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북 인도지원과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입력
2019.06.27 04:40
29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 식량난 추가 지원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 식량난 추가 지원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화 마중물인가, 조폭 상납금인가? 지난주 정부가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지원을 위해 쌀 5만 톤을 제공한다고 발표하자 정치권에서 나온 상반된 반응이다. 대북 인도지원이 평화 마중물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는 있다. 하지만 한때 ‘통일 대박’을 따라 외쳤던 정치인들이 조폭 상납금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대북 인도지원은 유엔안보리 제재와도 무관할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미국과 신중히 협의해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막말을 퍼붓는다면, 주는 남쪽이나 받는 북쪽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그 동안 보수정부나 진보정부할 것 없이 북한당국과 구분해 북한주민을 지원한다는데는 공감대를 이루어왔다. 하지만 작금의 일부 정치인들이 보인 태도는 초당파적인 공감대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편협한 정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넓은 시야를 갖고 대북 인도지원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유엔안보리가 결의한 대북 경제제재에 동참하듯이, 유엔총회에서 합의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15년 유엔총회는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자(Leave no one behind)”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6~2030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이행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수립하였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17개 세부목표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가 빈곤 종식(No Poverty)이고 두 번째가 굶주림 종결(Zero Hunger), 그밖에 건강, 교육, 성평등, 위생, 기후, 평화 등이 있다. 17개 목표가 서로 연결되지만 이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빈곤 종식과 굶주림 종결이다. 이 때문에 북한도 6개 유엔기구들과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유엔-북한 협력전략계획 2017~2021’에 참여하고 있다. 이 계획이 세운 우선협력분야는 식량‧영양보전, 사회개발서비스, 회복력‧지속가능성, 데이터ㆍ개발관리의 네 가지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식량사정은 어느 정도인가?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2017년 471만 톤, 2018년 455만 톤이다. 지원 반대자들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인 1995년 405만 톤이었던 점을 들어 북한의 식량사정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때의 배급량인 1인당 하루 300g은 생존에 필요한 기초대사량 1,500kcal에 불과한 것이다. 1인당 하루 400g을 보급한다고 해도 기본식량 연간 365만 톤에다 종자 및 사료용 100만 톤을 포함하면 모두 합쳐 465만 톤이 필요하다.

현재 유엔이 정한 1인당 소요식량은 하루 600g이고, 2019년도 북한주민 1인당 공식 배급량은 하루 550g이다. 하지만 올해 1~4월까지 북한의 실제 배급량은 1인당 하루 300g정도에 머물고 있어, 성인의 1인 필요 칼로리의 50%에 불과하다. 개발도상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수준에 맞추면 연간 880만 톤이 필요하고, 베트남 수준에 맞추더라도 연간 700만 톤 이상의 식량이 필요하다. 북한은 ‘2018 세계기아지수(GHI)’가 34점으로 ‘심각 혹은 그 이상’ 단계에 속하며, 조사대상 119개국 가운데 109번째로 열악하다.

이처럼 국제사회도 북한주민의 가난과 굶주림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데 우리만 외면하면 안 된다. 최악의 상황이었던 ‘고난의 행군 시대’를 비교해 북한에 식량 지원할 필요가 없다거나 핵‧미사일을 포기할 때까지 인도적 지원도 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같은 동포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 아니라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모독이다. 오히려 우리가 적극 나서서 적어도 북한주민의 식량문제만큼은 보장해 주도록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국내적으로도 인도지원의 법제화를 추진해야 한다. 북한주민의 식량권에 대한 관심은 북한인권개선의 출발점이자 건강한 한민족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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