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바넘 효과에 취한 사람들(7.5)

입력
2019.07.0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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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무수한 별들 중 어느 별의 한 때 기운이 인간의 성격 혹은 기질에 스며 운명을 좌우한다는 설은, 원시적 신비로 가득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서의 가치는 지닌다.
저 무수한 별들 중 어느 별의 한 때 기운이 인간의 성격 혹은 기질에 스며 운명을 좌우한다는 설은, 원시적 신비로 가득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서의 가치는 지닌다.

혈액형 성격 테스트나 별자리 운명론을 신뢰하면서도 과학에 대한 미련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은 그런 설명이 방대한 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경험적ㆍ통계학적 진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날 그 별자리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이들은, 수천 년 인류 역사를 되짚어 따져보면 공통의 기질을 지녔고, 유사한 인생 역정을 거치더라는 설이다. 물론 그 통계의 기초자료는 아직 누구도 제시한 바 없다.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자신의 성격, 혹은 운명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들이다. 부정적인 면들도 대체로 자신을 미화하는 알리바이가 된다. 가령 당신이 가난한 이유는 더 가난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천성 때문이고, 출세를 못한 이유는 불의에 타협하지 못하는 정의감 때문이라는 식이다. 원하는 것만 보고 듣고 믿으며, 그래서 잘 속는 그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 또는 포러 효과(Forer Effect)라 부른다. 바넘은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쇼맨 폴 바넘(P.T. Barnum, 1810.7.5~1891.4.7)을, 포러는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Bertram Forer, 1914~2000)의 이름이다.

바넘은 코네티컷 주 의원과 브리지포트란 도시의 시장을 역임했지만,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라는 유명 서커스 설립자이자 미국의 원조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더 유명하다. 그의 서커스는 ‘피지의 인어’ ‘171세의 마녀’ 같은 이른바 ‘프리크 쇼(freak show)’로 명성을 날렸다. 모두 조작된 가짜였고, 그는 조작을 위해 고문이라고 할 만한 가혹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돈벌이 수단에는 사람뿐 아니라 ‘기괴한’ 동물도 다수 동원됐다. “세상에는 언제나 속는 자들이 있기 마련(There’s a sucker born every minute)”이란 그가 남겼다는 말은, 실제로 그가 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누구보다 그의 좌우명으로 어울리는 말이었다. 포러는 1948년 일군의 제자들을 상대로 성격 테스트 실험, 즉 다수의 성격 묘사 항목을 주고 자기에게 해당하는 만큼 점수를 부여하는 실험을 한 결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지니는 성격적 특성을 ‘다소’나 ‘때로는’ 같은 애매한 수사를 써서 제시한 결과였다.

하지만 별자리나 혈액형의 운명론에 취한 이들은, 세상에 별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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