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입력
2019.06.24 04:40
29면
2018년 10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드니 무퀘게와 나디아 무라드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횃불 퍼레이드 중인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포토아이
2018년 10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드니 무퀘게와 나디아 무라드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횃불 퍼레이드 중인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포토아이

내년은 유엔안보리가 ‘여성과 평화 안보’에 관한 결의(132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지 2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 결의는 전쟁, 내전 등 무력분쟁 지역에서의 여성 인권 보호, 여성에 대한 성폭력 근절, 분쟁 예방과 해결 과정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를 다룬 유엔안보리 최초의 합의이다. 전쟁 및 분쟁 상황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어온 성폭력의 역사는 불행히도 매우 길지만, 1990년대 보스니아, 코소보 등 구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 라이베리아 등 아프리카 곳곳에서 벌어진 조직적 집단 강간은 국제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이는 전시 상황에서 자행된 성범죄를 전쟁의 부산물로 발생하는 개인적 범죄로 간과해서는 안 되며, 심각한 전쟁 범죄 중 하나로 엄중히 다뤄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1325 결의문 채택 이후, 전시 성범죄의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국제운동이 더욱 활발히 전개되었고 ‘여성과 평화 안보’ 이슈는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대상 대량 학살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무력 분쟁상황에서 발생한 성폭력의 해결 및 예방은 아직 요원하다. 미얀마 군부가 인종청소의 의도를 갖고 로힝야족에 대한 조직적 집단 성폭행을 광범위하게 자행했다는 2018년 유엔 진상조사단의 결과 발표 이후에도, 현재까지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통한 책임자 규명과 가해자 처벌,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의 학살과 폭력을 피해 피신한 로힝야 난민들은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채 방글라데시 남부에 형성된 세계 최대의 난민촌에서 성폭력을 포함한 여러 위험에 노출된 채 임시 거주 중이다.

분쟁하 성폭력 피해자의 정의를 실현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규명할 국제 협력 방안은 과연 무엇일까? 작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IS의 성폭력 피해자이자 IS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해 온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와, 수십 년간 내전 성폭력 피해자들을 치료해온 콩고민주공화국의 산부인과 의사 드니 무퀘게가 공동 선정되면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국제적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올 2월 EU, 3월 룩셈부르크, 5월 노르웨이 정부가 관련 국제회의를 개최했고, 11월 영국에서도 분쟁하 성폭력 방지를 위한 대규모 국제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한국 정부도 오는 7월 2, 3일 양일간 개최되는 제1차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국제회의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논의할 계기를 마련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주도로 작년 6월 출범한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Action with Women and Peace)’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이번 국제회의는 남수단, 콜롬비아, 이라크 등 분쟁 취약국 내 여성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고, 피해자 중심 접근법을 적용한 공동의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우리 정부 및 시민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 및 전후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불처벌 관행을 종식하고, 피해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한 배상체계를 수립할 필요성이 있음을 국제사회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무력분쟁 상황에서 자행되는 성폭력의 종식을 위한 실질적 해법이 논의되어, 더 이상 여성과 소녀에 대한 성폭력이 전쟁의 무기, 고문의 도구, 억압의 전술로 사용되지 않기를, 우리가 겪어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뼈아픈 경험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정부는 더 나아가 분쟁하 성폭력 대응을 위한 공적개발원조사업(ODA)을 확대하고 안보ㆍ평화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를 증진하여 ‘여성과 평화 안보’의제 실현에 적극 기여해 나가길 바란다. 우리는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픈 경험을 통해서 전쟁이나 분쟁 중에 자행되는 성폭력이 근절되는 미래를 꿈꾸면서, 보다 나은 세상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살고 있는 우리의 소명이다.

김은미 이화여대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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