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결과 뻔한 국방부 北목선 셀프조사

입력
2019.06.30 18:30
수정
2019.06.30 18:4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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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영향 우려 軍 축소ᆞ은폐 의혹

진상 규명의 핵심은 靑 입김 작용 여부

국방부 셀프 조사만으로는 한계 분명해

지난 15일 오전 6시 50분, 삼척항 방파제에 북한 어선이 들어왔다는 신고에 삼척 파출소 경찰들이 목선을 타고 온 북한 주민들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5일 오전 6시 50분, 삼척항 방파제에 북한 어선이 들어왔다는 신고에 삼척 파출소 경찰들이 목선을 타고 온 북한 주민들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어쩌다 우리 군이 이 지경이 됐나’라는 말까지 나오는 북한 목선 노크 귀순과 군의 경계 실패는 냉정한 평가와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할 문제지만 핵심은 더 깊은 곳에 있다. 군의 치명적 실책이 드러나는 과정에 정말 청와대나 군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느냐, 혹은 가리려는 의도를 가졌느냐는 문제다.

국방부의 17일 발표 당시 군은 북한 목선이 기동으로 삼척항까지 들어온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 ‘삼척항 인근’이라는 두리뭉실한 표현을 사용했다. 경계 실패에 대한 축소 은폐 의혹을 받는 이유다. 청와대는 ‘인근’이라는 말이 군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고, 이미 해경에서는 ‘삼척항 방파제’라고 적시했기에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좌표’로 먹고 사는 군이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이 아니라 ‘삼척항 인근’으로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어떤 핑계를 대든 허무맹랑한 말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제 군 안팎의 전문가들 사이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 산하 부대 등에서 삼척항이나 삼척항 방파제로 상부에 보고한 마당에 군의 언론 발표가 이처럼 허술했다면 그 의도와 배경을 충분히 의심할만하다. 물론 국방부 발표 이틀 전 이루어진 해경의 삼척항 방파제 발표와 어긋나게 된 경위도 규명해야 할 쟁점이지만, 해안 경비를 책임진 양측의 손발이 맞지 않은 것을 두고 군의 축소 은폐 의도가 없었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보고 싶은 대로 해석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북한 목선의 남한행이나 선원 귀순 문제가 불거질 경우 북에 있는 가족들의 신변 우려가 있다는 청와대 설명 역시 군의 허술한 발표 배경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제는 탈북자들조차 탈북자 가족이라 해서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는 일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북한 당국의 대응도 변했다. 국제사회의 인권 압력과 탈북 러시에 따른 북한 당국의 고육책으로 보인다.

아무리 관계가 호전됐다 해도 여전히 군사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 상황에 비춰 경계 실패는 군의 치명적 실책이며 여기에 더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의도나 꼼수가 있었다면 특단의 조치와 문책이 불가피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계 실패 축소 은폐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군 뿐만 아니라 청와대로 쏠리는 데 있다. 이른바 군의 발표와 관련한 PG(언론 가이드라인), 즉 보도 지침은 청와대 조율 아래 이루어진 일이라 청와대의 개입 정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국방부의 북한 목선 관련 브리핑장 내 청와대 행정관의 배석은 축소 은폐 의혹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국방부와 큰 틀에서의 조율이 이루어졌다는 입장이지만 삼척항 인근 등 허술한 군 발표에 청와대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관여했는지가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외교안보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 참모의 지나친 관여는 갈등의 요인이 되곤 했다. 외교안보 관리들은 국제사회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남북관계 영향에만 노심초사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좁은 식견과 간섭에 불만을 가져왔다. 현실과 사실을 왜곡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걸로 봤고, 이들의 간섭을 ‘게슈타포’적 행동으로 여기는 고위 관료도 있었다. 물론 청와대 참모로서도 할 말이 없지 않겠지만, 관료의 전문성과 청와대 참모의 이념 지향성 간의 충돌이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참여정부 시절의 갈등을 언급하는 것은 북한 목선 노크 귀순 축소 은폐 의혹에도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한 청와대 참모나 안보실의 입김이 없었느냐는 의심 때문이다. 국방부의 언론 발표 다음날 있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질책이 단순 경계 실패에 국한한 건지, 축소 은폐 의혹까지 포괄한 건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청와대 안보실 관여 정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다면 의혹은 꼬리를 물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최고 권력기관까지 관여된 이 사안의 진상 규명이 국방부의 셀프 조사로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정진황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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