 지닌 물리적인 느낌 혹은 ‘손맛’이 없다. 조리 초기에는 결과인 음식만큼이나 동기와 의욕을 북돋워 줄 매개체가 필요한데, 대체로 만듦새가 좋고 이미지를 비롯한 편집이나 디자인의 상태가 좋아 굳이 당장 음식을 만들지 않더라도 계속 넘겨 보고 싶은 책, 한 번쯤 따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책이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 한 달에 한 권 정도, 책을 조금씩 모은다는 기분으로 레시피에 접근해도 좋다. 전자책의 시대에 요리책은 종이책 사기가 뿌듯한, 얼마 안 남은 예외이다.  

이왕이면 종이로 된 요리책의 레시피가 검증됐을 확률이 높고, 글과 사진이 균형을 이룬 책이 요리에 도움이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왕이면 종이로 된 요리책의 레시피가 검증됐을 확률이 높고, 글과 사진이 균형을 이룬 책이 요리에 도움이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글과 사진의 균형

조리예를 담은 사진이 많은 책일 수록 좋고 또한 요리에 도움이 될까. 딱 잘라 답을 내기에는 조금 미묘하다. 사진은 레시피를 따르는데 확실히 도움을 준다. 특히 낯선 음식의 조리에 도전한다면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열 줄의 설명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요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글의 자리를 사진이 빼앗은 책이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름다운 음식 사진 위주로 채워져 있는 만큼 레시피에는 인색한 책 말이다. 소위 ‘커피 테이블 북’이라 일컫는, 탁자 위에 펼쳐 놓고 종종 넘겨보는 두꺼운 양장본이 이런 부류이다. 같은 요리책의 범주 안에 들지만 용도가 다를 수 있으니 초기에는 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글과 사진이 균형을 적당히 이룬 책을 고른다. 

◇설명이 간략한 레시피

레시피 자체보다 설명이 더 길게 딸려오는 경우도 많다. 재료의 선정 및 계량부터 조리의 각 단계까지 모든 의사결정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이 하는 지극히 학구적인 요리책 말이다.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이지만 근면하게 따라 읽다 보면 ‘대체 진짜 요리는 언제 하라는 거냐’는 회의가 들 수 있다. 따라서 일단 설명이 간략하게 딸린 레시피를 찾는다. 조리의 원리와 과정에서 유의할 사항에 대해 언급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어원이나 역사 같은 문화적인 요소는 양념 같아서, 알면 좋지만 몰라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무게나 부피 단위로 재료의 정확한 양을 표현한 레시피가 좋은 레시피다. 게티이미지뱅크
무게나 부피 단위로 재료의 정확한 양을 표현한 레시피가 좋은 레시피다. 게티이미지뱅크

◇정확한 계량이 딸린 재료의 목록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필요한 재료를 빠짐 없이, 특히 종류나 조리의 순서대로 나열하고 소금, 후추 등 조미료를 제외한 재료를 무게나 부피 단위로 정확하게 표기했는지 확인한다. 미국 같은 경우는 파운드나 갤런 등을 무게와 부피의 단위로 삼으므로 그 자체도 계랑은 가능하지만 번거로운 한편, 아예 계량컵 단위로만 표기한 레시피도 많다. 더 정확한 계량을 담은 같은 음식의 레시피를 찾을 수 있으니 이런 경우는 일단 피한다. 

◇결과물의 양

레시피는 완성된 음식의 양을 밝혀야 한다. 많은 경우 4인분 기준이고, 6~8인분인 경우도 있다. 결과물의 양을 파악하고 조리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에 따라 임의로 레시피의 총량을 조절할 경우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 또한 이해한다. 요리는 2인분만 필요한데 레시피는 4인분용 밖에 없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4인분용 레시피의 재료량을 절반으로 나눠 음식을 만든다고 해서 똑같은 맛의 2인분 음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식재료 전체를 하나의 계라고 본다면, 부피 및 무게가 달라지므로 열과의 접촉 등 조리 전반의 절차에서 반응 속도 등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같은 조건의 불과 팬으로 불고기 2인분과 4인분을 굽는다면 양이 적은 전자가 더 빨리 익는다. 그런데 레시피만을 따라 4인분의 시간만큼 굽는다면 너무 익어 맛이 떨어질 수 있다. 간도 마찬가지이다. 4인분 레시피의 양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소금이나 간장 같은 조미료를 정확히 절반으로 줄이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2인분의 레시피를 두 배로 늘려서 4인분으로 만들면 짜거나 싱거워질 수 있다. 라면도 봉지의 뒷면을 살펴 보면 개수를 늘릴 수록 물의 양을 줄이라고, 수치와 함께 안내한다. 따라서 요리의 양에 따라 단순 산술보다 실험을 바탕 삼은 별도의 계산 및 계량이 필요하다. 요즘은 1, 2인분에 특화된 레시피와 요리책도 많으니 계산은 유료 콘텐츠에 맡긴다. 

