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북한 영변 폐기 땐 비핵화 불가역 단계” 미국과 온도차

입력
2019.06.26 19:00
수정
2019.06.27 07:2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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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개 통신사 서면 인터뷰… 북미 3차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무게

“개성공단 재개 北 밝은 미래 제시… 징용 문제 日과 대화 문 열어둬”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류효진 기자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류효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영변 핵시설 전부가 검증 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연합뉴스를 비롯한 각국 뉴스통신사 7곳과의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향후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되면 북한이 어떤 조치를 완료했을 때를 실질적인 비핵화가 이루어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협상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 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를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로 설정한 미국의 입장과는 상당히 다른 결이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대북 제재 해제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하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과 그외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를 요구하면서 회담이 ‘노딜’로 끝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성사 가능성이 무르익는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입장에 공감하는 중재안을 낸 셈이다. 문 대통령은 “영변은 북한 핵시설의 근간”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영변 핵폐기 → 대북 제재 완화 → 북한의 추가 비핵화 조치 가속화’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는 듯하다. 문 대통령은 “싱가포르(2018년 6월)와 하노이에서 논의된 사안들을 토대로 (북미가) 차기 협상을 이루어가면 실질적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북미 회담과 비핵화 과정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으면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제사회도 유엔 안보리 제재의 부분적 또는 단계적 완화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 간에 3차 정상회담에 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해 북미 3차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북미 협상 재개를 통해 다음 단계로 나가게 될 것”이라며 “이제 그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본다”고 했다. 또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공식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동안에도 북미 정상의 대화 의지는 퇴색하지 않았다”며 “정상 간 친서 교환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북 제재 국면 속 남북간 경협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발전은 비핵화를 촉진하는 동력”이라며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한 남북 경협 사업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이후 맞이하게 될 ‘밝은 미래’를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미 모두에게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모든 남북 협력은 단 1건의 위반 사례도 없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여 추진되고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또 “비핵화 진전에 따라 우리 수도를 겨냥하고 있는 북한의 장사정포와 남북이 보유하고 있는 단거리 미사일 등의 위협적 무기를 감축하는 군축 단계로까지 갈 수 있다”며 추가 군축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상ㆍ해상 적대 행위 중단, 남북 비무장지대(DMZ) 안의 감시초소(GP) 철수,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을 약속한 9ㆍ19 군사 합의서보다 진전된 제안이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강경 기조를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해 과거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겨냥했다. 아베 총리가 7월 열리는 참의원 선거를 의식해 반한(反韓)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시각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친일 청산’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국내 보수 진영의 시각에 대해서도 “과거사 문제는 한국 정부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엄밀히 존재했던 불행했던 역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최근 내놓은 강제징용 배상 방안에 대해 “현실적 해결 방안이자 당사자들 간 화해가 이뤄지도록 하면서 한일 관계도 한 걸음 나아가게 하도록 하는 조치”라며 일본의 재고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주는 방안을 일본에 제안했다가 거부당했다. 문 대통령은 “그 문제를 포함해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두 정상 간의 협의에 대해 나는 언제든지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면서 “(28,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의 기회를 활용할 수 있을지는 일본에 달려 있다”며 일본에 공을 넘겼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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