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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의 세계적 가수이자 원주민 시민권운동가 이즈(이스라엘 카마카위우올레)가 1997년 6월 26일 별세했다. izhawaii.com

유럽 농업자본의 수탈을 넋 놓고 방관하는 허수아비 여왕일 수 없어 원주민 투표권을 보장하는 신헌법 등을 발의하며 주권을 지키려던 하와이의 마지막 통일 입헌군주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1838~1917)는 1893년 강제 퇴위당했고, 공화국으로 바뀐 하와이는 5년 뒤 미국에 합병됐다. 1778년 제임스 쿡이 처음 발을 들이던 무렵 약 100만명에 이르던 원주민은 그 무렵 10만명쯤으로 줄어 있었고, 남은 이들도 백인 기독교 영어 문화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었다.

하와이가 미국 50번째 주로 편입되기 석 달 전인 1959년 5월, 호놀룰루에서 이스라엘 카마카위우올레(Israel Kamakawiwo’ole)가 태어났다. ‘이즈(Iz)’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원주민 출신의 세계적 가수이자 “노래로 원주민을 하나로 뭉치게 한” 하와이 주권운동가다.

부모도 삼촌도 관광객 등을 상대로 노래하던 대중음악가였던 덕에 그는 어려서부터 온갖 장르의 리듬과 박자를 익혔다. 10대 때부터 5년 위 형인 스키피(Skippy, 1982년 작고)와 사촌 등과 밴드(Makaha Sons of Nihau)를 결성해 활동하며 일찌감치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1990년 솔로로 독립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93년 발표한 두 번째 솔로 음반 ‘Facing Future’는 빌보드 팝 차트 25위에 올랐고, 직접 편곡한 타이틀 곡 ‘Somewhere over the rainbow’와 ‘What a wonderful world’ 메들리는 세계인에게 그가 추구한 정치 사회적 이상을 겹쳐 보게 했다.

이즈가 가수 활동을 시작한 70년대는 본토 반전ㆍ민권 운동의 자유주의 기운으로 하와이 주권운동도 거세, 오하나섬의 공군 폭격훈련장 폐쇄 요구 등이 한창이었다. 그 기운은 유럽 식민지 200주년이던 1978년을 기점으로 원주민 문화 언어 보존 등 주체성 운동으로 확산됐고, 이즈의 노래 ‘하와이 78’ 등은 그 정신을 직설적으로 가사에 담은 운동의 주제가로 널리 불렸다.

28세에 작고한 형 스키피처럼 그는 343kg(키 1m88cm)의 고도 비만이었고, 호흡기와 혈관 심장질환을 달고 살았다. 그는 만 38세이던 1997년 6월 26일 별세했고, 7월 10일 장례식 날 하와이 의사당은 조기를 걸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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