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공직경쟁력’ 파격인가, 세계기준인가

입력
2019.06.24 04:40
31면
정부서울청사 로비. 서재훈 기자
정부서울청사 로비. 서재훈 기자

국내제조업의 해외 투자가 넘쳐난다. 세계시장을 향하여 가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에서 탈출하는 것일까? 미국, 일본, 독일 등은 리쇼어링 정책을 통해 자국으로 생산기지를 불러들이고 있으며 고용시장도 호황이다. 무엇이 우리 국민에게 좋을까? 세상이 변하는 속도와 세계와의 접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넓어지고 있다. 그만큼 국가나 기업이나 생존을 위한 진화는 필연적이다. 국가경쟁력은 기업과 정부, 국민 모두의 총합이다. 무엇보다 정책을 책임지는 공무원 집단의 확고한 소신과 의지, 헌신의 자세가 필수적이다. 변화를 두려워 말고 파격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사고를 바꾸어야 규제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조되고 세계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다.

삼성의 인사책임자에서 100만 공무원의 인사책임자로. 전례 없는 인사에는 전례 없는 행보가 필요했다. 옷차림부터 바꿨다. 넥타이를 매지 않게 했다. 관용차도 바꿨다. 다른 기관장들이 모두 검은색 세단을 탈 때 은색 중고차를 탔다. 인사혁신처가 입주한 정부서울청사 15층 복도는 오렌지색으로 칠해 온통 흰색인 다른 층과 차별화했다. 일의 스피드, 현장방문, 맞짱토론을 일상화 했다. 누군가는 참신하다 했고 또 누군가는 파격이라 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서 나의 행보는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나름의 소소한 변화를 추구했던 이유는 하나다. 공무원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다. 사고방식과 일하는 분위기를 바꿔 보고자 했다. 세계기준에 발맞추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고, 생각을 바꿔야 하며, 그러려면 환경에 자극을 주어야 했다. 작지만 간편한 옷차림, 개성 있는 인테리어와 같은 요소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상상케 하고 궁극적으로 경쟁력 강화로 나타나길 기대했다.

중요한 것은 파격이라 불린 실험 자체가 아닌 끊임없이 파격을 요구하는 구조적 환경이다. 대한민국이 안팎으로 처한 환경은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상품, 자본, 서비스의 국가 간 이동과 국내외를 드나드는 내외국인 수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수출지향적 모델로 시작해 몸집이 비약적으로 커지며 이제는 정말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70여 년 동안 경험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은 공무원들의 소신과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방식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물론 공무원 조직 역시 꾸준히 혁신을 추구해 왔으나 문제는 그 속도가 음속이라면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워 세계를 제패했다. 필요하면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인재를 모셔왔고 과감한 투자와 조직의 해체, 개편을 밥 먹듯 했다. 그 과정에서 아픔을 감내해야 했지만 경쟁력 강화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기업이 세계를 지향해 일류가 되었듯 공무원 조직도 글로벌 마인드를 철저히 가다듬어야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정부혁신, 공직혁신. 10대 경제대국을 이끌어가는 100만 공무원 조직의 변화가 쉬울까? 거대한 항공모함이 갑자기 뱃머리를 돌리긴 힘들지만 긴 안목으로 내다보면 1도의 조타각만으로도 얼마든지 변화를 창조할 수 있다. 작은 변화도 처음엔 파격일 수 있지만 반복되면 기준이 될 수 있다. 재임 당시 인사혁신처의 캐치프레이즈를 ‘백년의 미래, 사람의 혁신’으로 내건 것도 마찬가지다. 목표는 멀리 두되 달성할 계획은 손이 닿는 곳에서부터 세우자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에 일으킨 작은 파문이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날을 그려본다. 파격은 세계화의 지름길이다. 우리는 또다른 파격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갈라파고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 기준의 대한민국’만이 또다른 70년을 약속할 것이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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