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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이란 담간(Damghan) 외곽의 여름 궁전과 소금 사막
이란 북동부 담간 인근의 바답 술트. 6,500만년의 시간이 축적된 테라스 지층에 햇빛이 진주처럼 반짝인다.

담간의 첫인상이 ‘사막 같다’고 한 건 잘못 짚은 게 아니었다. 이란 땅의 대부분이 고원이요, 그 첫 무대에는 어김없이 사막이 펼쳐진다. 무탈하게 담간의 지질 시대로 여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인터넷 접속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때 등장한 구세주가 모함마드다. 테헤란 시내에서 큰 소리로 부르면 절반 이상은 뒤돌아볼 것 같은, 한국으로 치면 ‘철수’쯤 되는 이름이다. 그는 담간과 풋사랑에 빠진 로컬 가이드이자 암벽 등반가다. 자연 지식과 고대 역사를 두루 꿰고 있는 사람을 인솔자로 세웠으니 이제야 안심이다.

왕의 피서지였던 체슈메흐 알리. 싱싱한 플라타너스 그늘이 기온을 3도 가량 끌어내린다.

차는 담간의 북서쪽으로 향했다. 눈앞 풍경이 순식간에 모래 색으로 변했다. 바람이 조각한 드라마틱한 암벽 사이로 아스팔트 도로가 길게 펼쳐진다. 목적지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담간 시내에서 23km 떨어진 체슈메흐 알리(Cheshmeh Ali)는 카자르시대의 왕 아가 모함마드 칸(Agha Mohammad Khani)의 여름 궁전이다. 400년이 넘은 세월을 견뎌온 플라타너스가 그늘을 드리우며 길을 안내한다. 호수의 끝과 끝을 연결한 궁전 건축물이 따가운 햇살을 막아준다. 갑작스러운 초록빛 물결에 바람마저 시원하다. 바짝 마른 입가도 제법 촉촉해졌다.

이란에서는 같은 지명도 영어표기가 제각각이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때 비슷하게 발음되는 알파벳을 다 입력해봐야 한다. 공식 지명이 바답 술트(Badab Sourt)지만 왼쪽 이정표에는 ‘바답’이 빠져 있다. 구글맵은 ‘Badab-e surt’로 표기하고 있다.
바답 술트로 안내할 전용차. 4명에 800리알(약 6,200원)을 지불했다. 가격 협상은 지혜롭게, 웃음이 무기다.
‘쿠션감 제로’인 차량 안장. 엉덩이가 무사할 지 걱정이다.

여름 궁전을 나와 일행을 태운 차는 달그락거리는 모래와 뒤엉키며 나아간다. 드문드문 채도 낮은 사막 식물이 보이고 붉게 그을린 것 같은 암벽이 시야를 채워 간다. 색이 명징해질 때쯤 ‘술트 샘(sourt spring)’으로 가는 이정표로 방향을 틀었다. 비포장도로다. 놀이기구가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덜컹댄다. 엉덩이의 고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식 명칭 ‘바답 술트 천연 샘(Badab Sourt Natural Spring)’은 해발 1,814m 산 중턱에 있다. 샘의 기원은 약 6,5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지질의 역사로 따지면 덩치 큰 공룡이 멸종하고 원시적인 포유류의 분화가 시작되는 팔레오세(Paleocene epoch) 때다. 그 까마득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선택은 두 가지. 뙤약볕 아래에서 30분 넘게 산행을 하든지 화물차의 짐칸에 실려 오르든지 해야 한다. 그래도 걷기보다 화물차가 낫겠다 싶었지만, 아서라! 쓰지 않던 허벅지 근육까지 탈탈 털렸다. 차라리 걸을 걸 하고 후회할 때쯤 화물차의 굉음이 멎었다. 눈앞에 붉은 오렌지 빛 테라스 위로 진주알이 반짝거렸다. 바답 술트의 잘생긴 옆 선이다.

테라스 지층의 옆 선을 보며 정상으로 향한다.
붉은 지층과 맞은편 푸른 산의 색의 대비가 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정상을 넘어 하행하면 낯선 행성에 착륙한 듯한 생경하다.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광천수.
퇴적암 사이로 알알이 박힌 진주알은 태양의 선물이다.

“맨발로 한 번 거닐어 봐. 류머티즘이나 피부병을 치료하는데 효능이 있거든.” 가이드 모함마드 선생의 귀띔에 신발을 벗어 든다. 바답 술트는 오랜 세월이 빚은 광천수 테라스다. 풍경은 미스터리 같지만 과학으로 형성된 지형이다. 뜨거운 광천수가 냉각되고 산 중턱의 탄산염이 퇴적되면서 특유의 핏빛 바다를 토해낸다. 낙엽이 차곡차곡 쌓인 듯, 용암처럼 흘러내린 퇴적 풍경이 이어진다. 한 겹 한 겹 흘러내린 테라스마다 물기를 촉촉히 머금고 있다. 산화철이 많을수록 강렬한 구릿빛을 뽐낸다. 신비로움은 정상에서 정점을 찍는다. 반대편 푸른 능선과 대비를 이루며 짜릿하고 낯선 풍경을 연출한다. 따가운 햇빛은 광천수 물결 위에 진주알을 알알이 박는다. 눈이 시큰시큰하다. 물맛은 짜고 시었다.

하즈 알리골리 소금 호수. 비워내고 시작하는 게 때론 쉬워 보인다. 자연 앞에선.
소금 호수의 일몰. 시간에 쫓기기 보다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일몰은 언제나 옳다.

체슈메흐 알리 혹은 바답 술트로 담간 여행을 끝내면 아쉬움이 남는다. 담간 동남쪽 하즈 알리골리 소금 호수(Haj Aligholi Salt lake)를 더해야 한다. 6,541km²에 달하는 허허벌판 사막 속의 차디찬 오아시스다.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한 반영을 자랑하는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과는 느낌이 다르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호숫물만큼이나 잘박잘박 가슴에 젖어 드는 곳이다. 끝도 시작도 없는 무(無)를 맛본다. 뭔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뜨거운 태양이 소금 호수에 서서히 몸을 숨긴다. 오늘은 그렇게 또 다른 오늘에 바통을 넘겨주고 있었다.

※이란 담간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전천후 가이드 모함마드를 적극 추천한다(인스타그램 @masoudianmohammad).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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