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4) 인공지능 챗봇과 명상앱

인공지능 심리상담 챗봇 워봇(Woebot)은 사용자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상황에 맞춰 적절한 밈(meme)과 이모티콘을 사용해 대화를 이어간다. 워봇 애플리케이션 캡쳐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로 일하는 수전(가명ㆍ26)은 대학생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하지만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웃음을 되찾기 시작한 건 1년 전쯤 새 심리상담사를 만나면서다. 상담사는 매일 수전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 그날의 기분을 묻고 시의적절한 조언을 해줬다. 때로는 그저 친구처럼 밈(memeㆍ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재미있는 이미지)를 보내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수전의 우울증은 많이 나아졌고, 이제는 의욕적으로 창업준비를 하고 있다. 수전의 우울증을 치료해 준 상담사는 인공지능 챗봇 워봇(Woebot)이다. 수전은 “워봇 같은 서비스를 개발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토박이인 크리스(28)는 실리콘밸리에서 마케터로 경력을 쌓아왔다. 최근 블록체인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그는 한동안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고 한다. 생소한 분야라 공부할 것도 많고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때 머리 속에 언젠가 동료에게 들었던 자기계발 메시지 서비스 ‘샤인’이 떠올랐다. 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자 매일 출근길이나 일과 중 어김없이 메시지가 왔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맴돈다면 예전의 성과를 떠올려봐요’,‘사람은 각자 성장의 속도가 달라요’등 크리스는 “잊을만 하면 발송되는 긍정적 문장 덕택에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가 명상과 자기계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다. 2007년 구글이 처음 사내 명상을 도입한 게 시발로, 애플과 페이스북 등도 2010년대부터 꾸준히 명상가나 자기계발 전문가를 초청하고 있다. 2019년의 실리콘밸리에서도 이 열풍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방식은 사뭇 다르다. 이곳의 밀레니얼세대(Millennialsㆍ1981~1996년생)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통해 직접 자신의 마음에 접속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술발전이 일명 ‘나(Me)세대’인 밀레니얼의 ‘홀로(자기)계발’로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 심리상담 챗봇 워봇(Woebot)을 개발한 앨리슨 다아시 워봇랩 창업자겸 최고경영자(CEO). 워봇랩 제공

워봇이 이곳에서 유명인사라는 사실은 창업자인 워봇랩 최고경영자(CEO) 앨리슨 다아시를 만나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초 샌프란시스코의 한 로펌에서 열린 ‘정신건강 앱: 해결책인가 문제인가’ 토론회 중 앨리슨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수많은 관객들이 그에게 다가가 워봇의 효과에 대한 ‘간증’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워봇 덕에 창업 실패의 아픔을 달랬다”던가 “연인과 헤어진 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민 생활의 외로움을 견디는데 도움이 됐다”는 식이다.

워봇은 심리학의 인지행동치료(CBT)를 수행하는 챗봇이다. 심리학자인 앨리슨은 스탠퍼드대 박사 후 연구원 시절 보통사람들의 3분의 2가 시간과 비용 등의 이유로 심리상담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앨리슨은 인공지능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2016년 워봇을 세상에 내놓았다. “새벽1시에도 대화할 수 있는 ‘정신건강 구급상자’를 만들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용료도 현재는 무료다.

워봇은 챗봇에 친숙한 18~29세 청년층을 겨냥해 개발됐다. 그래서 워봇 역시 각종 이모티콘과 밈, 유머를 적절히 사용하며 밀레니얼의 말투로 대화를 한다. 그러나 대화 내용은 사뭇 진지하다. ‘네 생각 중 흑백논리인건 뭘까?’ ‘한 가지만 보고 모든걸 판단하는 건 아니지?’등의 질문으로 사용자가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스스로 되돌아보도록 돕는 식이다. 인기 비결은 워봇이 사용자의 답변에 따라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 물론 사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준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앨리슨은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땐 때론 비난을 받을까 두려울 수 있지만 워봇과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인간과 매주 200만건의 대화를 나누며 언어능력을 향상시켜 가는 워봇은 출시 약 2년만에 800만달러(약 95억원)의 투자를 받고 몸집을 키우고 있다. 더 큰 성과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랜딩에이아이 CEO 앤드류 응이 2017년부터 대표이사로 합류한 것이다. 인공지능 분야 세계적 석학이 워봇의 가능성을 인정했으니 흥행 보증수표를 얻은 셈이다.

명상 플랫폼 스타트업 ‘심플해빗’의 윤하 김 대표가 심플해빗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명상을 하고 있다. 심플해빗 제공

개인 맞춤형 자기계발 서비스는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명상앱 ‘심플해빗’은 밀레니얼 세대인 창업자 본인이 맞춤형 명상을 하기 위해 만든 앱이다. 윤하 김(29) 심플해빗 대표는 첫번째 창업인 스마트폰 광고애플리케이션 회사 ‘로켓’을 운영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 명상앱의 콘텐츠 숫자가 제한적이라 답답했다고 한다. 결국 여러 명상가가 만든 다양한 명상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상했다. 심플해빗에서는 ‘비행명상’ ‘휴가명상’ ‘육아명상’ 등 다양한 명상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콘텐츠 숫자보다 더 중요한 건 사용자 맞춤 추천이다. 김 대표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닥치게 되는데, 우리는 사용자들이 그동안 어떤 명상을 했고 어떤 검색을 했는지 정보를 분석해 적절한 명상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 출시된 심플해빗은 현재 사용자가 350만명에 달한다.

심플해빗 애플리케이션을 켜면 아침 또는 저녁, 통근시나 일할 때 등 다양한 상황에 들을 수 있는 사용자 맞춤형 명상 콘텐트를 이용할 수 있다. 심플해빗 애플리케이션 캡쳐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인 만큼 일각에서는 비판적 시선도 있다. ‘안 그래도 자기중심적인 밀레니얼세대가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만 빠져 타인과의 소통에는 소홀해지지 않겠냐’는 우려, ‘자신의 속마음은 인공지능에게만 털어놓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행복한 모습만 올리지 않겠냐’는 의심, 그리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내면적 소통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두려움 등이다.

앨리슨은 “이 같은 비판을 수도 없이 들었다”며 “워봇이 사람의 심리치료를 대체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워봇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라는 ‘실전’에서 더 잘 살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운동연습기구’”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런 우려를 알기에 마케팅용 챗봇에 비해 대화의 중독성도 약하게 설정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중요한 건 사용자가 얼마나 현명하게 쓰는가인 셈이다.

2016년부터 실리콘밸리서 눈에 띄기 시작한 자기계발ㆍ정신건강분야 테크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규모는 2017년 32억2,000만달러(3조7,500억원)에서 2018년 79억3,000만달러(약 9조2,300억원)로 2배 이상 급등했다. 벤처투자사인 화이트스타캐피탈은 “현재 성장중인 200여개의 정신건강 기술 스타트업 중 절반이 시드머니(창업 전 또는 창업직후 받는 초기투자) 단계이기 때문에 성장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샌프란시스코=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