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송송커플의 우아한(?) 이별

입력
2019.06.27 18:00
30면
송중기, 송혜교 커플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방영된 이후 숱한 화제를 남기며 ‘송송커플’ 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송중기, 송혜교 커플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방영된 이후 숱한 화제를 남기며 ‘송송커플’ 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21년 일본을 흔든 ‘뱌쿠렌 사건’은 지금 시각에서 봐도 매우 진보적이다. 일왕의 사촌 누이이며 필명이 뱌쿠렌인 야나기하라 아키코가 쓴 배우자와의 절연장(絶緣狀)이 아사히 신문에 대서특필 된 것. “나는 금력을 가지고 여성의 인격적 존엄성을 무시하는 당신에게 영원한 결별을 고합니다. 나는 나의 개성의 자유와 존중을 보호하고 북돋우기 위해 당신 슬하를 떠납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었다. 그러자 남편인 탄광 부자 이토 단에몬이 네 차례에 걸쳐 반박문을 게재해 매스컴이 떠들썩했고, 이 사건은 소설로도 만들어졌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5년 12월 말 세계일보에 A4 3장 분량의 편지를 보내 기사화됐을 때 뱌쿠렌 사건이 떠올랐다. “자연인 최태원이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고 한다”며 새 동거녀 존재를 알리고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성격 차이로 이혼하려는 뜻을 밝힌 것은 우리 문화에서 퍽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뱌쿠렌 사건의 결말과 달리 노 관장은 “이혼은 하지 않겠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으며 가정을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이혼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당시 최 회장의 고백에 “조강지처를 버린 남자”라는 부정적 여론이 많았으나 두 사람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며 품위를 잃지 않아 오히려 안타깝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 간통죄가 폐지되고, 지난해 이혼이 10만건을 넘을 만큼 급증 추세지만 이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아직 호의적이지 않다. 서구 선진국들이 사실상 결혼 관계가 파탄 났으면 이혼을 인정하는 ‘파탄주의’를 택하는 것과 달리,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최근 법원이 배우 김민희씨와 연인 관계인 홍상수 영화감독이 부인을 상대로 낸 이혼청구 소송을 기각한 것도 유책주의 때문이다. 취업, 임금, 자녀 양육 등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됐다고 보기엔 미흡한 현실의 반영이다.

□ ‘송송커플’로 불린 한류스타 송중기, 송혜교 부부의 파경 소식이 안타깝지만 소송이 아닌 협의 이혼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성격 차이로 양측이 다름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발표는 ‘쿨’해 보인다. 지라시에 온갖 소문이 도는 모양이나 두 사람이 이미 원만한 합의를 봤다는 마당에 구구한 억측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차피 헤어질 상황이라면 우아한 이별이 낫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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