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아는 엄마 기자] “이번 열차는 화성행 열차입니다. 탑승권을 클릭하세요”

입력
2019.07.06 09:00
수정
2019.07.06 09:49
17면
구독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마스 2020 로버’ 사이트 캡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마스 2020 로버’ 사이트 캡쳐.

얼마 전 아이와 함께 외출했다 깜깜해진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다 말고 아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 같이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 하나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집집마다 밝힌 조명들이 창문으로 환히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도 그 별은 또렷하게 보였다. 저게 무슨 별이냐는 아이의 질문에 망설이다가, 확실하진 않지만 ‘여름철 대삼각형’ 별자리 중 하나가 아닐까, 했다.

미국 동부 해안가 고층 건물이 없는 작은 도시에 살던 1년여 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대표적인 별자리를 찾으러 아이와 함께 한밤중에 집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여름철 대삼각형을 만드는 3가지 별 거문고자리의 ‘베가’, 백조자리의 ‘데네브’,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각각 어떤 건지 별자리 지도를 보며 아이와 하나하나 찾아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는 최근 학교 과학 시간에 태양계와 별에 대해 배웠다. 계절마다 어떤 별자리가 있고, 이름 있는 별들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공부하면서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학교 들어가기 전 한 천체관측 행사에 참가해 마치 밝은 별처럼 보이는 국제우주정거장을 관측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그리고 급기야, 우주로 발사되는 로켓에 사람이 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며칠 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퇴근한 뒤 아이와 컴퓨터를 켜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마스 2020 로버’ 사이트에 접속했다. 마스 2020 로버는 NASA가 내년 7월 17일부터 8월 5일 사이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카나베랄 공군기지에서 쏘아 올릴 화성 탐사선이다. 2021년 2월 화성의 제제로 크레이터에 착륙해 화성 시간으로 1년(지구 시간으로 약 687일)간 머물게 된다. 화성 표면에서 물과 미생물이 존재하는 흔적을 찾고, 이산화탄소 위주인 화성 대기를 이용해 산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시험하는 게 주요 임무다. 인간이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NASA는 마스 2020 로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화성으로 가는 ‘이름 탑승권’을 발급해주는 것이다. 홈페이지에 이름과 국적을 입력하고 신청하면 누구나 화성행 이름 탑승권을 받을 수 있다. NASA는 탑승권을 받은 이들의 이름을 미세한 실리콘칩에 새겨 넣은 다음 마스 2020 로버에 실어 보낼 예정이다.

마스 2020 로버에 탑승할 ‘이름’은 4일 현재 총 750만4,064명에 달한다. 이들의 국적은 터키가 248만7,017명으로 가장 많고, 인도(88만9,219명), 미국(81만7,985명), 중국(20만1,545명), 이스라엘(19만4,903명)이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인은 17만7,203명으로 6위를 달리는 중이다. 과학계는 이번 이름 탑승권 신청자 수가 곧 우주기술에 대한 그 나라의 관심도나 자부심을 보여준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선 터키의 압도적인 1위가 의아할 수 있다. 마스 2020 로버의 로봇팔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들을 미국에 본사를 둔 한 터키 업체가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이번 화성행 프로젝트에 터키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늘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은 화성 탐사 계획을 착착 준비 중이고, 이스라엘 역시 사막에 행성 탐사 환경을 만들어 실험하는 등 우주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형 발사체와 달 탐사 계획 등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아이 컴퓨터에는 NASA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가족들의 화성행 이름 탑승권이 저장돼 있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이면 자신의 이름이 화성에 도착하게 될 거라는 예상에 아이는 잔뜩 들떴다. 마스 2020 로버 개발 과정과 이전 화성 탐사선들의 성과에도 관심이 부쩍 늘었다. 학교 국어 시간 평가로 제출한 기행문에 아이는 우리 가족의 다음 해외 여행지는 화성이라고 썼다. 그리고 반 친구들에게도 탑승권을 신청하라고 설득하기로 했다.

NASA의 이름 탑승권 이벤트는 우주기술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장기적인 투자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미국의 우주개발 전략이 부러울 따름이다. 화성행 이름 탑승권 신청은 미국 동부시간으로 오는 9월 30일 오후 11시 59분 마감된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