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우리는 ‘원팀’이 돼야 한다

입력
2019.07.03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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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보복 철저히 준비한 일본

내부 총질과 적전 분열은 백해무익

정재계, 국민 ‘원팀’ 돼 위기 극복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를 교환한 뒤 이동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를 교환한 뒤 이동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올 것이 왔다. 일본 정부가 4일부터 반도체 생산에 필수 소재인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제한 강화 규정을 시행한다. 그동안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이던 3개 품목을 계약 건당 허가가 필요한 심사 대상으로 전환, 한국 수출을 막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속내다. 반도체와 TV, 스마트폰을 만들 때 꼭 필요한 3개 품목은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최대 90%에 달해 규제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일 관계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위기에 처했다.

일본의 조치는 명백한 경제 보복으로 무역전쟁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수출 규정을 바꾼 배경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양국 간 신뢰 관계가 현저하게 훼손됐다”는 이유를 대 한국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드러냈다. 사실상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을 밝히자 곧바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WTO 규칙에 맞다”고 반박하고 나선 대목에선 치밀하게 준비된 행보라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참석했는데도 회담 대신 ‘8초 악수’로 푸대접을 한 뒤 행사가 끝나자 즉시 보복 조치를 내놨다. 기습 선제 공격에 이어 후속 보복카드도 여럿 마련돼 있다는 관측이 많다.

전쟁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이다. 아무리 일방적인 싸움이라 해도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아군의 피해를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영원한 맞수인 한일 간 전쟁은 사활을 건 대결일 수밖에 없어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흥분하기보다는 냉정하게 대응하며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사태가 더 악화하는 것을 막고 한일 관계를 다시 정상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이겨야 한다. 최소한 지지는 말아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이번 무역전쟁을 결행하면서 꽤나 치밀한 준비와 국제법 검토,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한 정황이 포착된다. 우리 정부의 WTO 제소 추진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아베 총리의 즉각적인 반응만 봐도 그렇다. 21일 참의원 선거용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우리 정부는 아베 총리의 성향이나 일본 정부의 자세로 봐서 장기전을 염두에 둔 도발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일본 측의 반발을 예상했겠지만 무역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강하게 나오리라고 예측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측의 강한 공세에 비해 청와대나 정부가 저강도 대응을 하며 암중모색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렇다.

우리로선 쉽지 않은 싸움이다. 그럼에도 명분은 우리에게 있고, 일본 정부의 대응이 과하다는 점에서 국제 여론, 심지어 상당수 일본 언론의 분위기도 비판적이다.

문제는 일격을 맞은 우리의 대응이다. 지금은 우리 정부의 잘잘못과 안일함을 탓하며, 적전 분열을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어떻게 맞설 것인지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 기업과 국민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달 전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보라. U-20 대표팀이 한일전 승리에 이어 결승까지 올라 준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선수들이 서로 경쟁하고 남 탓하는 대신 배려하고 힘을 불어넣어 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지난번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에서 극적 역전승을 거둔 경험을 살려 정부는 WTO를 비롯한 외교 무대에서 필승 전략을 짜야 한다.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 기업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의 총력 지원도 절실하다. 정부의 외면 속에 사드 보복의 후폭풍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롯데처럼, 특정 기업이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정부가 든든한 뒷배가 돼야 한다. U-20 대표팀 같은 ‘원팀’만이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

박일근 뉴스2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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