몇 인분의 요리를 하는지 정확하게 밝힌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해야 실패 확률이 적다. 게티이미지뱅크
몇 인분의 요리를 하는지 정확하게 밝힌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해야 실패 확률이 적다. 게티이미지뱅크

◇레시피 활용 요령

앞에서 언급한 마이클 룰먼은 ‘레시피는 조립 설명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화학 반응을 통해 맛이 결정되는 조리 과정을, 설명서를 보아 가며 가구 조립하듯 레시피를 읽으면서 동시에 따라 할 수 있을 거라 여기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레시피를 찾아 보는 시기와 요리를 시작하는 시기가 가까울수록 성공의 가능성도 낮아지니, 준비는 이를수록 좋다. 필요에 의해서든(손님 대접 등) 호기심에 이끌려서든, 음식을 만들 기회가 생겼다면 최대한 일찍 레시피를 찾는다. 그리고 식탁이든 책상이든 앉아서 일단 찬찬히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전체의 과정을 그려보는 시각화 과정을 거친다. 아예 노트를 마련해 레시피를 읽으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따로 요약해도 좋다. 

한편 레시피를 읽으며 본격적인 조리의 시작보다 훨씬 전에 준비할 거리가 없는지 살펴보고(고기를 24시간 전에 소금에 재운다거나, 버터를 2시간 전에 상온에 꺼내놓는 등의 일), 재료의 상황도 파악한다. 있는 재료로만 조리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미리 꼼꼼히 확인하고 보충을 위한 장보기 계획도 세운다. 원래 목적은 없는 재료의 확인이지만 그 과정에서 있는 재료의 현황 또한 덤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한 번의 장보기로 모든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훨씬 효율적이다. 

또한 모든 재료는 조리 시작 전에 손질을 마친다. 밀가루를 계량하고 계란을 깨어 그릇에 담고 파와 양파 같은 향신채를 다져 공기나 종지에 담는다. 일단 조리가 시작되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므로 재료를 효율적으로 손질하기가 어렵고, 최악의 경우 서두르다가 팬을 엎거나 칼을 떨어뜨리는 등 심각한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조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레시피를 따라 준비를 끝낸다. 

레시피를 읽으면서 요리를 하기보다 요리 전에 레시피를 미리 숙지하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레시피를 읽으면서 요리를 하기보다 요리 전에 레시피를 미리 숙지하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행간 읽기와 반복

레시피에는 최대한의 조리 정보가 담겨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빠지는 게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행간 읽기’가 필요하다. 특히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조리 일반에 대한 내용이 그렇다. ‘식용유를 둘러 중불에 달군 지름 20㎝의 팬에 밀가루를 두른 청어를 양면 모두 노릇하게, 3~4분간 굽는다’라는 레시피 한 줄을 예로 들어보자. 불의 세기부터 재료의 준비, 심지어 조리에 드는 시간까지 명기하고 있는 반면, ‘노릇하게’라는 형용사는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다가올 수 있다. 정확하게 어떤 상태가 노릇한 것인가? 일단 상식 속에서 답을 찾아본다. 직접 굽거나 사먹었거나, 예전의 경험에서 생선은 어떤 상태였는가. 그래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면 인터넷을 활용한다. 구글이나 유튜브 등을 검색해 같거나 비슷한 음식의 조리 사진이나 영상을 참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습이 중요하다. 안 그런 분야가 있겠느냐만, 음식과 요리에서도 반복이 필수이다. 레시피는 파면 팔 수록 새로운 정보가 드러나고, 음식은 만들면 만들수록 이해가 깊어진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에 상관 없이 다음 기회에 똑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 본다. 똑같은 레시피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조리를 마치고 앞에서 언급한 나만의 레시피 노트에 찬찬히 복기해보는 것도 좋다. 결과는 예전보다 좋았는가, 나빴는가. 레시피의 흐름을 따른 가운데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 다음에는 또 어떤 변화를 시도하겠는가. 이런 항목에 간단히, 한두 줄로만 기록을 남겨 놓으면 당장 내일이 아니더라도 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 때 도움이 된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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