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 외교’ 손짓 이후 연일 담화 엄포… 냉온탕 오가는 北

입력
2019.06.27 18:16
수정
2019.06.27 20:3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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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처럼 외운다고 대화 되나” 외무성 등 명의로 연이틀 쓴소리

협상재개 저울질 속 몸값 올리기… 문 대통령 겨냥 “남측 참견 말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3일 홈페이지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3일 홈페이지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비핵화 협상 재개 가능성이 고조되는 국면에서 특유의 ‘강온 전략’을 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보내 협상에 나설 듯한 분위기를 풍기더니, 26일 외무성 명의 담화를 통해선 “대화 재개를 앵무새처럼 외워댄다고 조미(북미) 대화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고 쏘아붙였다. 미국을 향한 냉랭한 태도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한다면, 북한이 협상 재개를 저울질한다는 신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대화를 하려면 미국이 셈법부터 바꾸라’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7일 “미국이 말로는 조미 대화를 운운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우리를 반대하는 적대 행위들을 그 어느 때보다 가증스럽게 감행하고 있다”는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의 담화를 보도했다.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 행정명령을 1년 연장하고 북한 인권 문제를 부각하고 있다며 26일 “대조선(대북) 적대 행위의 극치”(외무성 대변인 담화)라고 비난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23일 관영 매체를 통해 공개하며 대화 분위기를 띄우던 것과 정반대의 분위기다.

북한이 외무성 담화로 연달아 대미 불만을 퍼붓는 건 협상 재개를 염두에 둔 힘겨루기 차원이라는 분석이 있다. ‘협상에 들어가기 전 몸값을 올리겠다’는 계산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등 빅이벤트 이후 국면에 대비해 북한의 입장이나 요구사항을 강하게 전달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대화 재개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대화 방식과 관련, 북한은 담화에서 북미 간 ‘톱다운(Top-down) 담판’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26일 담화에서 “북미 정상이 새로운 관계수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한 데 이어 27일엔 “조미 관계는 두 정상의 친분 관계에 기초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협상 재개 촉진자 역할을 자처한 것도 뿌리쳤다. 27일 담화에서 “조미관계를 ‘중재’하려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한다”며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 앉아 하게 되는 것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 간 물밑 접촉이 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북한은 하루 만에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고 부인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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